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뉴욕타임즈의 벤 프로테스 기자는 트럼프가 정부의 기밀문서를 백악관에서 가져와 보관하고 있던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한다. 하나는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그래서 그의 행동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권력의 과시'다. 그는 선거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따라서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가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믿고 있고, 심지어 그가 비밀리에 미국을 통치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트럼프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힘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줄 필요가 있고, 기밀 문서를 갖고 있다는 것은 권력 과시에 좋은 도구가 된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보복'이다. 이 사건을 위해 법무부가 임명한 잭 스미스(Jack Smith) 특별 검사가 공개한 기소 내용 속 증거를 보면 트럼프가 합참의장인 마크 밀리(Mark Milley)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밀리 장군은 트럼프가 임기 중에 군을 권력의 도구로 삼는 것을 꾸준히 경계했고, 2020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군을 동원해 헌법 질서를 뒤엎는 시도를 할 것을 우려해서 군 내부를 철저히 단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그가 우려했다는 내용은 트럼프가 물러난 후에 언론에 알려져 유명해졌다.

하지만 밀리 장군에 대한 대중적 찬사는 '대통령의 철없는 행동을 막은 참 군인'이라는 내러티브를 담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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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장군에 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트럼프는 출판사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게 밀리가 만들어서 내게 보여준 이란 침략 계획"이라면 특급 비밀이 담긴 문서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호전적이고 불안한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밀리라는 이야기였다. 군과 대통령의 관계를 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합창의장은 대통령에게 선택 가능한 옵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2020년 초에 트럼프는 군에 명령을 내려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인근을 지나고 있던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비롯한 10여 명을 드론 공습으로 사살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고, 미국과 이란이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합참의장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명령을 내릴 경우에 대비한 계획을 갖고 있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무력 사용 옵션으로 제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물론 트럼프에게 이런 사실보다는 밀리 장군의 인기를 깎아내리는 게 더 중요했을 거다.

트럼프의 혐의는 무겁다.

잭 스미스 특별 검사는 트럼프를 총 37개의 혐의로 기소했다. 여기에는 국방과 관련한 정보를 고의로 불법 소지한 혐의부터 간첩법(Espionage Act) 위반까지 다양한 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많은 혐의가 1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한 중대한 범죄라서 몇 개만 인정되어도 트럼프는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이번 기소 건에서만 그렇다는 얘기고,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사 중인 다른 사건들은 또 별개의 문제다.)

가장 궁금한 건 "그래서 트럼프는 정말로 감옥에 가게 되는 거냐?" 일 테지만, 이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그가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미국 특유의 흥미로운 법 절차가 있다. 법무부는 연방법을 위반한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지만, 재판을 받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이던 당시 백악관에서 기밀문서를 들고 달아났기 때문에 워싱턴 DC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고, 현재 트럼프가 거주하는 플로리다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어느 법원에 기소하느냐에 따라 그 지역 주민 중에서 배심원을 뽑게 되기 때문에 검찰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피고에게 유리할 수도 있어서 그렇다. 가장 쉽게 생각하면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플로리다에서는 검찰에게 불리할 것이고, 진보적인 DC에서는 트럼프에게 불리할 수 있다.

트럼프를 기소한 잭 스미스 미 법무부 특별검사

그런데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재판을 플로리다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불리한 결정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트럼프에 우호적인 사람이 들어갈 위험이 더 커지는 데다가, 이 사건을 맡게 된 연방법원 판사가 트럼프(무작위로 배정된다)가 임기 중에 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일린 캐넌(Aileen Cannon)이라는 이 판사는 이미 FBI의 증거 수집 과정에서 트럼프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번 재판에서도 트럼프를 기소한 검찰에 다양한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

법무부는 자신감을 보인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잭 스미스가 플로리다를 택한 이유가 뭘까?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현재 확보한 증거, 증언이면 플로리다가 아니라 어디에 가서 재판을 해도 이길 수 있는데, 굳이 워싱턴 DC에서 재판을 진행해서 나중에 트럼프가 편파적인 재판이었다고 시비를 걸지 않도록 (트럼프와 공화당은 이미 이번 기소가 바이든의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맹렬하게 공격 중이다) 아예 트럼프의 홈구장에서 게임을 하겠다는 자세라는 거다.

