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짧은 버전이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에 게재되었습니다.


지금은 백신 접종이 적어도 선진국에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지만, 작년 중반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이렇게 빨리 개발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에 들어가는 기간을 생각하면 2022년에 나와도 빨리 나오는 거라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에 코로나 방역에 실패해서 비판을 받는 트럼프 행정부가 팬데믹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정책이 있었다. 바로 워프 스피드 작전(OWS : Operation Warp Speed)이다. 신종 감염병 백신 개발에 걸리는 3, 4년의 시간을 일 년 이내로 단축하기 위해 우리 돈으로 약 12조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붓는 엄청난 정책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워프 스피드 작전의 핵심은 높은 백신 개발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실패율을 고려해 여러 제약회사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백신을 시도하되, 그로 인한 재정적 위험은 정부가 떠맡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 미국 백신들(화이자·얀센·모더나)은 그렇게 해서 성공한 제약회사의 백신일 뿐이고, 세 군데는 개발이 지연되고 있거나 실패했다. 길고 긴 임상 테스트 기간도 테스트 숫자를 늘려 단축했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짧아도 그 검증은 여느 백신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고 한다.

소아마비(Polio)

그런데 세계적인 제약사들을 보유한 미국이 개발된 지 수십 년이 된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백신이 있다. 바로 소아마비 백신이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도 소아마비를 앓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쪽 혹은 양쪽 다리가 성장을 멈춰서 보행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소아마비를 앓았구나’하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낯설지 않은 질병이었다.

물론 지금은 과거와 달리 아이들, 아니 젊은 층에서는 소아마비를 앓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poliovirus)를 예방하는 백신이 보편화된 덕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을 흔히 ‘코로나’라고 부르듯, 폴리오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인 소아마비를 서양에서는 ‘폴리오’라 부른다. 대부분 대변·구강 경로로 전파되기 때문에 호흡기 전염병인 코로나19처럼 확산이 빠르지 않다. 감염된 사람의 70%가 증상을 보이지 않고 넘어가고, 25% 정도는 가벼운 증상만을 겪고 끝나지만 2∼5%의 아이들은 심각한 근육 약화(바이러스가 공격하는 근육들)를 겪고, 사망하기도 한다. 일단 발병하면 아직도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백신을 통한 예방이 답인 질병이다.

서기전 140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의 부조에는 소아마비를 앓은 것으로 보이는 남성이 등장한다.

이 질병의 존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40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의 부조다. 한 성인 남성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한쪽 다리가 훨씬 가늘고 성장이 멈춘 듯 짧은, 전형적인 소아마비의 흔적이다. 하지만 소아마비는 1800년대까지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었고, 환자가 드물었다. 그러다가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아마비는 삶의 질이 높아진 선진국 사회에 널리 확산되면서 감염병으로서의 정체를 드러냈다. 왜일까.

이를 위생가설로 설명하는 학자들이 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는 폴리오바이러스가 흔해서 갓난아기들 몸에 들어갔는데, 환경이 점점 깨끗해지면서 아이들이 밖에 돌아다니는 나이에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갓난아기들은 엄마에게서 받은 항체 때문에 면역력이 강해서 폴리오바이러스를 쉽게 이겨내는데, 걷기 시작할 때 즈음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발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소아마비라는 이름과 달리 성인도 감염될 수 있는데, 일단 병에 걸릴 경우 성인의 치사율은 아이들보다 5배 이상 높다.

강철폐의 등장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서너 차례 소아마비가 휩쓰는 에피데믹(epidemic: 전 세계로 퍼지는 팬데믹과 달리 한 지역이나 국가에 퍼지는 감염병)이 있었다. 특히 1952년의 소아마비 에피데믹은 미국 사회를 공포 상태로 몰아넣었다. 오죽했으면 “원자폭탄 다음으로 큰 공포”라는 말이 나왔을까. 3만5000명의 확진자가 쏟아졌고, 그중 대부분이 밖에서 뛰놀던 어린아이들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크게 앓지 않고 넘어갔지만, 많은 수의 아이들이 마비를 겪었다. 그런데 폴리오바이러스는 때로는 환자의 횡격막을 공격하거나 호흡에 필요한 근육을 손상시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환자는 호흡을 하지 못해 산소공급이 끊겨 질식사하게 된다.

이런 환자들이 늘어나자 유행한 기구가 바로 강철폐(iron lung)다. 정확한 이름은 ‘음압인공호흡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양압인공호흡기가 산소를 불어넣는다면, 강철폐는 음압을 이용해서 숨을 쉬게 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작은 원통 안에 들어가 머리만 내놓고 있고, 그 원통에서 펌프질로 빼는 순간 환자의 가슴(폐) 부위가 부풀어 오르고 그 결과 환자의 코로 공기가 들어가는 것이다. 즉, 횡격막을 잃었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원통의 펌프질이 그걸 대신하는 셈이다.

