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세상에도 심령술사(psychic, 사이킥)를 믿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구글 지도에서 "psychics near me (내가 사는 지역의 심령술사)"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이 동네가 특별히 이상한 곳이 아닌데도 이 정도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점쟁이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신문에는 오늘의 운세가 빠지지 않고, 젊은 세대는 좀 더 서구화되었을 뿐 궁극적으로 같은 목적을 가진 타로점을 본다. 미국도 별로 다르지 않은 거다.

그런데 미국의 심령술사는 어떤 사람들일까?

1990년에 나온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에서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가 연기해서 잘 알려진 (특히 이 장면) 심령술사라는 직업은 한국의 무당, 점쟁이와 제법 흡사하다.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해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본다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 살아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죽은 사람은 혼(혹은 귀신)이 점쟁이의 몸에 들어오는 걸 우리는 빙의(憑依, 영어로는 possession)라 부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좀 더 전문적인 표현으로 '영매(靈媒)'라고 부르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건 거의 모든 문화에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성경(사무엘상 28장)에도 영매가 등장한다. 사울 왕이 영매를 찾아가 세상을 떠난 선지자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는 장면이 있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물론 가볍게 타로점을 보고 기분 전환을 하는 것과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다른 차원이다. 둘 다 비과학적인 태도라고 해도 후자는 이런 믿음에 훨씬 더 깊이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점쟁이가 들려주는 올해의 운세를 믿는 사람도 "돌아가신 당신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하면 사기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현대 세상에서 영매를 찾아 죽은 사람의 혼이나 귀신과 대화를 하려는 사람은 드물고, 점쟁이 혹은 심령술사도 이런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걸로 안다.

하지만 심령술사가 영매 노릇을 하고 대중이 이를 믿던 시절은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20세기 초까지도 사람들은 영매, 빙의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과에도 이렇게 죽은 사람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수들이 있던 시절이다. 이렇게 미신을 믿던 사회가 계몽되어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과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미신을 깨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알리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늘은 그런 사람 중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바로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 1874~1926)다.

마술사/스턴트맨의 대명사 후디니.

해리 후디니

대중을 상대로 눈속임(illusion) 쇼를 직업으로 하던 사람이 미신을 깨는 운동을 했다는 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드문 일은 아니다. 본업이었던 마술사보다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더 유명했던 제임스 랜디(James Randi)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이스라엘의 "초능력자" 유리 겔러의 속임수를 드러내어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가서 승리했고, 마술사 듀오인 펜앤텔러(Penn & Teller)는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를 대중에게 알리고 초자연주의나 유사 과학의 거짓을 드러내는 '펜앤텔러: 불쉿! (Penn & Teller: Bullshit!)'이라는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펜앤텔러의 '불쉿!' 첫 시즌, 첫 에피소드가 바로 영매를 통해 죽은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심령술사들의 사기를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흔한 사기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피해자를 감정적, 금전적으로 착취하는 악질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디니는 왜, 그리고 어떻게 심령술사들과 싸웠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에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 아서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도 등장할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는 내용도 많다.

아래의 글은 This American Life에 소개된 내용을 대화체에서 문어 투로 바꾸고,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을 추가하고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 방송 내용은 여기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때는 1920년대 초, 아직도 사람들이 유령의 존재를 믿던 시절이다. 흔히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는 1918년 팬데믹으로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이 사망한 직후였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약 69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 걸 생각하면, 당시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세계 인구는 지금의 1/4에 불과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족과 친지를 잃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20년대 초는 1차 세계 대전(1914~1918)이 끝난 직후였다. 따라서 미국이나 유럽에 살던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혼이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당시에 유행하던 심령주의(Spiritualism, 혹은 유심론 唯心論)라고 불리던 사고방식이 있었다. 일종의 종교적 믿음으로, 이걸 믿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교령회(交靈會, seance)라는 모임에 참석했다. 어두운 방, 경우에 따라서는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방에 탁자 하나에 둘러앉은 후 영매(심령술사)에게 찾아온 죽은 이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다. 이 모임 중에는 탁자가 흔들리기도 하고, 죽은 이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적어도 참석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참고로, 2001년에 나온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0'에 교령회 장면이 등장한다. 실제로 영혼이 찾아온다면 아마도 아래 영상과 같은 모습일 거다. 원래 교령회는 1800년대 중반에 나타나서 중산층 사이에 크게 유행했다고 하지만, 1920년대에도 미국과 유럽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열리고 있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5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디 아더스' 속 교령회 장면

후디니와 교령회에 관한 책, 'The Witch of Lime Street'을 쓴 저자 데이빗 제이어(David Jaher)에 따르면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에서는 과학자들 중에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초자연적 심령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과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이 대학에 심리학과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심령현상 연구학회(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의 회장을 겸임했다.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의 생리학자 샤를 리셰(Charles Richet)도 영국의 심령현상 연구학회 회장이었다. "영적 에너지가 물질로 구체화한" 엑토플라즘(ectoplasm)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사람이 샤를 리셰다.

지금은 과학과 미신이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믿지만,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둘은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아이작 뉴턴은 연금술사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미신을 믿었던 이성 시대의 "마지막 마법사"였다. 심령술사를 의미하는 psychic과 심리학을 의미하는 psychology는 같은 단어의 파생형이며, Psychical Research라는 표현도 경우에 따라 '심리 연구' 혹은 '심령 현상 연구'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인류는 무지와 미신의 세계에서 아주 서서히 깨어났고, 그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코미디 영화 '고스트버스터즈'(1984)에서 유령이 쏟아내는 엑토플라즘

이런 과학자들이 심령 현상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동안 교령회의 허구를 밝히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인 사람이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탈출 묘기를 전문으로 하는 마술사, 스턴트맨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가 그 사람이다. 후디니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그가 심령술사들에 맞서 싸운 것만으로도 유명해졌겠지만, 이 싸움에는 또 하나의 인물이 개입했다. 바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자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

후디니 같은 유명인이 심령술사들과 전쟁을 벌이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간략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후디니는 1913년에 어머니를 여읜다. 당시 후디니는 39세, 어머니는 72세였다. 자식에게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72세라면 당시 기준으로 장수했다고 할 나이고, 아들도 중년이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쟁과 전염병으로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후디니의 어머니 세실리아 바이스(Cecelia Weiss)

하지만 후디니에게 어머니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일반적인 모자 관계와는 달랐다고 한다. 그는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어머니에게 로맨틱한 편지를 썼고, 불안할 때는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후디니는 어머니를 언급할 때 그냥 "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반드시 "나의 위대한 어머니(my sainted mother)"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my beloved mother)"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요즘 중년의 남성이 그렇게 한다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부르겠지만, 아직 그 개념이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어머니를 여읜 후디니가 어머니를 그리워한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당시 유행하던 교령회에 참석해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혼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후디니는 교령회에 가서 어머니를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교령회를 믿지도 않았다. 왜일까?

후디니는 마술사로 활동하기 전에 교령회에서 가짜 영매로 사람들을 속이는 일로 돈을 벌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교령회가 사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해리 후디니(왼쪽)와 아서 코난 도일

그런 후디니를 교령회에 참석시킨 사람이 바로 그의 친구 코난 도일이다. 단순히 참석을 권하기만 한 게 아니다. 그 교령회에서 영매 역할을 한 사람은 코난 도일의 아내 진 레키(Jean Leckie)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난 도일은–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당시 심령주의를 이끌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후디니 vs. 코난 도일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