이번 기소장을 꼼꼼하게 살펴본 전문가들은 "기소장에 등장한 증거만으로도 게임은 이미 끝났다"는 얘기를 한다. 사건에 따라서는 주장에 근거한 약한 기소장도 있지만, 잭 스미스가 공개한 이번 기소장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기소장이라는 거다. 심지어 트럼프의 충복이었던 윌리엄 바(William Barr) 전 법무부 장관도 폭스뉴스에 나와서 "아주, 아주 심각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임기 중에 받았던 "말도 안 되는(phony)" 혐의들"과 달리 이번에는 진짜 혐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바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 때 법무부에서 일했던 에드 오캘러핸(Ed O'Callaghan)은 기소장을 읽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제일 먼저 받은 인상은 (법무부의) 자신감이다. 기소장에 넣은 (증거의) 디테일이 엄청나다. 기소장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거다."

그 디테일은 엉뚱한 데서 왔다.

법무부에 이런 자신감을 심어준 증거는 놀랍게도 트럼프의 변호사, 에반 코코란에서 왔다. 앞의 글에서 트럼프가 자신의 가지고 나온 서류 상자를 보여준 그 변호사.

원래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는 '비밀 유지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오고 간 자문 내용은 법원이 공개를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법에서는 여기에 예외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범죄-사기 예외'다. 범죄, 사기 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된 피고가 추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변호사가 돕고 있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이 특권을 박탈할 수 있고, 검찰은 피고의 변호사를 소환해 증언과 증거물을 받아낼 수 있다.

그런데 하필 코코란은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 즉 회의 중에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고, 메모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보이스 메모까지 꼼꼼하게 챙겼다가 이것들이 모두 증거물로 검찰에 넘어간 것이다.

법무부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넘긴 트럼프의 변호사 에반 코크란 (이미지 출처: The Seattle Times)

검찰은 트럼프의 퇴로를 막고 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자신이 기밀문서를 가지고 나온 것은 다른 문서를 개인적인 용도로 챙겨 나오다가 실수로 가져온 것일 뿐, 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많다. 트럼프가 챙긴 상자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동안에 바이든의 개인 사무실에서 그가 부통령이던 시절에 보관하던 문서들 사이에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문서들이 포함되어 문제가 되었고, 똑같은 이유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실수로 가지고 나온 문서들이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문서가 발견되는 즉시 돌려 주었을 뿐 아니라, 요구할 경우 압수 수색도 허용하며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처리했고, 법무부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오로지 트럼프가 문서 상자의 사실을 숨겼을 뿐 아니라, 반환할 때도 거짓말을 해서 '공무집행 방해죄'를 추가했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는 코코란의 메모와 녹음 때문에 "모르고 한 일"이라는 변호를 할 수 있는 퇴로가 막혔다는 사실이다. 한 녹음에 트럼프는 "이것 좀 봐. 이거 극비사항이야, 극비"라면서 "이 문서는 내가 대통령일 때 비밀해제를 할 수 있었던 건데, 지금은 (대통령이 아니니)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행동이 불법임을 완전히 인지하는 육성 녹음이 확보된 이상 트럼프의 변호는 쉽지 않다.

물론 트럼프는 길이 있다고 믿는다.

두 번의 탄핵에도 살아남았던 트럼프가 쉽게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탄핵과 파면 절차는 정치적으로 결정되지만 재판은 법 적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 변호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불일치 배심(hung jury)이다.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데, 한 명이라도 끝끝내 버티며 동의하지 않을 경우 불일치 배심이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판사가 미결정 심리(mistrial)을 선언한다. 트럼프에 호의적인 플로리다라는 점에서 노려볼 만한 방법이지만, 불일치 배심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고,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이런 사람들은 철저하게 걸러내기 때문에 트럼프로서는 자신의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수 있는 판결을 이런 실낱같은 희망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법원에 출두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트럼프 (이미지 출처: NBC News)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게 될까? 많은 사람이 예상하는 건 재판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는 방법이다. 재판을 질질 끄는 게 트럼프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중요하다. 내년(2024년)이 대통령 선거의 해이고, 트럼프는 이미 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재판을 내년 대선의 주요 이슈로 삼아 지지자들을 단결시킬 것이 분명하다. 법원의 최종 판결을 대선 이후로 미룰 수 있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이 당선될 경우 "셀프 사면"을 하면 된다. 추측이 아니라, 트럼프 본인이 이런 계획을 이미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로서는 트럼프를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결해서 그를 백악관으로 보내야 할 동기가 부여되지만, 이는 법의 판단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뒤집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그런 의도를 이미 밝힌 사람을 당선시킨다면, 이는 누군가는 법 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이고, 법치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5번가 한가운데 서서 누군가를 총으로 쏴도" 자신은 빠져나갈 수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증명된다.

2024년의 미국 대선은 미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