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츠는 아티스트로서의 좌절과 불안증을 견디지 못하고 작품 활동을 포기한 후 완전히 다른 일, 즉 장거리 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운전하고 돌아와 다시 텍사스로 떠났다 돌아오는 일의 반복이었다. 당시 자신은 분노와 질투, 증오로 가득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가 가장 컸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후 40대에 미술계로 돌아온다,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아닌, 글을 쓰는 평론가로서.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얼떨결에 이 일을 하게 되었고, 여전히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내용은 독자들보다 24시간 정도 먼저 알게 된 것일 뿐이에요 (I'm about 24 hours ahead at most of my readers). 저는 아티스트로 시작했고, 미대에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제 얘기를 듣는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루저(loser)입니다. 아마 훨씬 더 심한 루저일 거예요." 유명한 미술 평론가이면서 아직도 일을 배우는 중이라거나, 자신이 쓰는 독자들보다 하루 먼저 알게 된 것들이라는 말은 물론 겸손한 표현이지만, 공허한 겸손으로 들리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글을 쓰는 일을 하는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생각한다.

솔츠는 미술을 하는 게 두려워 미술계를 떠났지만, 바깥 세상은 너무나 힘들었고, 여전히 분노와 질투로 죽을 것 같아서 미술계로 돌아오기로 했다. 글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지만 평론이 차라리 쉬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대로 특정한 이론적 시각을 바탕으로 썼고,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제리 솔츠의 책 'Art Is Life' (2020), 'How to Be an Artist' (2022)

그런 제리 솔츠는 현대 미술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는 미술(art)은 동사인데 사람들이 명사로 취급하면서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아트라는 단어가 실제로 동사라는 말이 아니라, 예술이 수행적(performative)이라는 의미의 설명이다.

"우리는 시각예술을 두고 아주 슬프고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아바(ABBA)의 노래를 들을 때 그 의미를 생각하세요? 우리는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곡의 의미가 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술 작품을 보면 의미를 물어요. 미술(art)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동사로 존재했는데 우리가 이걸 명사로 만들었습니다. 미술 작품은 하는 일이 있어요. 프로테스탄트에 반대했던 미켈란젤로의 작품처럼 가톨릭교회의 프로파간다(선전)를 전파하기도 하고, 나폴레옹 군대에 반대한 고야의 작품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마크 로스코(Mark Rothko)라는 아티스트를 아세요? 희미한 네모가 화면에 붕 뜬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데, 사람들은 그의 그림 앞에 서서 웁니다."

로스코의 작품에 대한 솔츠의 말은 맞다. 예전에 나의 경험을 글로 쓴 적도 있지만, 나는 내가 그림 앞에서 울었다는 사실에 당황했는데, 나중에 로스코의 그림을 보며 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더 놀랐다. 그의 작품이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 심리적 효과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런 현상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관객들이 유독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운다는 건 예술이 가진 수행적(performative) 기능을 보여주는 예다. 솔츠는 그 얘기를 하는 거다.

내가 앞에 서서 걷잡을 수 없이 울었던 그림과 가장 가까운 로스코의 작품 (이미지 출처: Guggenheim Museum)

"이런 작품들은 목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갖고 있는 '내가 아는 척하는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impostor syndrome, 리플리 증후군)을 잠재우고 작품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면 색이 너무 갈색인데, 갈색을 너무 많이 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 생각을 잠재우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렘브란트의 작품을 좋아할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렇다면 아티스트는 어떤 사람일까? 솔츠는 위대한 아티스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아티스트들은 모두 아웃사이더들이고 자수성가(self-made)한 사람들입니다. 미대를 나왔든지 그냥 혼자 작업을 했든지 상관없이 모두 그래요. 말하자면 이 사람들은 마을 밖에 혼자 살고 있는 꾀죄죄한 주술사(shaman, 무당)예요.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고 스튜디오에 가면 자기 식대로 희한하게 꾸며 놓고 있죠. 이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것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그게 당신들에게 필요한 거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 작업은 제가 글을 쓰는 거나, 여러분이 팟캐스트를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내가 가진 열정과 욕구, 그게 착각일 수도 있어도 내가 가진 생각을 용기 내 실행에 옮기는 거죠. 위대한 아티스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게 그거예요(....) 혹시 제 말을 듣고 계신 아티스트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고대인들이 하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계시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도 그림을 그렸고, 여러분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실행하고 실패하세요. 그저 그런 작품이라도 만드세요. 그저 그런 수준의 작품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든 건 아니죠.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그러고 있는 거예요.

