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헐리우드는 작가들이 파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배우들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63년 만에 업계 최대의 동반 파업이 진행 중이다. 이들 두고 잘 사는 나라의 잘 나가는 직업군이 하는 배부른 파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스트리밍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작가와 같은 크리에이터들을 찾는 제작사가 늘었고, 그래서 몸값이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스트리밍으로 인한 특수는 끝났고, 업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를 기회로 업계가 큰 변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중반에 블루칼라 직종에 일어났던 변화가 21세기에는 화이트칼라 직종에 일어난다는 전망이 많은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헐리우드 작가들이다. 아래의 글은 뉴욕타임즈 기자인 노엄 샤이버(Noam Scheiber)와 데이비드 리언하트(David Leonhardt)의 기사들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원문은 여기여기, 그리고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뉴욕타임즈 기사는 드라마 작가인 조던 하퍼의 예를 통해 화이트칼라 직종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변화를 설명한다. 하퍼는 2009년부터 6년 동안 미국 CBS에서 방영한 '멘탈리스트(The Mentalist)'라는 인기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다. 작가였지만 그가 한 일은 단순히 대본 작업만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제작(production)에 깊숙이 관여해서 의상과 드라마 세트를 결정하는데 의견을 제시했고, 촬영장에도 들어가서 감독, 배우들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무엇보다 한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일년 중 대부분을 고용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드라마 작가인 조던 하퍼(가운데)와 그가 참여한 TV 시리즈, '멘탈리스트'와 '하이타운'

하지만 201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퍼가 2018년, 케이블 영화 채널인 스타즈(Starz)에서 방영한 '하이타운(Hightown)'의 작가로 일을 했을 때는 20주, 그러니까 5개월 가량 집중적으로 대본을 작성한 후에는 계약이 끝났다. 멘탈리스트 때는 대본이 완성된 후 촬영장에서 함께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임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제작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다른 일을 찾아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하퍼와 같은 작가들이 하던 일은 쇼러너(showrunner) 한 사람이 대부분 맡게 되었다.

쇼러너는 말하자면 작가들 중 최고 책임자인 동시에 프로듀서다. 과거 총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와 비슷한 역할로, 작가이지만 오히려 감독보다 더 많은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일종의 CEO인 셈. (중앙일보 기사에서 한국과 미국의 제작 시스템 차이와 쇼러너에 대해 잘 설명한다.)

한 때는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작가들이 모두 제작에 끝까지 참여했다면, 이제는 쇼러너 한 사람, 혹은 작가 하나를 더해 두 명 정도가 그 일을 하고 나머지 작가들은 초반 대본 작업만 끝나는 순간 계약이 완료된다. 그런데 이렇게 대본 작성과 제작이 분리되는 현상은 영화, 지상파/케이블 TV 드라마 시대에서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오면서 점점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헐리우드 작가 1만 1,500명이 파업을 선언했던 문제의 핵심이 이거다. 대본만 쓰고 완료되는 계약 형태로 변하면서 직업의 안정성이 사라지고, 7년 전에 비해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거다.

헐리우드 작가들의 노조인 WGA(Writers Guild of America)는 파업을 통해 모든 드라마가 일정 수의 작가를 제작 과정 전체에 포함시키도록 요구했지만, 대형 제작사들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최대 제작사인 디즈니의 CEO 밥 아이거는 이런 작가들의 요구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해서 큰 비난을 받았다. 일 년에 2700만 달러(340억 원)을 받는 사장이 할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들만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게 아니다. 헐리우드 배우들이 파업에 돌입한 이유도 비슷하다. 이들의 "고용 기간"은 사실 작가들보다 더 짧기 때문에 유명한 배우가 아닌 한 생계 불안은 더 심각하다. 제작사들이 갈수록 "효율성 제고"를 이유로 극 중 캐릭터 비중을 축소하고, 역할을 작은 단위로 만드는 바람에 개별 배우가 일하는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 산업이 호황인지 불황인지를 알고 싶으면 LA에 있는 식당 종업원들의 얼굴을 보라는 것. 일자리를 찾지 못한 배우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이 식당에서 하는 서빙이기 때문에, 웨이터 중에 미남, 미녀가 늘어나는 건 제작되는 영화의 숫자나 규모가 줄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건 헐리우드의 문제만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업무를 작게 줄이고, 낮은 직급의 일로 바꿔 적은 임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추세가 쇼 비즈니스에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추세는 고소득 화이트칼라 직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대형 로펌이 수익을 나눠 갖는 파트너 변호사의 수를 줄이고 파트너 트랙이 아닌 낮은 직위의 변호사들을 고용하고 있다. 또한 대학들은 정년 보장이 된 교수의 수를 줄이고,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강사를 늘려왔다. 그리고 대형 테크기업들 역시 엔지니어의 고용은 상대적으로 줄이는 대신 임시직, 계약직을 통해 소프트웨어 테스트, 웹페이지 레이블링, 단순한 수준의 프로그래밍을 해결한다.