1950년대에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은 많은 아이들이 회복될 때까지 몇 주 동안 이 기구의 도움을 받았지만, 심한 경우는 평생을 이 기구에 의존해서 살아야 했다.

음압을 사용한 강철폐의 작동원리

조나스 솔크

사람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존재하던 것을 실제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여기에 대해서는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에서 이야기한다) 그렇게 존재해온 것은 당연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소아마비 백신이 이미 존재하는 세상에 태어났고, 소아마비 백신이나 홍역 백신 같은 건 아주 옛날부터 아이들이 맞아온 당연한 의료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백신의 혜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저 그들보다 조금 늦게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을 뿐이다.

소아마비를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한 건 조나스 솔크(Jonas Salk, 1914~1995. 한국에서는 흔히 ‘소크’로 알려져 있지만 솔크가 맞다)였다. 뉴욕에서 유대계 이민자 부부 사이에 태어난 솔크는 15세에 당시 노동자 계급 이민가정의 꿈이라고 하는 CCNY(The City College of New York, 특혜 없이 성적만으로 입학할 수 있었고 등록금이 무료였다고 한다)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뉴욕대학교(NYU 역시 당시 다른 대학들과는 달리 유대계를 차별하지 않는 학교였다)의 의대에 입학해서 공부했다. 의대에서 성적은 우수했지만 의사가 되는 것보다는 과학 자체에 더 큰 관심이 있어서 연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그가 폴리오바이러스를 연구하게 된 것은 그가 미국 소아마비 재단(National Foundation for Infantile Paralysis)의 폴리오 연구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 재단은 다름 아닌 프랭클린 D. 루즈벨트에 의해 설립된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휠체어에 대해서는 예전 글에서 설명했다). 솔크는 처음에는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사용하는 시도를 하다가 방향을 바꿔 죽은 폴리오바이러스를 사용하기로 했고, 1952년에 동물실험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요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들다. 솔크는 동물실험을 통과한 백신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 사는 요양소에 가서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고, 몇 주 후에는 정신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였겠지만,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이듬해인 1953년에 실험용 백신을 집으로 가져가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주사했고, 1954년에는 백만 명의 아이들을 선정해 실험을 한 후에야 비로소 안전 검증을 받을 수 있었다.

솔크는 개발된 백신에 특허를 내지 않기로 했고, 이윤을 포기함으로써 전세계 보급에 주력했다. 백신이 확산되면서 비로소 인류는 소아마비를 벗어나기 시작했고 (물론 이 병은 여전히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솔크는 미국에서 영웅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훗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딴 생물한 연구소인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를 설립하게 된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솔크 연구소의 건물은 건축가 루이스 칸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생존자의 걱정

하지만 백신이 나오기 전에 이 병에 걸린 아이들 중에는 평생 장애를 갖고 살게 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생존자가 폴 알렉산더라는 남성이다. 1946년생인 그는 6살 때 이 병에 걸려 심하게 앓았고, 목 아래의 모든 근육이 심하게 손상되고 횡격막을 잃어서 지금도 강철폐에 의지해 살고 있다. 그는 하루에 몇 시간은 강철폐 밖으로 나와서 생활할 수 있지만 숨을 쉬기가 극히 힘들기 때문에 쉽게 지친다고 한다. 하지만 그대로 잠이 들면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하루의 대부분을 강철폐 속에 누워서 산다. 그는 이런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법대 대학원을 마친 후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는 두 가지 걱정이 있다. 하나는 그가 평생 사용해온 강철폐가 낡아서 바람이 새는데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교체할 부품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찾아와 새로운 부품을 직접 깎아 만들어 강철폐의 수명을 연장해주었다.

강철폐를 평생 사용한 폴 알렉산더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더 심각하다. 폴리오는 백신 개발 이후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지만, 근래 들어 백신에 대한 허위정보를 믿고 아이들에게 소아마비를 비롯한 모든 백신의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크게 늘면서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온라인 모임이 만들어진 적이 있고, 아직도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아이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해서 과거에 사라졌던 감염병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강철폐 안에 있는 자신을 보라며 소아마비는 절대 쉽게 생각할 질병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병원마다 인공호흡기가 모자라자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강철폐를 다시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강철폐는 감염병이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음을, 그리고 백신이 인류사회에 소중한 선물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또 다른 생존자의 강철폐 사용 이야기

이와 관련해서 함께 읽어보실 만한 기사가 오늘 뉴욕타임즈에 실렸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근육을 손상시키는 질병의 치료법을 연구하는 한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