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짜 영매로 활동한 적이 있는 후디니는 심령술사들이 어떤 사기를 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자기 어머니의 영혼과 만나게 해 줄 진짜 영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바램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과 이야기를 하게 된 게 이 때다.

그렇다면 코난 도일은 왜 심령주의와 교령회에 빠지게 되었을까? 그는 1906년에 첫 아내와 사별했고, 첫 아내가 낳은 아들 역시 191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듬해인 1919년에는 자신의 동생 이네스가, 1920년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921년에는 매제(여동생의 남편)가, 그리고 두 명의 여동생이 각각 1924년, 1927년에 세상을 떠났다. 병과 전쟁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식구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자신의 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 있던 코난 도일을 교령회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은 그의 아이들을 돌봐주던 보모였다. 이 여성은 심령주의에 익숙했고, 교령회를 직접 열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코난 도일은 그렇게 교령회를 통해 위안을 얻게 되고, 심령주의를 받아들였다.

코난 도일의 교령회 경험을 이야기하는 데일리메일(Daily Mail)의 1919년 기사. 전문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코난 도일은 단순히 심령주의를 믿기만 한 게 아니다. 그는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면서 심령주의에 대한 발표와 강연을 했고, 사실상 심령주의 운동의 리더가 되었다. 심령주의자들에게는 코난 도일만큼 이 운동에 도움이 되는 사람도 없었을 거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 있는 소설가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 셜록 홈즈는 이성과 연역적 추리(deductive reasoning)의 대명사였다. 그런 글을 쓰는 작가가 교령회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이 운동에 끌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코난 도일이 정말 그 정도로 순진했을까? 그도 사기꾼에 불과한 가짜 영매들이 활동한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진짜 영매도 있다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후디니도 다르지 않았다. 가짜 영매들의 사기를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어딘가에는 자신을 죽은 어머니과 만나게 해 줄 진짜 영매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 후디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후디니는 여전히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기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두 사람은 만난 후 금방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후디니가 영국으로 건너가 마술, 스턴트 공연을 하게 되자 영국에 사는 코난 도일은 자기가 알고 신뢰할 수 있는 영매들을 후디니에게 소개했고, 만나서 교령회를 가져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가짜 영매 노릇을 해본 후디니의 눈에는 이 영매들이 벌이는 사기 행각이 쉽게 보였다. 후디니는 그렇게 교령회를 100개나 가봤지만 전부 사기였다고 했다. 물론 그가 영국에 머문 시간을 생각하면 100개를 참석했다는 건 후디니 특유의 과장이지만, 코난 도일이 추천한 영매들을 많이 만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교령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실 등의 도구를 이용해서 참석자를 속이는 일이 흔했다. 방을 어둡게 해야 한다는 것도 이를 위한 편리한 장치였다. (이미지 출처: BBC)

실망한 후디니에게 코난 도일은 그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서 영혼을 만나지 못한 거라고 설득했다. 영혼은 사냥을 하듯 쫓아가면 안 되고, 열린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많은 종교 집단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신이 너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은 네가 의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근거 없는 주장을 하기에 편리한 얘기일 수 있다.

영국에서 참석했던 교령회들에 실망한 후디니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코난 도일이 미국에 와서 심령주의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었다. 미국을 방문하는 김에 친구인 후디니와 만나기로 한 건 당연한 일이다. 코난 도일의 미국 일정이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은 각각 아내를 데리고 당시 휴양지로 인기 있었던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에서 코난 도일은 후디니에게 깜짝 놀랄 제안을 한다. 자기 아내 진(Jean)도 영매인데, 후디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후디니 어머니의 영혼이 찾아온다는 영감을 받았다는 거다. 그러니 교령회를 열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눠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교령회를 열기로 한 주말이 돌아가신 후디니 어머니의 생일이었다는 사실이다. 후디니는 이 사실을 코난 도일 부부에게 말한 적이 없었는데, 바로 그 주말에 어머니의 영혼이 찾아온다고 했다면 후디니에게는 한번 믿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우연의 일치였다고 해도 후디니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머니를 교령회에서 만날 수 있다는 주장을 "기꺼이 믿을 생각이었다. 나는 믿고 싶었다."

일행은 코난 도일의 호텔 방으로 이동했다. 코난 도일은 창문 커튼을 닫고 탁자 위에 연필과 노트를 올려놓았다. 그의 아내 진이 영혼을 빙의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말이 아니라 손으로 글씨는 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혼이 들려주는 말을 노트 위에 빠르게 받아 적는다는 얘기고, 영매가 무아지경(trance)에 빠져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쓰는 글은 교령회를 찾아온 영혼이 하는 말이라는 거다.

코난 도일이 대표로 기도를 하고 사람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교령회에서 으레 그러듯 서로의 손을 잡았다. 방에 침묵이 흘렀다. 진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탁자를 내리쳤다. 영혼이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진은 영혼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고, 곧 탁자를 세 번 내리쳤다. 그렇다는 얘기다. 진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후디니의 어머니인가요?" 그리고 다시 탁자를 세 번 내리쳤다.

