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셜 뉴스/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은 웹사이트 방문자 수를 기준으로 전 세계 8위를 달리는 인기 서비스다.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외부 링크를 가져와 소개하고, 댓글을 포럼처럼 사용하며 다른 사용자와 이야기하는 사이트.  그런데 이 웹사이트의 일부가 지난 월요일부터 '먹통'이 되었다. 레딧을 구성하는 하위 포럼에 해당하는 서브레딧(subreddit)들은 대부분 회사가 직접 관리하지 않고 사용자들이 만들고, 관리자(mod)를 선정해서 자율적으로 규칙을 세워 관리하는데, 이 관리자들이 회사가 최근 결정한 방침에 반발해서 항의의 의미로 이틀 동안 많은 서브레딧을 비공개로 전환해버린 거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여러 서브레딧을 뒤덮고 있다. "레딧이 타사(third-party)의 앱을 죽이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라는 메시지.

이유는 이렇다. 레딧 사용자들은 웹사이트에도 가지만 폰, 데스크톱에 최적화해서 제작된 앱을 통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런 앱 중에는 레딧이 만든 게 아닌 것들도 있다. 말하자면 트위터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던 사람들이 트위터 앱보다 트윗데크(TweetDeck) 등의 외부에서 제작, 운영하던 앱을 이용하던 것과 비슷하다. 레딧의 공식 앱보다 더 많은 기능,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 대표적인 게 아폴로(Apollo) 앱.

이런 앱은 레딧에 올라오는 포스팅과 댓글을 가져간다. 레딧 입장에서는 자기네 데이터를 가져다가 방문자를 끌어들이고 있으니 빌붙어서 먹고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성장할 때는 이런 게 도움이 된다.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올 수 있어서 그렇다.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한 때 이렇게 외부 제작된 앱들이 기업의 공식 앱과 공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레딧이 주식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외부 앱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용료를 내거나 아니면 사이트를 닫게 하겠다고 한 것. 그런데 그 사용료가 엄청나서 (많을 경우 1년에 2,000만 달러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레디터(redditor, 레딧 사용자를 부르는 이름)들이 애용하는 앱들이 문을 닫을 상황이 되었다. 각 서브레딧의 관리자를 비롯한 많은 레디터들이 화가 났다. 평소에 애용하던 앱을 사용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누구의 데이터인가?

여기에는 소셜미디어의 태생적인 난제가 있다. 사람들을 소셜미디어로 끌어오는 건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다. 기업은 이들에게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런데 콘텐츠를 만들어 낸 사용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 데이터를 자기네 재산인 양 행동하면 사용자들이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도 이유는 있다. 비영리가 아닌 한 기업은 이윤을 내야 한다. 지금은 광고로 돈을 벌고 있지만 주식상장을 하게 되면 그 압력은 훨씬 더 커지게 될 것이고, 더 큰 수익을 내려면 돈이 새는 곳을 막아야 하고, 외부에서 자기네 데이터를 가져가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런데 레딧의 CEO가 불만에 찬 레디터들에게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일을 그르쳤고, 레디터들은 분노했다.

이번 서브레딧 일시 폐쇄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조금 더 깊은 문제

이 이야기는 소셜미디어의 태생적 문제보다 조금 더 깊은 곳을 건드린다. 영어 사용자들은 몇 년 전부터 구글을 검색할 때 검색어 옆에 "reddit"을 추가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령 마이애미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서 좋은 식당을 찾고 싶으면 "best restaurants in Miami"라고 하는 것보다 "best restaurants in Miami reddit"이라고 쓰는 게 훨씬 더 좋은 정보를 가져다주기 때문. 레딧이 워낙 방대한 포럼이다 보니 각 지역별, 주제별로 잘 아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양질의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거다.

말하자면 레딧은 크라우드소싱, 혹은 집단지성의 훌륭한 예다.

그런데 이건 달리 말하면 구글의 실패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구글에서 검색을 하니 기업들이 모두들 '검색 최적화(SEO)'에 매달리는데, 이건 사용자 입장에서는 좋은 정보가 아니라 홍보용 콘텐츠가 상단에 올라온다는 얘기다. 물론 구글은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끊임없이 알고리듬을 개선하지만, "구글 검색은 이제 쓸모가 없다"라는 얘기가 벌써 몇 년 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검색어 뒤에 reddit을 붙이는 건 이 때문. 이렇게 구글에 대한 불만이 쌓이던 중에 챗GPT가 혜성처럼 등장했고, "구글에서 검색해봤자 광고만 잔뜩 뜬다"라며 불평하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챗GPT와 구글 검색은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지만, 적어도 구글이 채워주지 못한 수요를 챗GPT가 가져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챗GPT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레딧의 데이터를 가져다가 AI 모델을 훈련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챗GPT는 레딧의 콘텐츠를 사용했지만 그 대가로 돈을 벌지 못한다. 외부 기업의 앱을 통해서 돈을 벌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레딧은 '더 이상 안 되겠다, 이제 우리도 돈을 벌어야겠다'라고 결정한 것이고, 이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레디터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정말로 단체 행동을 하겠다면 방법은 있다. 비슷한 다른 서비스로 건너가는 거다. 사실 레딧의 성장 배경에는 유사한 서비스로 1위를 달리던 디그(Digg)의 사용자들이 경영진의 결정에 반발해 별로 유명하지 않던 레딧으로 집단 이주한 사건이 있었다. 2010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디그 사용자들의 대이주(Great Digg Migration)'라고 불린다.  

디그와 레딧의 경쟁은 전쟁으로 묘사되었다. (이미지 출처: Flickr)

레디터들이 정말 작정한다면 13년 만에 똑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2010년만 해도 이런 서비스들이 덩치가 작았고, 소셜미디어도 아직 고만고만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트위터를 많이 떠났다고 해도 트위터의 대안 서비스들 중에서 아직 성공적인 게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게으르기로 소문난 레디터들이 과연 익숙한 서비스를 떠나 이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