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착오 ① 푸틴의 내러티브
• 댓글 2개 보기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의 방어선이 쉽게 무너질 것으로 예측했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약해서라기 보다는 (2014년에 크림반도를 빼앗긴 후 우크라이나군은 제법 덩치를 키웠다) 국내외에서 많은 군사작전을 수행한 푸틴과 러시아군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푸틴은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군을 꾸준히 현대화해왔다.
하지만 정작 전투가 시작되고 보니 러시아군이 생각 외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각지에서 모여 외국 침략에 투여된 직업군인들과 자기 나라를 지키려는 군인, 시민군의 사기에도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러시아군의 전략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를 분석한 복스(Vox)의 기사들을 몇 회에 걸쳐 번역, 소개한다. 오늘 글의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시작한 지 4일이 지났지만, 러시아군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4,300명의 병력이 사망했고, 150대에 가까운 탱크를 잃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와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하르키우(Khariv)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지키고 있다.
사상자의 수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취급해야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러시아 측이 초기에 기대했던 결과와는 크게 대조된다. 러시아군은 수적으로 우세하고 현대화된 무기를 더 많이 갖고 있어서 침공작전은 빠르고 상대적으로 손쉬울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으로 이들을 막아내고 있다.
근래 들어 러시아가 지상군이 공군의 지원을 받는 전통적인 전술에 정보교란과 전파교란 같은 전자전(electronic warfare)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전쟁 능력을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정보(교란)전에서 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양의 비디오와 정보가 우크라이나 측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은 젊고 소셜미디어를 잘 다루고 있고, 투명한 정보 공유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크렘린의 허위정보를 막는 강력한 해독제가 되고 있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싱크탱크인 전쟁학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에서 상임 러시아 분석가로 일하는 메이슨 클라크는 "지난 48시간 동안 크렘린이 전 세계적으로 이 전쟁과 관련한 내러티브를 통제하지 못하는 걸 지켜보는 건 흥미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라고 한다.
이번 전쟁은 근래에 일어났던 시리아 내전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는 눈에 띄게 다른 전쟁이기도 하다. 비록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력 차이는 존재하기는 해도 분산된 내란이 아닌, 두 나라의 공식적인 군대 사이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국민이 전쟁에 나서는 것도 (다른 전쟁과) 다른 점이다. 시민들이 총을 들고, 화염병 제조법을 배우고, 도로에서 탱크에 맞서고 있는 게 그렇다.
메이슨 클라크는 2월 26일에 복스(Vox)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시점까지 그가 살펴본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전쟁이 최근의 다른 분쟁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러시아가 아직 사용하지 않고 갖고 있는 자원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래 등장하는 이 대화는 길이와 명확성을 위한 편집을 거쳤다.
엘렌 이오아네스 | 러시아가 지난 10, 20년 동안 자국의 군사력을 어떻게 변화, 업그레이드해왔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죠.
메이슨 클라크 | 짧은 답부터 말씀드리면 러시아 군장비의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많은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무기로 싸우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에 더 나은 장비와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진 탱크를 가진 부대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변하지 않은 이유는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군장비와 무기, 심지어 탄약도 교체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죠. 그렇다 보니 2014년 전쟁 때와 실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러시아군이 개선했다고 강조해온 것들이 있는데 이상하게 이번 전쟁에서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아요. 가령 전자전이 그렇습니다. 러시아군이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죠. 크루즈 미사일이나, 새로운 전투기, 전략 폭격기처럼 러시아 독트린이 이런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신무기의 사용을 이번 전쟁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푸틴은 이번 전쟁을 계획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나 빨리 무너질지에 대해 심각한 계산착오를 했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잘못된 계획을 세웠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집중된 미사일 사격이나 우크라이나 방어선을 파괴할 수 있는 공습을 여전히 피하고 있습니다. 이게 진정한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화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내러티브를 손상하지 않으려는 거죠.
엘렌 이오아네스 | 아, 말하자면 적에 대한 기대를 축소하는 거군요.
메이슨 클라크 |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 72시간 동안 목격한 것처럼 러시아군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못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군이 아주 잘 싸우고 있고, 몇몇 지역에서 아주 아주 강력한 방어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 연구소에서 우려를 갖고 앞으로 48시간 동안 지켜보려는 것은 러시아군이 접근법을 바꿔서 추가 병력을 투입하겠느냐는 겁니다. 이들이 키예프나 하르키우를 공격하면서, 혹은 자포리자(Zaporizhzhya,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진격하면서–토요일에 이 도시 외곽으로 접근했죠–파괴력이 더 강한 접근법을 사용할 것인지 지켜봐야 합니다. 이제까지 키예프와 다른 도시에 대한 공격이 파괴력이 작았던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군이 가진 능력을 시리아나 2000년대 초 체첸 반군과 싸울 때처럼 전부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엘렌 이오아네스 | 그렇군요. 과거의 분쟁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니 그때와 지금 사이에 몇 개의 유사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다른 분쟁에서 러시아는 병원을 폭격했다고 하고 그게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사용한 그런 방법을 이번 전쟁처럼 전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용 가능할까요?
메이슨 클라크 | 가능합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저는 러시아군이 그런 (무차별) 공격을 내놓고 사용하기 시작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지난 24시간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민간인 거주지를 공격한다는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공포를 조장하고 어쩌면 우크라이나군의 함락을 유도하기 위한 것일 것 같지만 그런 (시민의 공포나 함락 같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적하신 것처럼 그런 불일치나, 전쟁에서 볼 수 있는 혼란, 특정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가졌느냐에 대한 보도 같은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투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들이 아주 많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러시아군의 행위들, 특히 민간인을 상대로 한 폭력과 민간 목표물에 대한 공격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의미에서 지난 48시간 동안의 전투 상황은 흥미로웠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크렘린이 전세계를 상대로 이번 전쟁과 관련해서 주장하던 내러티브의 통제를 상실하는 모습을 보는 건 좋았습니다.