후디니가 입을 열었다. "엄마, 여기에 계세요?"

후디니와 그의 어머니 세실리아 바이스 (이미지 출처: RAGTIME)

그러자 진은 빠르게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한 장을 다 쓰면 옆에 있던 코난 도일이 페이지를 뜯어 후디니에게 건네 주고, 후디니는 그걸 읽었다. 후디니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후디니가 그 교령회에서 받은 노트장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있다.

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드디어 이 자리에 오게 되었구나. 너와 만나려고 무던 애를 썼는데. 이렇게 너를 만나게 되니 행복하구나. 나의 사랑하는 아이, 내 아들과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친구 여러분(코난 도일과 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중략) 제가 지금 있는 곳은 아주 다른 세상이고,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요. 제 아이에게 제가 정말로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Oh, my darling, thank God. Thank God at last I'm through. I've tried, oh, so often. Now I am happy. Why, of course, I want to talk to my boy, my own beloved boy. Friends, thank you with all my heart for this. You have answered the....In this life of mine, it is so different over here, and we see our beloved ones on Earth. That is such a joy and comfort to us. Tell him, I love him more than ever. )

코난 도일에 따르면 후디니는 아무 말 없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고 있었고, 울음이 터질 듯했다고 한다. 마치 오래도록 찾던 것을 얻게 된 아이, 기적을 목격한 사람 같은 표정이었단다. 교령회가 끝난 후 후디니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몸을 떨며 그 자리를 떠났고, 드디어 교령회를 믿게 되었다는 게 코난 도일의 이야기다.

하지만 후디니의 버전은 다르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 후디니는 한 뉴욕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사기를 치지 않은 영매를 만나 본 적이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글을 읽은 코난 도일은 분노했다. 후디니가 눈물이 글썽이는 걸 똑똑히 봤는데? 내 아내가 사기꾼이라고? 화가 난 코난 도일의 편지를 받은 후디니는 교령회에서 노트에 글을 남긴 건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후디니가 그렇게 자신한 데는 이유가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살다가 1878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그의 어머니는 평생 독일어만 사용했다. 그런데 코난 도일의 아내가 노트에 적은 글은 마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이 사용하는 말투였지, 어머니의 말이 아니었다. 노트에 "영혼이 적은" 언어가 영어였던 것뿐 아니라, 내용이 심령주의자들의 설교였다. "세상이 이 위대한 진리(=심령주의)를 알 수 있다면 사람들이 삶을 다르게 살 것이며..." 따위의 말이 그랬다.

코난 도일의 아내 진 레키 도일 (이미지 출처: BBC)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개인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이 어머니의 생일이었는데 어머니의 영혼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게다가 진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맨 위에 십자가 표시(✝︎)를 그려 넣은 것도 우스웠다. 후디니 가족은 유대인이었고, 종교적으로 십자가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코난 도일은 후디니의 이런 주장을 모두 반박했다. 먼저 언어의 문제는 사후 세계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에 영혼이 하려는 말은–비록 생전에 사용하는 언어로 말했어도– 영매가 사용하는 언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영매가 하는 건 영혼의 생각과 감정을 번역하는 것이지 받아쓰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럼 십자가 표시는? 코난 도일은 그 표시는 영혼이 기독교 신자라는 게 아니라, 다른 악한 영혼의 개입을 막기 위해 영매인 아내가 습관처럼 적는 것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디니에게 교령회 때 그렇게 감동했으면서 왜 지금 와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후디니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있었던 교령회를 마지막으로 영매들의 사기 행각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정한 듯 하다. 그 전까지 후디니가 심령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정도였다면, 그 일 이후로는 사실상 심령주의에 전쟁을 선포했다. 교령회가 열리는 어두운 방에 몰래 들어가서 플래시라이트를 켜 몰래 탁자를 흔들고 있는 (참석자들은 흔들리는 가구가 영혼이 찾아온 증거라고 믿었다) 영매의 속임수를 참석자들에 보여줬고, 자신의 생업인 마술, 스턴트 공연을 하면서 심령주의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기를 치는지 자세히 알려줬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팬앤텔러가 하는 공연은 말하자면 후디니의 뒤를 이은 것이다.)

후디니가 심령주의를 금지하는 법안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1면 톱으로 보도한 워싱턴타임즈 (이미지 출처: Library of Congress)

그는 공연에서 청중에게 이를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의회가 돈을 받고 점을 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의회 청문회에 출두해서 법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후디니가 청문회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심령주의자들이 몰려가서 야유를 보내며 발언을 방해했고, 이들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경찰까지 출동했다. 하지만 후디니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심령주의자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가 나를 부르던 별명이 뭔지 말해봐!"

후디니의 눈에 이들 심령술사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가족들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에 불과했다. 무슨 말을 해도 믿고 싶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