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들의 경우, 일하는 날의 수만 줄어든 게 아니라 일주일에 받는 돈도 줄었다. 전통적으로 제작사에서는 작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작가들에게 최저 요율(minimum rate)보다 월등히 높은 보수를 주급으로 주고 있었다. 그 근거는 이들이 단순히 대본만 쓰는 게 아니라–앞의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프로듀서의 역할도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대본이라는 분절된 작업 하나를 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 제작 전반에 관여하는 역할로 대우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제작사들이 대본 작성을 제작과 분리하면서 작가들이 프로듀서로서 받는 돈이 사라졌고, 이들의 임금은 최저 요율로 전락한 것이다. 노조의 설명에 따르면 드라마 작가들의 약 절반이 작년에 최저 요율의 돈을 받았다. 약 1/3의 작가들이 최저 요율을 받았던 2014년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숫자다. 참고로, 방영이 결정된 드라마의 경우 주니어급 작가는 일주일에 4,000~4,500달러를, 시니어급은 7,250달러 정도를 받는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이들 사는 곳의 물가와 이들이 일 년에 일할 수 있는 날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옮긴이)

파업을 선언한 헐리우드 작가들의 시위 (이미지 출처: GOBankingRates)

작가들은 또한 일종의 로열티인 재상영분배금(residual)을 받는다. 자신이 작업한 에피소드가 재방영되었을 때나 콘텐츠를 관리하는 기업(syndiacation)에 라이선스가 대여되었을 때 받는 돈을 미리 정해진 비율대로 나눠 받는 돈이다. (이는 책이 팔릴 때 받는 인세와 비슷한데, 주연 배우부터 작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눠서 받는다–옮긴이) 하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은 자신들이 제작한 드라마를 다른 채널, 플랫폼에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에 참여한 작가들은 재상영분배금을 받을 기회가 줄어든다.

(스트리밍의 확산으로 배우들도 피해를 보는데, 그 방식은 조금 다르다.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는 각 시즌 사이의 간격이 과거보다 길어졌는데, 그사이에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참여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과 시즌 사이에 돈을 벌지 못하고 붕 뜨는 시간이 생기며 수입이 감소한다.)

이런 다양한 변화가 맞물리면서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을 바꿔 놓았다. 제작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본을 쓰는 동안만 돈을 벌게 되니 유명한 작가들도 더 자주 다음 일감을 찾아 다녀야 하게 되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신참 작가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대본 작업이 최저 요율만을 제공하니 제작사들은 낮은 가격에 경험 많은 작가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되어 신참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쌓지 못하게 된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조던 하퍼 작가는 "제작사들이 신참 작가들과 똑같은 가격에,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주고 경험 많은 작가를 고용한다"라며, 그나마 자신은 이 업계에서 성공한 경험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코난 오브라이언을 비롯한 많은 인기 코미디언들이 젊은 시절 SNL의 작가로 일하면서 성장했다. (이미지 출처: NPR)

게다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작가들이 대본 작업 이상의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막으면서 임금 지급의 기준이 에피소드가 아닌, 일을 한 시간(주 단위)으로 계산되는 것이 당연시 되기 시작되었고,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드라마 작가들의 일을 긱(gig) 노동처럼 만들었다. 물론 제작사들은 작가들이 의료보험과 연금 혜택을 받고 있고 일하는 날의 수를 보장받기 때문에 긱 노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은 이런 추세로 가면 제작사들은 드라마 작가의 일을 계속 쪼갤 것이고, 쇼러너 한 사람이 저임금의 드라마 작가들이 만든 분절화된 작업물을–마치 테크 기업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다양한 프로그래머들의 작업을 하나로 묶는 것처럼–하나로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하는 식으로 드라마 대본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작가들이 AI가 만들어 낸 이야기를 다듬고 살을 붙이는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제작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가장 작은 조각의 이야기를 가장 낮은 가격에, 자동화된 방법으로 생산"하고 "극소수의 최고 작가 한 사람이 이를 최종 대본으로 바꾸는" 것이 될 거라는 게 작가들의 걱정이다. 요즘 테크 기업에서 코딩을 하는 방법이 그렇기 때문에 결국 같은 방식이 드라마 제작에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실리콘밸리의 기업은 많은 코딩 작업을 인도 등지로 아웃소싱한다. (이미지 출처: The Financial Express)

분열화(分裂化)

헐리우드가 작가들이 제작 전반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고, 대학이 정년을 보장하는 교수의 숫자를 줄이고, 로펌이 파트너 변호사의 숫자를 적게 유지하는 현상을 "업무의 분열화(the fracturing of work)"이라 부른다. 일을 세분화한 후 각 업무를 특화(specialize)하면 기업으로서는 유리하다. 업무가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비용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낮아진 비용이란 건 결국 노동자에게 가는 임금이 줄어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권한이 줄어들면서–특히 노조를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의 경우–임금 협상을 할 수 있는 레버리지(협상력)를 상실하게 된다.

작가들이 파업을 한 것은 궁극적으로 "헐리우드판 겸임교수(adjunct professor)"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헐리우드의 작가로 시작해서 드라마, 영화 제작 전체를 배우며 프로듀서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인기 TV 코미디 프로그램 'The Office'에서 작가로 일했던 마이클 슈어(Michael Schur)는 대본을 쓴 후에 촬영과 후작업 등 제작 전반에 참여하면서 일종의 도제(apprentice)처럼 경험을 쌓은 결과 'Parks and Recreation,' 'The Good Place' 같은 인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듀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성장의 기회가 닫히고 있다. 작가들의 업무가 분열화, 특화하는 바람에 제작 전반을 배우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1980년 이후 미국인 소득 변화 추이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이런 현상은 헐리우드 작가, 대학교수, 로펌에 국한된 게 아니다. 이들은 화이트칼라 직종 전반에 걸친 변화를 대표할 뿐이다. 미국의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의 임금 성장률은 1인당 GDP 성장률보다 떨어진다. 즉, 경제 성장의 열매를 헐리우드의 쇼러너와 같은 최상위 소수가 독점하게 되면서 나머지 노동자들은 대부분의 드라마 작가처럼 더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고 있다는 얘기다.

화이트칼라 노동의 분열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