작동하지 않은 '하이브리드' 전쟁
엘렌 이오아네스 | 우리가 지금 접하는 정보를 보면 사람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이야기하던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은 이번 전쟁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 같군요.
메이슨 클라크 | 맞아요. 저도 동의하고, 그게 이번 전쟁의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러시아는 (전쟁을 이야기하는) 내러티브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상실했어요. 심지어 자국민들에 대해서도 그래요. 저는 푸틴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동료 카티야와 어젯밤에 상황 업데이트를 했는데요, 흥미롭게도 러시아 미디어는 전쟁을 전혀 이야기하고 있지 않아요.
오늘(27일)까지도 러시아 미디어는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간스크 공화국(러시아가 독립국이라고 선포한 우크라이나 동쪽의 친러 반군 점령지역–옮긴이)에서만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쳐 일어나는 전투는 보여주지 않고 있고, 러시아 측 사망자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측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여주는 대신 우크라이나에서 촬영된 영상을 원래 맥락을 제거하고 전쟁을 (유리하게) 묘사하는 데 사용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민으로부터 상당한 반대에 직면해있고, 진정한 반전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초기의 시위는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지난 몇 년 동안 러시아가 얼마나 압제 시스템을 구축해왔는지를 생각하면 대단한 일입니다.
광범위한 하이브리드 수법이 사용되지 않는 것도 러시아가 보류하고 있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푸틴이 원했던 바는 아니라는 게 저희의 분석입니다. 병력 배치와 우크라이나와 NATO에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시간이 길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된 듯해요. 저는 특히 미국의 정보당국과 유럽의 동맹국들이 이 부분에서 일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크렘린이 지난 12월부터 2월까지 사용하던 하이브리드 수법의 많은 부분을 폭로한 것 말입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수도 키예프에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왔고, 심지어 현 정부를 이어받을 사람들까지 뽑아놨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미 정보부는 1월 말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이 민간인들을 죽이는 가짜 영상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지 않습니까. 저는 크렘린이 혼란을 일으키는 사이에 정보를 조작해서 퍼뜨리는 식으로 이 전쟁을 시작하려던 방법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계획들이 폭로되는 바람에 러시아는 어쩔 수 없이 내놓고 직접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푸틴의 내러티브
엘렌 이오아네스 | 맞아요. 그런 내러티브 조작의 시도가 많았죠. "아, 우크라이나는 원래 러시아의 일부였지. 우리는 같은 민족이야"라고 하다가 돌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라고도했죠. 같은 민족이라면 그런 얘기가 말이 안 되는데도 그렇게 앞뒤가 다른 말을 했죠.
메이슨 클라크 | 그 부분을 부연 설명하자면, 말씀하신 내용이 푸틴이 자국 내에서 이 전쟁을 어떻게 포장하고 있는지를 아는데 중요합니다. 크렘린과 크렘린이 통제하는 미디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키예프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아주 선명하게 구분합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를 해방자로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들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네오나치와 마약 중독자들이라고 묘사하죠.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는 모릅니다. 이 두 개의 주장을 조율하는 게 흥미로운데요, 제 생각에는 이 둘을 섞어서 러시아 국민들에게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고, 우크라이나 정권을 몰아내는 것을 정확하게 겨냥한 개입'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연구소 내에서는 요즘 크렘린이 얼마나 이성적(rational)인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크렘린은 말하자면 자신들이 만든 거짓말을 믿는 것 같아요(they seem to have drunk their own Kool-Aid). 외세가 심어놓은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생각하는 우크라이나 정부만 제거하면 된다고 정말로 믿고 있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가) 그렇게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는 듯합니다. (크렘린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죠.
엘렌 이오아네스 | 그 말은 푸틴이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얘기인가요?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면 말이죠. 서방 세계가 푸틴이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군을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 믿고 있다는 가정 하에 대처하고 있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체첸이나 조지아의 경우 러시아는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거나 '이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지 않습니까? 둘 사이에 유사점을 찾을 수 있나요?
메이슨 클라크 |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우선 체첸의 경우 자국 내 테러(domestic terrorism)로 프레임 했고, 조지아의 경우 남오세티야(South Ossetia), 압하지아(Abkhazia)처럼 분리주의자들이 차지한 지역이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공화국, 루간스크 공화국과 비교할 수 있죠. 하지만 프레임은 아주 달랐습니다. 심지어 2008년에 일어난 조지아를 상대로 벌인 전쟁도 러시아는 순전히 이들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전쟁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했죠. 조지아를 재정복 한다거나, 잃은 영토를 회복한다는 식의 프레임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는 분명히 그런 프레임이고요.
푸틴의 현실 인식과 관련해서는 좀 조심스럽습니다. 특정인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그의 행동에 이유를 부여하는 일도 피하고 싶기 때문이죠. 하지만 짧게 답하면 그렇습니다. 푸틴의 접근법에 뭔가 변화가 생긴 듯 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그가 사고하는 방식이 변한 걸 수도 있습니다. 푸틴이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으로 고립되어 지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그가 그동안 러시아 정부 내에서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100% 확인된 정보는 아니지만 유출된 내용에 따르면 푸틴이 제대로 된 군사 자문을 듣지 않고 있고, 러시아군 장교들 역시 이번 작전과 전쟁 전반에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최소한 지금의 푸틴은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보아온 푸틴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계산착오 ② 준비 안된 군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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