나의 살던 고향은 ③ 레이건과 포켓몬
• 댓글 2개 보기첫 번째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스탤지어'라는 병명(病名)이 생겨난 배경에는 17세기, 고향을 떠나 살던 스위스 용병들의 슬픔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글에 등장하는 예는 다르다. 산업혁명 이후의 세상에서 살던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하며 낭만주의에 심취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태어난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같은 장소에서 계속 살았지만 그곳은 그들이 기억하던 곳이 아니었다. 스위스 용병이 고향을 떠난 경우라면, 산업혁명 이후의 유럽인들은 고향이 그들을 떠난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이 낯선 곳이라는 점에서 두 경우는 서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온 이후로 사람들이 노스탤지어를 생각하는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노스탤지어는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이 아니라,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그냥 마음의 상태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던 것. 이런 생각은 1950, 60년대에 이르러 서구에서도 일반화되었다.
1970년대의 노스탤지어 열풍
그런데 노스탤지어의 지위가 병에서 감정, 혹은 기분으로 바뀌게 된 직후에 미국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1970년대 미국 사회에 거대한 노스탤지어 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프레드 데이비스라는 학자는 이 현상을 연구해 'Yearning for Yesterday(어제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책으로 냈을 정도다.
그런데 왜 하필 1970년대였을까?
미국의 대표 코미디 뉴스 쇼인 '데일리 쇼(The Daily Show)'는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인기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진행하고 있지만, 이 쇼를 전설적인 지위로 올려놓은 사람은 존 스튜어트(Jon Stewart)였다. 뉴스 형태로 진행되는 데일리 쇼에서 스튜어트가 소재로 삼는 단골 메뉴는 폭스뉴스의 보도 내용이었고, 당시 폭스뉴스를 대표하는 앵커는 빌 오라일리(Bill O'Reilly)였다.
존 스튜어트보다 나이가 많은 빌 오라일리(1949년 생)는 오바마 시절을 두고 "미국이 변했다"며 개탄하는 말을 자주 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이 단순하고 아름다웠는데 그때가 미국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스튜어트가 작정하고 그의 주장에 반박하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의 영상을 찾는데 실패해서 기억하는 말을 최대한 옮겨 본다.) "빌 오라일리는 항상 1960년대는 모든 게 단순하고 행복했는데 지금은 세상이 험해지고 복잡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1960년대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고, 베트남 전쟁으로 수많은 양민과 군인이 죽었고,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했고,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 미국 남부주의 인종분리법)이 아직 살아있었고, 인종문제로 도시가 불탔는데 오라일리는 왜 그 시대를 아름다웠던 시절로 기억할까요?"
그리고 뒤이어 깨달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1949년에 태어난 오라일리는 1950, 60년대에 어린아이였죠. 어린아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죠. 대통령 암살, 인종폭동 같은 건 어른들이 신문에서 읽는 뉴스였고, 밖에서 뛰어놀던 어린아이 빌 오라일리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대였다고 기억하는 겁니다."
존 스튜어트의 설명처럼 미국은 1960년대에 크게 변모했다. 흑인을 중심으로 소수인종들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이들의 요구를 따라 일련의 인권법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백인들은 자신의 자녀를 흑인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내게 되었고, 흑인들과 공중 화장실과 식당 등을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백인들에게 1970년대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거다. 그런 그들에게 1960년대는 싫어하는 흑인들과 분리되어 살 수 있던 마지막 시대였다.
하지만 흑인들에게도 1950, 60년대가 빌 오라일리의 기억만큼 아름다웠을까?
노스탤지어의 활용
미국 사회의 노스탤지어 현상을 연구하는 그래프턴 태너는 이렇게 설명한다. "만약 (사회적) 변화가 크고 급격해서 자신의 일상이 바뀌고,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하는 방법이 변하고, 돈을 버는 방법, 생존하는 방법, 사회생활을 하는 방법이 바뀌게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과거를 그리워하게 된다." 즉, 노스탤지어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필연적으로 뒤따라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노스탤지어가 더 이상 질병이 아니라면? 미국의 자본주의는 이를 사업에 이용할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이를 주장한 사람은 와이오밍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던 도널드 W. 헨든(Donald W. Hendon) 교수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과거에는 제품의 생애주기(life cycle)가 '탄생-성장-성숙-시장 포화-쇠퇴'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이 주장은 1975년에 나왔다) 이 개념을 새로운 트렌드에 맞게 바꿔야 한다. 제품은 쇠퇴한 후에 일정 기간 후 부활해서 다시 인기를 누린다." 헨든 교수는 이를 노스탤지어 테일(이 이야기의 출처에는 nostalgia tale이라고 적혀있지만, tail이 아닐까 싶다)이라 불렀다.
