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의 세계관
• 댓글 4개 보기국가 정상들이 다른 나라 지도자나 기업인을 만날 때는 대부분 '만났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 대화는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뜻하지 않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일론 머스크의 만남이 그랬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언론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애틀랜틱의 야이르 로젠버그(Yair Rosenberg)가 흥미로운 대목을 잡아냈죠.
아래의 글은 "The Unlikely World Leader Who Just Dispelled Musk’s Utopian AI Dreams (뜻하지 않았던 지도자가 일론 머스크의 AI 유토피아의 환상을 깨다)"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네타냐후가 실리콘밸리의 유토피아에 관한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 걸 분석한 아주 흥미로운 글입니다.
UN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7일, 뉴욕으로 향하기에 앞서 샌프란시스코에 들러 일론 머스크를 만났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온라인에 중계된 이 회동은 두 사람에게 좋은 기회였다. 사법개혁으로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크게 퇴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이스라엘의 유권자들에게 자기가 머스크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홍보가 필요했고,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반(反)명예훼손연맹(ADL)을 공격해서 비난을 받고 있는 머스크에게는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서 자신이 반유대주의자가 아님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둘의 회담은 애초에 홍보 차원의 사진 찍기에 불과했다. 적어도 시작은 그랬다.
네타냐후는 머스크와 만나 "우리 시대의 에디슨"이라며 추켜세웠다. 머스크는 이스라엘의 사법개혁–이 개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가 있었다–이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더 튼튼하게" 만들 거라는 네타냐후의 설명에 토를 달지 않음으로써 자기가 들은 칭찬에 화답했다. 머스크는 네타냐후의 설명에 "좋네요(Sounds good)"라고 짧게 대답했다. 이어서 두 사람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 얘기 등등을 하면서 40분 동안 환담을 하고, 만남을 끝내는 것처럼 보였다.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이 둘의 대화를 보던 사람들은 회담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대부분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흥미로운 대화가 시작되었다.
머스크와 네타냐후가 인공지능(AI)에 관한 패널 토의에 들어간 것이다. 패널로는 MIT의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와 챗GPT와 DALL-E로 유명한 오픈AI의 의장 그레그 브로크먼(Greg Brockman)이 참석했다. 이때부터 이들이 나눈 대화는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왜냐면 기자들은 우익이 좋아하는 기업인과 우익 정치 지도자가 만나는 걸 취재하러 왔던 것이었을 뿐, 두 사람이 테크 엔지니어들과 AI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려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대본에 없던 말로 머스크와 테크 전문가들의 유토피아적인 꿈에 이의를 제기하는 장면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그거다.
그들의 대화는 단순히 AI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었고, 혁명적 기술이 인류사회를 바꿀 거라고 믿는 미국의 기업가와 그런 걸 믿지 않는, 세상에 대해 불신하는 이스라엘 정치인 사이의 충돌이었다. 그 대화를 통해 우리는 현재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동시에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네타냐후라는 정치인이 테크놀로지에 관해 갖고 있는 철학은 물론이고, 그가 사람과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왜 그가 이스라엘의 정치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끌고 가는지를 알 수 있다.
논의는 네타냐후의 단순한 질문 하나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는 테크놀로지에 책임과 윤리 기준을 부여할 수 있습니까?"
일론 머스크에게 이런 질문은 낯설지 않다. 그는 안전을 위해 AI의 개발을 잠시 중단하자는 단체 성명에 서명한 사람이다. 따라서 네타냐후의 말이 의미있는 질문임을 인정했다. 머스크는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물리학 연구가 핵무기로 발전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무리 좋은 의도로 개발한 기술이라도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조심해야 한다"라면서, "(좋지 않은 결과도) 가능성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런데 네타냐후는 곱게 넘어가지 않았다. AI와 관련해서는 좋지 않은 결과는 가능성 중 하나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높다며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브로크먼 의장에게 오픈AI의 제품이 고용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AI가 점점 더 많은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AI로 인해 생겨나는 직업보다 사라지는 직업이 더 많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말을 들은 브로크먼이 AI는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자, 네타냐후는 AI 테크놀로지로 발생한 이익이 인류 대다수에 돌아갈 것 같지 않다고 했다. AI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그리고 고급 인력이 몇몇 나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네타냐후는 "몇조 달러 가치의 AI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등장했고, 이들이 엄청난 부와 권력을 점점 더 소수에게 몰아주고 있어요"라고 하면서 자기 같은 자유시장 옹호론자에게 이런 독점은 걱정이라고 했다.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질 텐데, 이는 인류 사회에 엄청난 불안을 가져올 겁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 중에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아시는 분 계시나요?"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답을 하지 못했다.
브로크먼은 오픈AI에 이스라엘 직원들도 있다며 잠시 화제를 바꿨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잘살게 되는 세상입니다(The world we should shoot for is one where all the boats are rising)." 브로크먼은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상기본소득(UBI)을 받을 가능성 외에도 "창의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인정했지만,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는 말하지 못했다.
