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흔히 "lab"이라 부르는 실험실을 운영하는 아내는 원격근무, 재택근무를 믿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일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경험적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사무실에서의 생산성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일의 성격이 장소에 따른 생산성을 결정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현재 홈 오피스를 만들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나의 경우, 항상 생산성이 100%는 아니어도, 생산성이 100%가 되는 장소는 항상 조용한 홈 오피스다. 이유는 나의 산출물이 대개 글이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에는 글 작업 외에도 이메일 처리, 전화 연락 등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종류의 일도 동료들이 쉽게 말을 걸고 그래서 자주 중단되는 회사 사무실보다는 재택근무 때 처리가 훨씬 쉽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물론 사무실에서 했을 때 더 쉬운 일은 분명 존재한다. 가령 회의가 그렇다. 회의실에 둘러앉아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필요하면 화이트보드를 사용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모두가 작은 네모 안에 들어가서 모두 정면을 바라보며 발언 순서를 기다리는 줌(Zoom) 회의보다 훨씬 쉽다. 일단 생동감이 넘칠 뿐 아니라 참가한 사람들의 주의집중을 끌어내기에 용이하다. 그런데.. 그런 회의가 정말로 생산적일까?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무실 문화, 환경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현실의 회의는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곳이 아니다.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남자가 가장 긴 발언 시간을 차지하고 (당연히 그런 그가 화이트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대부분의 참석자는 그의 말을 경청하고 적는 게 가장 흔한 형태의 '회의'다. 물론 그 회의의 목적이 뛰어난 보스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그런 회의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회의의 본질이 참석자들 사이의 동등한 의견 개진이라면? 모두가 화이트보드 앞에 선 보스를 보는 회의실 회의보다 줌에서 하는 회의가 비록 생동감은 떨어질 수는 있어도 발언권을 균일하게 주는 데 더 유리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사무실 회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가 탄생한 이래로 항상 존재해왔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잠재력과 가능성을 다 시도하고 소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화상회의나 가상공간에서 하는 회의는 아직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줌 회의'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과연 모두가 동일하게 싫어할까?

줌 회의를 싫어하고 회의실 회의를 선호하는 사람들(대개 재택근무제를 싫어하고 사무실 근무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일지 모른다)은 아무래도 사무실 내 상급자, 보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가령,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규칙없음(No Rules Rules)'이라는 책을 낸 사람이지만 재택근무를 철저하게 불신한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의 장점은 하나도 없으며, 물리적으로 모일 수 없는 상황은 전혀 이점이 없는 "pure negative"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애플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에서 재택근무에 적응한 직원들이 출퇴근을 거부하며 재택근무제 무한 연장을 요구한 일을 보면, 그리고 그런 요구에 CEO들이 강하게 반대한 것을 보면 물리적으로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스이고, 직원은 대체로 재택근무를 선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유연근무제라는 대안

팬데믹 이전에도 일부 기업들은 유연근무제(flexible work)를 통해 재택, 혹은 원격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혼합한 형태의 근무를 허용해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1년 넘게 재택근무를 했던 직원들이 돌아오기를 꺼릴 뿐 아니라, 출근을 강요할 경우 퇴사를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나오자 일종의 절충안으로서 유연근무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완전 재택근무보다는 덜 낯설겠지만  모든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한 기업의 경영진은 유연근무제에 여전히 불안하다. 이들이 가진 "공포"에 대해서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가 기사에서 설명했고, 최근 씨로켓에서 이를 번역, 소개한 바 있다. HBR은 유연근무제에 대한 잘못된 생각(미신)이 다섯 개가 있다고 한다.

1. Loss of control 통제의 실종
2. Loss of culture (조직) 문화의 실종
3. Loss of collaboration 협업의 실종
4. Loss of contribution 기여의 실종
5. Loss of connection 연결의 실종

각 항목에 대한 설명과 경영진의 불안감 극복법에 관해서는 씨로켓의 번역을 꼭 한 번 읽어볼 만하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4번 항목, '기여의 실종'이다. 표현이 그럴 듯하지만, 사실 이건 "사무실에 없는데 일하겠느냐"는 것이다. HBR의 기사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고 다들 일하고 있는 줄 아느냐"는 것이다.

