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린의 깨달음 ②
• 댓글 남기기제가 공연하기로 되었던 곳이 보스턴에 있는 꽤 잘 알려진 포크 음악 전문 공연장인데, 지하에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공연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는데, 알고 보니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어요.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나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연주자 아닌가. 언젠가는 나도 접근성이 보장된 공연장만 선택해서 공연할 수 있게 되겠지.' 그래서 공연을 했고요.
그런데 그 공연에 제 팬 중 한 분이 그 공연에 오셨어요. 이분이 어떤 분이냐면, 크라우드펀딩으로 제 공연을 후원하신 분이고, 제가 앨범을 낼 수 있도록 후원금도 많이 내신 분입니다. 그런 후원의 대가로 공연 전에 저와 식사를 할 기회와 더불어 보너스로 제가 공연장에 올라가고 내려올 때 제 휠체어를 들어주는 기회를 얻으셨죠. 하지만 공연장의 상황을 보고 저는 이게 그분에게도 위험한 일이고, 제 휠체어에도 위험하고, 무엇보다 접근성 운동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객이 휠체어로 접근할 수 없는 공연장에서는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무대로 올라가는 경사로가 없어서 사람들이 저를 들어올려야 하는 곳이라면 무대를 거부하고 객석이 있는 바닥에서 공연하기로 했죠. 미국에 장애인법(ADA, 여기에 대해서는 오터레터에서 발행한 '주디 휴먼의 도로 점거'와 '세상을 바꾼 여름 캠프'에서 설명했다–옮긴이)이 만들어진 게 30년 전입니다. 3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난 30년 동안 음악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술적인 변화만 해도 오토튠(auto tune)도 나왔고, 조명 기술은 또 어떻습니까? 그런데 무대로 올라가는 나무 경사로 하나 만들지 못하나요? 이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로 하고, 제 출연 계약을 담당하는 에이전트에게 앞으로는 접근성이 보장된 곳에서만 공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용감한 선언을 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우주는 "하하,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라고 하면서 상황을 어렵게 만듭니다. 제가 에이전트에게 그 말을 한 지 일주일쯤 지나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에이전트는 제게 "디트로이트에서 공연하시기로 한 그 공연장 객석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답니다. 계단이 12개가 있다네요. 꼭 하고 싶다고 하신 공연인데... 어떻게 할까요? 공연을 취소할까요?"
그래서 저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공연을 12일 앞두고 예약이 가능하고, 짧은 기간 안에 공연 준비를 마치도록 협조해 줄 그런 곳이 어딜까? 그러다가 교회가 떠올랐습니다. 교회 건물에는 음향 설비가 되어 있고, 공명도 좋죠. 게다가 교회들은 대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공연장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막판에 바꿔서 정말 미안하지만, 공연을 교회로 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교회랑 공동 주최를 하는 걸로 하고, 손님들을 교회로 오라고 하면 어떻겠냐고요.
제 부탁을 받은 담당자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추진해 보자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하나 찾아냈고,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배웠죠. 교회라는 장소가 하드 록에 어울리는 장소 같지는 않지만, 저는 펑크 록(punk rock)의 정신을 떠올립니다. 펑크라는 게 원래 주류에 거스르는 거잖아요. 펑크는 남들이 가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고, 그걸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DIY) 거고, 자유를 추구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접근성이야말로 새로운 펑크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게 지금 제 삶의 신조예요.
아래 기사(영상)를 보면 게일린 리가 이렇게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가 어릴 때부터 장애를 갖고 살면서 길러졌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찾을 수 없었던 게일린은 첼로가 너무 크고, 바이올린조차 몸에 맞지 않자, 바이올린을 첼로처럼 잡고 연주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한다.
"장애를 갖고 있으면 항상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요. 어차피 저는 남들이 하는 방법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했을 때는 사무실을 빌렸어요. 공연 프로모션을 맡은 분이 접근성이 있는 공연장을 찾지 못해서 사무공간을 빌려서 하기로 한 건데, 아주 수완이 좋은 분이어서 그런 장소를 빌리고도 표가 매진되었습니다. 이 공연에 온 손님이 100명이었는데, 사무실이다 보니 제가 쉴 수 있는 그린룸이 없어서 공연 전에 그냥 청중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어요.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보행장애 외에도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제게 손을 흔드는 걸 보면서 저는 내 공연에서 이렇게 많은 휠체어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공연을 하면서 보니 그날 온 청중의 대략 25%가 장애를 가진 분이었어요. 그 숫자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미국에서 이런저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25%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공연장에 온 사람들의 25%가 장애를 갖고 있는 게 특이할 이유가 없어야 합니다. 모든 공연이 이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지난주에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서 공연했습니다. 이 행사가 열리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제 공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두 명의 어머니가 어린 딸들을 하나씩 데리고 왔더라고요. 둘 다 휠체어에 타고 있었는데, 저와 똑같은 장애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 한 아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니?"하고 물었더니, 그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자기는 트럼펫을 연주하고 싶대요. 저는 그 아이가 빨리 자라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저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공연하기를 바랍니다.
공연 투어를 하면서 다른 장애인 운동가를 만나고, 장애인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제게 행운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딪히는 장벽의 종류도 다르죠.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릅니다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으니까요. 접근하기에 더 용이한 세상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반드시 장애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연주자이든 아니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이 헤비메탈이어도, 블루그래스, 재즈, 포크, 혹은 컨트리뮤직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접근성이야말로 새로운 펑크 록이라는 사실에 우리가 모두 동의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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