이들의 대화는 한동안 그 틀을 벗어나지 않고 이어졌다. 머스크와 전문가들은 AI가 가진 놀라운 잠재력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네타냐후는 이들의 열정에 현실적인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이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같은 미래주의자들을 언급하며 AI 이후의 세상에 대한 장미빛 미래를 설명하면, 네타냐후는 유대교 경전과 중세 유대교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를 인용하면서 인간의 제도를 뒤엎고, 우리의 존재가 기계에 종속되는 위험을 경계했다. 머스크가 당연하다는 듯 "AI에 관한 아주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여러모로 천국에 대한 묘사와 공통점이 있다"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일을 할 필요가 없으며, 의무도 없고, 모든 병이 치유 가능하기 때문에 죽는 것도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네타냐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런 세상을 원하세요?"
패널 토의가 마무리될 무렵, 네타냐후 총리는 생각을 정리한 듯 말했다. "이건 석기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핵무기 기술을 전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AI 기술은 "우리가 (그 기술로 얻는) 이득을 최대화하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속도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네타냐후가 머스크를 비롯한 테크 전문가들의 야심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은 다소 낯설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런 만남이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를 믿지 않는 것은 네타냐후가 가진 세계관의 핵심이다. 네타냐후는 바로 그런 태도로 이스라엘의 정치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국제정치를 이끌어왔다.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한 노점상인이 정부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며 분신자살한 것으로 촉발된 시위는 중동의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 '아랍의 봄'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 네타냐후는 그 상황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 시위로 중동지역은 "전진이 아닌 후퇴를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스라엘의 관료들도 당시의 시위를 이란의 (샤 왕조를 내몰았던) 1979년 혁명에 빗대었다.
하지만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서구의 지도자들은 시위의 확산이 아랍 세계에 새로운 자유주의 시대를 끌어낼 것이라며 환영했다. 오바마는 "지난 6개월 동안의 시위가 보여준 것은 억압의 전략, 분열의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변화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메시지"라고 했다.
오늘날 이집트는 다시 군사독재 아래 있다. 예멘은 지속되는 내전으로 폐허가 되었고, 리비아에서는 정부가 전복되면서 수도 벵가지에서 미국의 대사가 살해당했다. 지난 5월에는 반대파를 화학무기까지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한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아랍 국가들의 환영을 받으며 아랍 연맹에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튀니지의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강타한 태풍이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과 관련이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네타냐후는 아랍의 봄에 부정적이었고, 당시 상황을 희망적으로 본 다른 나라 지도자와 민주주의 운동가들의 응원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그런데 네타냐후의 생각이 맞았다. 그가 예언자라서 맞았다기보다 그가 비관주의자(pessimist)라서 맞은 거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거창한 전망–그게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일 수도 있고, 이란과의 핵무기 협상일 수도 있고, AI 기술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을 할 기회가 생기면 네타냐후는 언제나 부정적인 전망에 베팅하는 사람이다. 유대 역사의 어두웠던 시절을 되새기는 그는 인류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닉(cynic)이며, 인류의 진보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skeptic)이다.
시니컬(cynical)이라는 단어는 흔히 한국어로 "냉소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조소하고 비웃는 태도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원래 cynical은 시닉(cynic)의 형용사이고, cynic은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고, 절대 명예나 이타적, 이상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사람을 가리킨다. 글쓴이는 네타냐후 총리가 전형적인 시닉이라고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유대인들도 힘이 없을 때 그렇게 당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보는 인류 역사는 항상 힘을 가진 쪽에 유리하게 진행된다.
네타냐후 총리가 유토피아에 대한 약속을 믿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게 진보적인 국제주의자들의 약속이든,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들의 약속이든 네타냐후는 믿지 않고, 그 대신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힘(hard power)에 베팅한다. 네타냐후가 2018년에 했던–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연설에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힘없는 나라는 무너지고, 살육당하고, 역사에서 지워집니다. 하지만 좋은 나라든, 나쁜 나라든 강한 나라는 살아남습니다. 강한 나라는 존중을 받고, 다른 나라들이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결국 평화조약은 강한 나라와 맺습니다."
나를 비롯해 네타냐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네타냐후가 지금과 다른 미래 세상을 그리려 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포에 따라 행동하는 "벙커(bunker)에 갇힌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비관주의적 전망이 맞을 때도 있지만, 이스라엘을 볼모로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자신을 유대인들에게 적대적인 세상에서 유대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가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권위주의 지도자들(strongmen)과 점점 더 가깝게 지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팔레스타인에 어떤 양보도 하지 않는 이유도 그거다. 네타냐후는 그 문제를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생각한다.
달리 말해, 네타냐후가 AI 테크놀로지와 그걸 홍보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반동적(reactionary) 정치의 동력이 되는 시니컬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가 유대인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하는 다른 나라들의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점점 강력해지는 AI 기술을 관리, 통제하겠다는 AI기업의 말–혹은 AI 기술 자체–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는 패널 토의 때 이런 말을 했다:
"삶은 힘겨운 싸움(struggle)입니다. 자연의 힘과 맞서든, 동물과 맞서든,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맞서든, 우리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애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인류가 스스로를 정의해 온 방식이죠. 개인으로서든, 국가로서든, 아니면 인류 전체로서든,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해왔습니다."
항상 낙관론자로 살아온 일론 머스크는 인류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전기차를 만들고, 화성으로 가는 로켓을 만들고, AI 알고리듬을 만든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이 모든 기술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걸 만든 인간의 의도를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아는 한 인류 역사에서 인간은 선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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