관리자가 직원들이 눈앞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면 업무의 규정과 성과 측정방식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직원들이 그런 감시 없이는 일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오너십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직원 개개인에 권한과 책임이 있고, 결과로 발생한 성과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직장에서 감시라는 건 사실상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제를 싫어하는 관리자들

그런데 이번에 애틀랜틱의 글 하나가 흥미로운 주장을 내놨다. 관리자들(managers)이 재택, 원격근무제를 싫어하는 것은 직원들의 생산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위협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사무실 근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무실에 나와야 할 직원들이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제국"을 건설한 관리자들인데, 그런 관리자들이 하는 일의 성과는 클라우드 기반의 원격근무에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 글의 주장이다.

경영(management)이라는 건 하나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승진한 결과로 얻게 되는 직함에 가깝다는 것이 사회적인 인식이다. 그리고 경영의 결과물은 추상적으로 드러난다. 관리자들은 (자신의 사무실에 직원을 불러서 다그치거나 회의 중에 지적질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의 '경영 스타일'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겁을 줄 수 없다. 경영층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 다그치는 것뿐이라면 그들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는 한때 이사직은 '샐러리맨의 꽃'이자 직원들의 최종 목표로 여겨졌지만 그러던 시절에도 이사직으로 승진하기를 꺼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유는 대부분 "아이가 아직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큰돈이 들어갈 일이 많이 남았는데 이사가 되는 순간 하루살이 목숨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높은 연봉과 개인 비서, 차량과 운전기사가 제공되지만 매년 인사철마다 재심사의 대상이 되어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공포에 떨기 싫다는 거다. 그런데 이사를 그렇게 쉽게 자를 수 있다는 건, 한 편으로는 이사는 없어도 당장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파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그들의 업무는 중요할 수 있어도 추상적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경영하는 모습'이 드러나는 물리적 사무실이 중요한 거다.

애틀랜틱의 글에서도 이야기하지만, 미국에서 경영진은 부하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자신의 아이디어로 포장하는 일이 흔하다. 스티브 잡스도 회의 중에 부하직원이 낸 아이디어를 멍청한 생각이라고 비판하다가 일주일 후에 나타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며 바로 그 부하직원의 아이디어를 자기 생각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다고 한다. 미국 대학교 연구실에서 PI(책임연구원)인 교수가 직원에 해당하는 연구원들의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포장해 공을 가로채는 일은 흔하다 못해 일상적이다.

영화 '크루엘라'에서 유명 디자이너 바로니스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골라내어 새로운 컬렉션을 구성한다.

이는 자신의 영지(fiefdom)에서 농노를 거느린 영주가 하던 일, 즉 소작농이 열심히 일한 결과를 가져가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즉 지금의 현실은 과거 인류사회가 작동하던 방식에서 많이 나아가지 않은 상태라는 얘기다.

그런 작동방식을 위협하는 것이 재택, 원격근무다. 모든 사람의 작업물이 슬랙을 통해 올라오고, 대화는 기록이 남는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래서 누가 가장 많은 일을 하는지, 특정 아이디어가 누구에서 나왔는지 분명한 상황에서 상사가 공을 가로채기는 쉽지 않다. 특히 가상공간에서는 부하직원을 닦달하거나 윽박지르는 일은 위험하다.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지워도 스크린샷으로 남겨져 HR에 보고하거나 언론사에 유출하면 그만이다.

애틀랜틱의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인 출근이 재택근무보다 더 생산적이고 조직에 좋다고 믿는다면 (조직에 따라서 당연히 더 생산적일 수 있다) 다음의 질문에 답을 해보라고 한다.

  1. 당신(경영진)은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3월 이전에 일주일에 며칠이나 사무실에 출근했나?
  2. 조직 내에서 몇 개의 팀을 직접 상대했나? 어떤 팀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3. 당신은 사무실을 있는가? 없다면 왜 없는가?
  4. 조직문화(office culture)란 무엇인가? 좀 더 정확하게 당신 기업의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설명하라.
  5. 재택근무로 인해서 기업에 손해가 발생했는가? 어떤 손해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

특히 경영진이 막연하게 믿고 있는 4, 5번의 경우는 모든 조직의 경영진이 반드시 대답을 해봐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조직이 재택근무제를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