위대한 아티스트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런 일을 시작할 용기가 있다는 겁니다."

프랑스 라스코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동굴 그림 (이미지 출처: UMass Boston)

그가 부모들에게 하는 충고도 비슷하다. 자기 아이가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누구나 '혹시 우리 아이가 미술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의 재능을 계발하고 싶은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아이는, 아니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걸 창피하게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개입해서 고쳐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여러분이 가진 멍청한 생각이지 아이가 가진 멍청한 생각이 아니니까요. 노먼 로크웰(Norman Rockwell)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더 뛰어난 화가라고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핵심은 타이거 부모(tiger parents)가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 분야가 하나 있다면 그게 미술입니다. 아이들은 자유기계(freedom machine)이니 그렇게 작동하게 두셔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멍청한 시스템(dumb system)이 만들어집니다. 그게 예술의 정의입니다."

솔트는 미술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500년 동안 미술에 일어난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21세기에 들어온 후에 생겼다"라고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팬데믹과 인종 문제로 사회에 거대한 변화가 생겼고, 미술계는 시스템이 붕괴될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특히 고질병을 앓고 있던 미대/미술학교들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단다. 그렇다면 NFT나 챗GPT, DALL-E처럼 최근에 일어나는 테크놀로지의 급진전은 미술에 어떤 영향을 줄까?

"NFT도, 인공지능도 모두 도구에 불과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위대한 AI 예술가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예술은 좋아지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립니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그냥 재료입니다. '나는 아크릴 물감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이 있나요? 같은 이유로 저는 누군가를 '디지털 아티스트'라고 부르지 않아요. 아티스트는 재료를 사용하는 사람들이고 디지털 파일은 재료입니다."

"예술은 인류가 의식과 사고를 재료를 통해 탐색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운영 체제(operating system)입니다. 그게 예술이고, 어쩌면 예술은 인류를 사용해서 스스로 자기복제를 하는 걸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진행자는 그에게 과거로 돌아가서 25살의 자신에게 충고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인터뷰 전체를 통해 가장 힘이 들어간, 그래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발 포기하지 마. 네가 형편없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야. 너의 투지(drive)은 너도 느끼는 것처럼 엄청난 거야. 과거 예술의 선조들과 소통해라. 너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할 수만 있다면 너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 (you have a shot).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고립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남을 시기하지 않아도 돼. 루저가 되는 거 겁내지 마라. 남들도 똑같은 루저들이야."


맺음말을 대신해서 그의 책 '아티스트가 되는 법'에 나오는 한 챕터를 소개한다. '용기를 가지라'는 제목의 글이다.

용기는 측정할 수 없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도 우리는 모두 삶에서, 직업에서 진정한 용기와 희생이 요구되는 일을 하게 된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지 몰라도 우리는 공포와 회의와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에 맞선다. 훌륭한 예술 작품은 하나같이 그 속 어딘가에 (예술가의) 용기가 들어있다.
당신의 예술에 용기를 사용하라. 당신이 하는 작업에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는 태도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장애물을 치우라. 당신의 작품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 누군가에게 조언을 부탁하는 일, 멘토를 찾는 일, 학교나 갤러리,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제출하는 일 모두 엄청난 믿음을 요구한다. 앨리스 닐(Alice Neal) 같은 아티스트가 아무도 비슷한 작품을 만들지 않던 시절에 할렘에 있는 아파트에서 거친 붓질로 인물화를 그리기로 했을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생각해보라. 알렉스 캣츠(Alex Katz)가 추상화가 지배하던 1950년대에 크고 평면적인 구상화를 그린 것을 생각해보고, 싸이 트웜블리(Cy Twombly)가 불규칙하게 끄적거린 선을 그리는 것을 자기 커리어로 삼은 것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의 예술이 그만의 직관적인 논리를 따르게 했다.
용기는 절박한 상황에서 하는 도박이고, 그걸 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창의성을 선물할 천사의 품에 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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