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은 많은 사람이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독자층이 크지 않은 장르다. 다만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에서는 미술에 관심이 있고 작품을 구매할 만한 사람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영어의 특성상 독자들이 전 세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도 제법 알려진 인기 평론가들이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제리 솔츠(Jerry Saltz)가 그런 평론가 중 하나다.

하지만 단지 미술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솔츠를 소개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평소 즐겨 듣는 팟캐스트(Pivot)에 솔츠가 등장해서 진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다가 그가 들려주는 인생 얘기에 공감하는 게 많아서 이건 오터레터 독자들도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팟캐스트에서 그가 말한 내용만 소개해도 충분히 좋지만 (팟캐스트 에피소드는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설명을 더하기로 했다. 직업상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솔츠가 드물게 자신의 아티스트 시절을 이야기한 기사, 'My Life As a Failed Artist (실패한 아티스트였던 나의 삶)'이라는 글과 그가 2020년에 펴낸 책, 'How to Be an Artist (아티스트가 되는 법)'도 참고했다. 둘 다 재미있고, 아티스트가 아니어도 즐길 만한 내용이 많다.

제리 솔츠 (이미지 출처: Sotheby's Institute of Art)

제리 솔츠는 1951년생, 이제 70대에 들어선 유대계 백인 남성이다. 시카고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미술을 전공하고 미국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와서 작품을 만들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는 아티스트의 길을 완전히 포기하고 장거리 트럭 운전을 하면서 살았다. 장거리 트럭 운전은 특별한 학력이 없이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야 하는 직업. 솔츠는 그런 일을 하는 유대계는 자기밖에 없어서 운전기사들끼리 무전으로 대화할 때 자신의 콜사인이 "Jewish Cowboy (유대계 카우보이)"였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도 '샬롬(Shalom)"이라는 유대계 인사말을 일부러 사용했다.

그랬던 솔츠가 트럭 운전을 그만두고 다시 미술계로 돌아와 미술평론을 시작한 것은 그가 41세 되던 해였다.

1980년대 미국의 장거리 운송 트럭들 (이미지 출처: Pinterest)

하지만 새로 시작한 평론가 생활도 쉽지 않았다. 솔츠는 한때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풍부했지만, 글을 써본 적은 없어서 글쓰기 공부를 위해 아트포럼(Artforum, 미국에서 미술 쪽에서 일한다면 반드시 봐야 하는 유명한 잡지)에 실린 평론을 아주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트포럼에 실린 글을 보면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간신히 이해하고 나면 '이 사람들은 미술을 싫어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결국 솔츠는 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완전히 바꾼 후에야 비로소 평론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솔츠는 지금은 유명한 평론가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folk-critic' (대중적인 일반인 평론가)로 생각한다. 고상한 말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이라는 그의 설명은 그의 성격이나 스타일 때문일 수 있지만, 어쩌면 다른 많은 평론가처럼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고 실기를 전공한 (그것도 중퇴한) 조금 다른 경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잠시 주제에서 살짝 벗어나 이야기해 보면, 미술 평론은 읽기 쉬운 글이 아니라는 건 솔츠의 불평만은 아니다. 요즘은 거의 읽지 않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시절만 해도 아트포럼이나 뉴욕타임즈, 빌리지보이스(Village Voice), 아트인아메리카(Art In America) 같은 매체에 실린 평론을 공부하는 자세로 읽었다. 그 시절에도 평론은 참 읽기 힘든 글이었다. 하지만 평론이 어려운 이유가 반드시 평론가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 어느 집단이든 내부에서 일어나는 대화가 오래 이어지면 서로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건 일베 커뮤니티나 학계도 다르지 않다) 외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된다. 무엇보다 오늘의 대화는 어제의 대화를 기반으로 이어지고, 올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10년 전, 20년 전의 논의를 언급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즉, 그 집단 내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된다.