노스탤지어 마케팅이 탄생한 거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타깃으로 생각하는 오디언스, 혹은 고객군을 정하고 그들이 그리워할 젊은, 혹은 어린 시절의 상징물을 적절한 주기에 맞춰 다시 꺼내어 상품화하면 된다. 2016년 포켓몬 고(Pokemon Go) 모바일 게임이 등장했을 때 가장 열광했던 건 어린아이들이 아닌, 어린 시절에 포켓몬 카드 게임을 하고 자란 20대였다. 물론 닌텐도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위의 영상(마이크로소프트 광고)은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잔뜩 등장한다. "우리를 기억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1990년대에 만났어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인터넷을 하고 자랐다가 이제는 구글 크롬을 기본 브라우저로 사용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다시 불러들이는 걸 목적으로 2013년에 만들어졌다. 그들을 다시 익스플로러로 불러들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광고는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광고는 그때(1990년대)는 이랬고, 저랬고, 이런 물건을 사용했고..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가 후반부에 "미래는 밝았습니다(the future was bright)"라는 말을 한다. 미국의 (그리고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씁쓸한 말이다. 그들이 어렸던 시절만 해도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밀레니얼 세대는 과거의 어떤 세대보다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실업률이 가장 높고, 동일 시점(25~37세)의 소득도 X세대보다 적고, 집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부모에게 얹혀살거나 월세를 선택하는 세대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광고는 의도치 않게 밀레니얼 세대의 아픈 구석을 건드렸다.
레이건과 트럼프
노스탤지어는 기업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이대남 현상'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 사이에 중요한 선거 전략으로 등장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 특정 세대, 혹은 집단이 현실에 좌절하거나 불만을 갖게 되면 이를 자신의 득표로 연결시키려는 정치인들이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박근혜 정권은 그 탄생 자체가 박정희에 대한 노스탤지어였고, 러시아의 푸틴이 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는 이유는 "위대했던 소련"의 자존심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를 가장 눈에 띄게 사용한 정치인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재임: 1981~1989)이다. 레이건은 1980년 선거운동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를 사용했고, 그의 집권으로 1960년대에 시작된 미국의 진보정치는 끝나게 된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는 백인들의 거대한 백래시(backlash)를 끌어내어 집권했고, 그가 사용한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은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1992년에 체결) 이전의 레이건 시대를 그리워하는 백인 노동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었다.
점점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노스탤지어는 지구 상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감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노스탤지어가 정치적인 카드로 탈바꿈하는 건 아니다. 노스탤지어가 스마트폰 속의 플레이리스트나 TV 드라마, 영화 속에 남아있다면 그저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과거를 잠시 맛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면 노스탤지어는 상업용도를 넘어 정치적 분노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스루라인(Througline)의 설명에 따르면 팬데믹과 기후변화로 이제 인류는 매년 과거와 다른 환경에 살게 될 것이고, 우리는 끊임없이 온전했던 과거의 지구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 속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루라인의 한 문단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끊임없는 불안정(instability)은 우리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되었다. 미래는 마치 절벽 옆에 난, 가드레일도 없는 길을 정신없이 내달리는 자동차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우리의 기억 속 과거에 뿌리를 내린 영속성(permanance)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기억이 아픈 기억이어도, 과거가 그리 좋지 않았어도 그렇다. 기억 속에서 변하지 않는 과거를 알고 있고, 그걸 붙들 수 있다면 이 불안정한 상태, 이 절벽길을 견딜 수 있는 거다. 노스탤지어는 그렇게 지난 시절의 따뜻하고 변하지 않는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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