그 결과, 화이트칼라 직종은 상위 고소득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으로 분열하고 있고, 그들이 일하는 조직은 소수의 "장교"와 다수의 "병사"로 구성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헐리우드에 적용된 것이 드라마 작가들이 제작에서 점점 배제, 소외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거다.

기시감(旣視感)

복잡한 업무를 작고 단순한, 그래서 적은 비용이 드는 작업으로 바꾸는 전략은 새로운 게 아니다. 우리는 이를 과거 도축업(meatpacking)과 제조업에서 목격한 바 있다. 20세기 초만 해도 자동차는 소수의 고숙련 노동자들이 팀을 이루어 만들던 제품이었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계공들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복잡하고 다양한 부품을 제작, 조립하는 게 자동차 제작 공정이었다.

미국의 헨리 포드는 이런 제작 방식을 쪼개고, 또 쪼개기를 반복해서 단순 작업으로 바꿨다. 그 결과, 150여 명의 작업자들이 생산라인에 길게 늘어서서 몇 가지의 아주 단순한 작업만을 반복하면서 복잡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기사 속 삽화는 드라마 작가들의 일이 블루칼라 직종처럼 작고 단순한 작업으로 바뀌었음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지난 수십 년 동안 TV 드라마를 만드는 작업 역시 초창기 자동차 생산 방식과 비슷했다. 여러 명의 작가가 팀을 이루어 제작의 모든 단계에 관여했다. 대본을 쓴 작가 중 많은 사람이 촬영장에 들어가, 필요할 경우 현장에서 대본을 수정, 편집하고 제작을 도왔다.

이렇게 작가가 (초창기 자동차 장인들처럼) 다양한 일을 수행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드라마의 퀄리티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CBS 드라마 '레드 라인(The Red Line)'의 쇼러너인 에리카 와이스에 따르면 "대본을 쓸 때는 캐릭터의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쓰지만" 배우가 그 대사를 직접 말하는 걸 들어보기 전까지는 생각했던 대로 작동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배우들이 첫 대본 읽기(table reading)를 할 때 작가들을 참여시켜 필요할 경우 대본을 수정하고, 혹은 특정 장면의 배경이 바뀔 때 대본을 즉석에서 바꿀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젊은 작가들이 이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드라마 제작 전반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되고, 결과적으로 일종의 도제가 되어 드라마 제작의 장인(master)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촬영장에 들어가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고, 제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TV 드라마 제작은 작고, 서로 분절된 작업으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과거 TV 드라마 때와 달리, 스트리밍 시대에서는 작가들의 계약이 촬영 전에 끝난다.

과거에는 배우들이 대본리딩을 할 때 작가들이 뒷줄에 참석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미지 출처: ScreenCraft)

이런 변화는 기존 시스템으로 확산하면서 지상파, 케이블 TV 역시 작가 계약을 촬영 전에 끝내려는 추세다. 심지어 '빌리언스(Billions)'처럼 7시즌이나 진행된 인기 프로그램도 작가들을 촬영장에 데려가는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드라마를 만든 쇼타임(Showtime) 측에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전통적인 TV(즉, 스트리밍이 아닌) 업계의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비용을 절감하려는 계산과 투자자들에게서 오는 압력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프로그램의 퀄리티가 떨어질 가능성 외에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일 년 중 일하는 기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TV 프로그램 제작 방식으로 일하는 작가들은 작년 한 시즌당 평균 38주를 일했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은 한 시즌당 24주를 일했다. (방영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프로그램일 경우 14주로 더 줄어든다.) 현재 헐리우드의 드라마 작가 중 절반이 스트리밍 드라마에서 일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스트리밍 플랫폼은 자체 제작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작가의 절반을 데려올 만큼 몸집이 커진 것이다.


'분열하는 화이트칼라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