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이 특정 집단에서 고도로 발전한 담론에 도중에 끼어드는 것은 차량들이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도로에 (평행하게 달리면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진입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진입하려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커뮤니티에 갓 들어온 멤버가 그곳에서 오가는 대화에서 행간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려면 거기에 오래 머무르면서 과거에 논의된 내용과 대화법에 익숙해져야 하듯, 단단한 공동체를 이루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온 미술계에서 대화하는 중요한 방식인 미술 평론을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평론의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일반인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평론가들은 있다. 내가 대학원 시절 꼬박꼬박 챙겨서 읽었던 뉴욕타임즈의 평론 중에서도 홀랜드 코터(Holland Cotter)와 로버타 스미스(Roberta Smith)는–적어도 같은 신문의 마이클 키믈먼(Michael Kimmelman) 만큼–난해하게 평론을 쓰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제리 솔츠와 로버타 스미스 (이미지 출처: XLSemanal)

제리 솔츠는 트럭 운전사에서 다시 미술계로 돌아와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평론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건 솔츠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솔츠는 빌리지보이스, 아트인아메리카, 플래시아트인터내셔널 (Flash Art International)같은 주요 아트 저널에 꾸준히 평론을 게재해왔다.

나는 솔츠가 내가 좋아하던 평론가 로버타 스미스와 결혼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읽고, 비로소 연결점을 찾은 느낌이었다. 사람이든 지식의 주제이든 이런 점이 연결될 때 더 관심이 생긴다.


솔츠는 위에서 언급한 자신의 책 'My Life As a Failed Artist (실패한 아티스트였던 나의 삶)'에서 자신이 20대 초에 얼마나 자신만만한 미술학도였는지 이야기한다. 비록 등록금을 내기 힘들었고, 졸업하지도 못했지만, 유명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를 잠시나마 다녔고, 22살 때는 아직도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급했을 만큼 자신감이 넘쳤고, 친구들과 함께 갤러리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뉴욕 미술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성공은 점점 가까워졌다. 20대 중반에는 개인전을 두 번이나 열었고,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에 작품을 팔기도 하면서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하지만 뉴욕에 도착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의 미술계는 솔츠가 익숙했던 시카고와 많이 달랐고, 그는 뉴욕의 아티스트들과 비교해서 자신은 그림 실력도 모자랄 뿐 아니라 지적인 깊이도 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솔츠를 괴롭힌 것은 자기 의심(self-doubt, 자기 회의)이었다.

"공포감이 몰려왔고, 나 자신을 미워했고, 내 작품에 대한 어두운 생각이 찾아들었다. 무의미하고, 진부하며, 우스운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드로잉도 제대로 못 하잖아.' '학교도 마치지 못했지. 네가 하는 작업은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고, 너는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니야. 네 작품은 의미가 없어.' '너는 미술사도 모르지, 그림도 못 그리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지. 가난하기도 하고. 너는 작품을 끝낼 만한 시간도 없어.'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어. 너는 가짜야. 너는 큰 작품을 만드는 게 두려워서 작은 작품만 만들지' 같은 생각이 밀려들었다."

게다가 어둡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인이 된 솔츠를 계속 괴롭혔다. 솔츠의 어머니는 솔츠가 10살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사실을 아무도 솔츠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장례식에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곧바로 재혼했고, 새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중 한 아이는 솔츠와 동갑이어서 자라는 내내 싸웠다. 그렇게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아버지는 솔츠만 때렸는데, 아버지가 때릴 때 사용하는 가죽벨트는 항상 냉장고 손잡이에 걸려있었다. 그에게 집은 지옥이었다.

솔츠는 "내가 아는 모든 아티스트가 새벽 3시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깬다"라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걸 사나운 평론가와 관객에게 평가를 받는 일은 소름끼치게 무섭고 힘든 일이다. 게다가 많은 아티스트들이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경제적 고통은 다른 모든 어려움을 몇 배로 힘들게 만든다. 솔츠는 공황 발작(panic attack)을 겪었고, 사람들이 두려워졌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순전히 밤에 잠을 자기 위해서 하루에 5시간씩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듯한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기 시작했다. 더 넓은 공간, 더 많은 시간, 돈, 교육, 더 나은 커리어를 가진 모든 사람을 시기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솔츠가 느낀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나도 솔츠와 거의 똑같은 경험이 있다. 이게 내가 솔츠라는 사람을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다.


'솔츠의 충고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