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아무도
• 댓글 남기기미국 의회는 지난달 많은 사람이 기다리던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이제 총기 난사 사건은 웬만해서는 뉴스가 되지 않는다. 올해 들어 첫 5개월 동안 300건이 넘는 난사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웬만큼 규모가 크거나 충격적인 내용(가령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이 아니면 전국 뉴스가 되기 힘들다. 2012년 코네티컷주 샌디훅에서 6, 7세의 아이들 20명을 포함해 26명이 사망한 이후로 연방 정부가 10년 동안 변변한 총기 규제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미국 정치가 마비되어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줬다.
하지만 지난 5월에 텍사스주 유발데에 있는 롭 초등학교에서 학생 19명을 포함해 21명이 18세의 범인이 쏜 소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여론이 다시 한 번 크게 일어났고,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겹게–규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미국에서 왜 총기 규제 법안의 통과가 힘든지에 대해서는 시사인의 이 기사를 권한다.) 비록 미약하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다.
그런데 이 법안('Safer Community Act,' 즉, '더 안전한 커뮤니티법'이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신건강(mental health) 관련 조항이다. 민간인에게 공격용 소총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미국 총기협회(NRA)의 손 안에 들어있는 공화당이 동의할 리 없기 때문에 범죄자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구매하는 것을 막겠다는 양당간에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총기협회와 공화당 정치인들, 그리고 총기 소유/소지 옹호론자들은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Guns don't kill people; people kill people)"이라는 주장을 꾸준히 해왔다. 텍사스 주지사 그레그 애벗(Greg Abbott)은 유발데 총격 사건의 범인인 18세 소년이 공격용 소총을 살 수 있었던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텍사스주에서는 60년 전부터 열여덟 살짜리가 총을 살 수 있었다"라면서 왜 60년 동안 이런 사건이 없다가 지금 일어났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원인은 정신 건강의 문제라는 거다.
애벗 주지사는 총기를 규제하는 대신 사람들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 문제를 해결해야 총기 난사 사건을 줄일 수 있다고 하면서 흥미로운 논리를 폈다. "사람에게 총을 쏘는 사람은 모두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Anybody who shoots somebody else has a mental health challenge)."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모든 사람을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는 이 논리에 따르면 전쟁터에서 쓰는 무기를 10대의 아이들에게 홍보하고 파는 기업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게 되고, 그런 기업의 정치 후원금을 받는 (애벗 주지사 같은) 정치인도 책임이 없다. 모든 책임은 정신질환이 떠안게 되고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장사를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극장에서, 콘서트장에서 총기를 무차별하게 난사하는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주장은 애벗이 처음 들고 나온 게 아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맨 정신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했다면 "맨 정신"이 아니었을 거라는 손쉬운 결론에 도달한다. 1999년 콜로라도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15명을 살해한 두 명의 학생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충동과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언론의 보도나, 2007년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32명을 살해한 조승희를 두고 근거도 없이 자폐증을 갖고 있다는 보도(나중에 '선택적 함묵증'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보도로 교체되었다)가 나오는 것도 '맨 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유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과연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뉴욕타임즈는 며칠 전 바로 이 문제를 살피는 기사를 발행했다. "총기 난사 사건의 징후는 무엇일까? (What Are the Real Warning Signs of a Mass Shooting?)"라는 제목의 기사다.
기사에서 인용한 듀크 대학교의 제프리 스완슨에 따르면 "심각한 정신질환을 모두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폭력은 약 4% 정도밖에 감소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나머지 96%의 폭력은 정신질환과 무관하게 이뤄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기사는 새로운 법이 무려 85억 달러(우리 돈으로 11조 원이 넘는다)를 정신 건강에 투자한다고 해도 미국에서 일어나는 총기 사건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줄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정신질환이 중요한 원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과연 누가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예측(하고 더 나아가 예방)할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일부 총기 난사 사건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기는 하지만 정신질환보다는 삶에서 위기(life crisis)를 겪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정확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총기 난사 사건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연구하는 질리언 페터슨 박사는 총기 난사범의 2/3가 정신질환을 의심하게 하는 과거를 갖고 있고, 약 30%가 정신병(psychosis)을 갖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질환은 범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삶에서 겪는 위기였다. 범죄 심리학자이자 미 연방수사국(FBI) 컨설턴트인 J. 리드 멜로이는 대부분의 난사범들은 정신질환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having been wronged)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특정 집단에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개인적인 원한은 범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방법밖에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외부인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속해 있고, 많은 경우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신호를 감지한 사람들이 학생을 퇴학시키는 등의 징벌적, 배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위험을 키우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들은 존중(respect)하고, 자존감을 지켜주고 커뮤니티에 포함(inclusion)시키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말미에 TED 토크 영상을 하나 소개한다. "나는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할 뻔했던 사람입니다 (I Was Almost a School Shooter)"라는 제목의 이 영상에서는 40대의 남성이 자신이 고등학생 때 총기를 구해서 난사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포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이 토크를 한 애런 스타크는 자라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꾸준하게 무시와 폭력을 받아오다가 더 이상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총기 난사를 하고 죽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총까지 구한 상황에서 한 친구가 "같이 영화나 보자"라면서 다가왔다. "나 자신이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나를 사람처럼 대우하면 세상이 바뀐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페터슨 박사는 총기 난사범들에게 누군가 당신의 범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라고 대답한단다. 그 중 한 범인은 "누구라도 (내 행동을) 막을 수 있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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