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민이 "시민 불복종"과 "내전"(두 단어 모두 이스라엘 전 총리가 사용했다)을 불사하는 와중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가 소위 '사법 정비' 법안의 통과를 강행했다. 이스라엘 국민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를 두고 이스라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타냐후가 강행한 법안의 핵심은 사법부의 권한 축소. 정부의 장관 임명에 사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이 권한은–흔히 의회가 이 역할을 맡는–다른 나라에서는 낯설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정치 전통에서는 중요한 요소다. 대표적인 예가 대법원이 내린 아리예 데리 장관의 해임 명령이다. 네타냐후의 최측근인 데리는 탈세 혐의를 인정했고,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했는데 네타냐후가 복권을 시도한 것. 대법원이 이를 반대하자 네타냐후와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의원들은 새로운 법을 만들어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해버렸다.

이스라엘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벌어진 시위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의회를 통해 법이 통과되었으니 과정 자체는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스라엘 유권자은 이런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극우 정당들과 손을 잡은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사회를 보수, 반동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 언론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와 국민은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지만, 이번 일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 특히 진보적 성향의 언론이 보이는 관심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또 다른 켜(layer)가 있다. 바로 내년에 있을 미국의 대선과 관련한 관심이다.

렘닉의 시각

미국에서 진보적인(즉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스라엘의 정치와 사회를 전하는 대표적인 언론인 중 하나가 뉴요커(The New Yorker)의 편집장 데이비드 렘닉(David Remnick)이다. 렘닉은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 러시아어도 유창하게 말하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러시아 문제에 관한 글을 자주 쓴다. 특히 이번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 뉴요커에 빠르게 글을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의회가 문제의 법안을 통과시킨 직후에 쓴 'In Israel, a Glimpse of a Trumpian Future,' 즉 트럼프가 내년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에서 일어날 일을 현재의 이스라엘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데이비드 렘닉 편집장 (이미지 출처: WNYC)

렘닉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악한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대하다고 여기는 정치인이 자기가 저지른 불법과 부패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대로 두면 자신은 여러 범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이 정치인은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 단순히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권력을 가지려 한다. 그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자기 나라에서 최악의 부족적 갈등(tribal conflict)을 부추기고, 기꺼이 법치주의를 훼손하려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가장 혐오스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동참해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자신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그 사회의 자유를 망가뜨린다."

이 정치인은 트럼프이기도 하고, 네타냐후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재 똑같은 일을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치적 데칼코마니다.

네타냐후와 트럼프 (이미지 출처: NBC News)

이스라엘 국민은 이스라엘의 의회가 네타냐후를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데서 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요단강 서안지구(팔레스타인의 행정 구역이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를 합병하고, 언론사를 탄압할 것을 우려한다. 지난 몇 주 동안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아는 시민들의 저항이었다. 이스라엘 방위를 담당하는 주요 병력인 예비군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소집 명령에 불응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은 현재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폴란드, 헝가리에 비유하고 있고, 내전으로 치닫게 된 레바논이 이스라엘의 미래가 될 것으로 경고하기도 한다.

렘닉은 네타냐후가 10년 전만 해도 "튼튼하고 독립적인" 사법제도를 주장하며, 법원의 수호자를 자처했다고 설명한다. 그럼 지금은 왜 사법제도를 공격할까?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상황에서 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수, 극우세력과 손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리쿠드당은 최대 정당임에도 총 120석 중 32석 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정당과 연정이 불가피하다.) 특히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이번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야리브 레빈 법무부 장관이 예비군의 집단 행동을 우려해 법안 표결을 미루자는 국방부 장관과 공개 설전을 벌이는 동안 네타냐후는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와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 (이미지 출처: The Times of Israel)

렘닉은 한 이스라엘 언론인의 말을 빌려 이렇게 설명한다. "네타냐후가 트럼프를 흉내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우파 포퓰리즘 노선을 따르는 건 트럼프보다 네타냐후가 먼저다. 네타냐후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야당과 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법 제도와 언론을 공격하는 것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비록 이스라엘과 미국은 서로 다른 정치문화를 갖고 있지만, 지금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의 시나리오를 보게 될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국가 기밀문서를 빼돌린 간첩 혐의, 의회 습격과 관련한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고, 선거 결과를 조작하려는 혐의 등의 추가 수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를 피하기 위해 검찰과 판사, 언론, 법치주의를 공격 중이다. 트럼프에게 2024년 대선은 자신이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현재 공화당 후보 중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트럼프에게 지금의 네타냐후는 롤 모델이고, 그가 하고 있는 행동은 선거 이후를 위한 이정표다.

이게 미국 언론이 이스라엘의 문제를 자기네 일처럼 살피는 이유다.

텔아이브의 시위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그렇다면 바이든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의 핵 문제로 이스라엘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고, 이번 일은 외교와는 무관한, 전적으로 이스라엘 국내 문제. 따라서 가급적 비판을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회의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상황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협력을 이어 나간다면 이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역할과 배치될 뿐 아니라, 미국의 가까운 장래와도 직결된 문제다. 따라서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통해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형성되자 중국이 재빨리 끼어들어 이스라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민주당과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공화당은 이스라엘의 상황은 자국 내부의 정치 문제이니 개입하지 말자는 태도다. 트럼프의 집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정당이 네타냐후가 하고 있는 일을 걱정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트럼프는 재집권 시 미국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강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스라엘 문제는 서곡에 불과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