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 글이 추적한 인물인 멜라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모른다. 인터넷 탐정들이 덤비면 찾아낼 수 있겠지만 굳이 본인이 나서지 않는데 정보를 뒤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멜라니가 공개한 내용만으로 보면 그의 이름은 멜라니 몬탈보(Melanie Montalvo)라고 하고, 만약 링크드인에 올라온 정보가 동일인의 것이라면 2020년에 뉴욕시립대학교(CUNY)를 졸업한 것 같다. 물론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의 성명을 알게 된 건 방송이 처음 나간 후인 2015년 4월에 프로그램 담당자가 멜라니에게 기부금을 보낼 수 있는 계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This American Life가 이렇게 하는 건 본 적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만들게 되었다는 설명이 간략하게 등장한다. 계좌 링크를 공유한 담당자는 이런 기부금을 관리하지도 않고, 멜라니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면책공지(disclaimer)와 함께.

써머멜트 현상

두 학교 이야기 시리즈를 읽은 독자와 지인들이 시리즈의 내용과 관련된 기사들을 소개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중 하나는 써머멜트(summer melt)라는 특이한 현상에 관한 기사였다. 여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써머멜트라고 이름 붙은 이 현상은 미국에서 대학 진학이 결정된 고등학교 졸업생들(대개 5, 6월에 졸업한다)이 대학교 첫 학기(가을)가 되기 전에 진학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설명한 하버드 대학교의 데이터 프로젝트에 따르면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 사이에 흔한 현상이다. 이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 어렵게 들어간 대학교에 가지 않는 걸까?

흔하게 지적되는 이유들은 1) 등록금을 비롯한 재정적 지원을 마련하지 못해서 2) 입학 때까지 서명하고 제출해야 하는 각종 서류의 데드라인을 맞추지 못해서 3)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지원/지지가 부족해서다. 첫 번째 이유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장벽이다. 한국보다 훨씬 비싼 미국의 대학교 등록금과 책값, 그리고 생활비를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가난한 학생들이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할 수 있다. 두 학교 이야기 ④ 라켈과 조너선에 등장하는 조너선의 경우는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고 입학까지 했지만 책을 사지 못하면서 수업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서류 제출이 뭐 그리 복잡하기에, (돈이 아닌) 가족과 친구들의 지원이 뭐 그리 중요하기에 대학을 포기할까? 사실 이 역시 조너선의 사연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브롱스를 비롯한 많은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이 아무도 대학교에 다니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너는 대학교에 꼭 진학해야 한다"는 응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흔할 뿐 아니라, 조너선의 양어머니처럼 적극적으로 의지를 꺾는 어른이 존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들이 단순히 나쁜 부모, 가족이어서가 아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일을 시작해서 가정 경제를 돕거나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일을 시작하면 다만 얼마라도 집안에 도움이 되는데 대학교에 진학하면 오히려 돈이 들어간다. '빚을 내서라도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는 건 유교문화권이 가진 특징이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의 대학 진학을 바라는 경우에도 서류 제출을 제 때 하지 못해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제법 많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래의) 기사에 바로 그런 사례가 등장한다.

Summer Melt: Why Aren’t Students Showing Up For College?
As many as 40 percent of students who intend to go to college don’t show up in the fall. Education researchers call this phenomenon “summer melt,” and it has long been a puzzling problem.

오스틴 버첼이라는 학생은 부모 중에 아무도 대학을 나온 사람이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고 좋은 내신 성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가정은 도움을 주는 곳이 아니라 그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었다. 어머니는 루게릭병을 앓는 아버지를 집에서 돌봐야 했고, 오스틴은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와 저녁부터 밤까지 아버지를 보살폈다. 그랬던 아버지는 오스틴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대학교 학위가 없이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어머니는 오스틴에게 반드시 대학교에 진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노력의 결과 오스틴은 조지아 주립대(Georgia State)에 합격했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장학금을 받게 되어 학비도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받을 수 있다던 장학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지원을 받을 때 읽고 서명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가 엄청나게 많은데 부모의 도움 없이 학생 혼자 문제없이 작성해서 제출하기에는 벅차다. 중산층 가정의 경우 대학교를 나온 부모가 아이를 도와 꼼꼼하게 서류를 챙기고, 만에 하나 실수를 하더라도 학교 측에 연락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만 이런 환경을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서류 하나, 실수 하나가 모두 대학으로 가는 길을 막는 장벽이 되는 것이다.

오스틴이 진학한 조지아 주립대의 경우 오스틴처럼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는 '1세대 대학생 (first-generation college students)'이 무려 35%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대학교는 아이들이 빈곤을 탈피해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사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학교일수록 아이들의 '써머멜트' 현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보스턴 지역에서는 20%, 지역에 따라서는 40%나 되는 아이들이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도 위와 같은 이유로 진학을 포기한다.

위의 기사는 조지아 주립대가 이 문제를 일부나마 해결하는 모습을 소개한다. 입학생들을 일일이 챙기기에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각종 서류의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도록 AI를 활용해 챙기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1년 만에 써머멜트율을 18%에서 14%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오스틴의 경우, 사회보장번호(SSN,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의 숫자 하나를 잘못 기입한 탓에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결국 오류를 찾아내 수정했고, 문제없이 장학금을 받아 진학했다.

"우리 애들이 좀 부족해"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그렇게 역경을 이겨내고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인데 단순한 서류 작성에서 좌절하나?' 위의 기사를 알려주신 지인은 이 부분에서도 참고가 될 만한 좋은 기사를 알려주셨다. 바로 결핍의 덫(scarcity trap)에 관한 기사다. 제법 긴 기사(여기에서 방송을 들을 수도 있고, 글로 읽을 수도 있다.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꼭 한 번 듣거나 읽어보시길 권한다)지만 핵심은 이렇다. 여러 실험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원(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다)이 부족할 경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The Scarcity Trap: Why We Keep Digging When We’re Stuck In A Hole
Have you ever noticed that when something important is missing in your life, your brain can only seem to focus on that missing thing? Two researchers have dubbed this phenomenon “scarcity.”

기사 앞부분에는 작은 실수로 어처구니없게 해고당한 여성이 당장 생필품이 부족하게 되자 신용카드로 물건을 급하게 대량으로 구입하고는 연체료를 납부하지 못하게 되는 사연이 나온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저지르지 않을 실수였지만 궁핍 상태에 처한 뇌는 그렇게 "조금만 더" 생각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능의 문제도, 게으름의 문제도 아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덫이고, 이 덫에 걸린 사람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해 현재 처한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 특히 성공을 개인의 노력의 결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게으름의 결과라고 비난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이 노력한 결과라고 추앙하는 태도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다.

아래 영상(도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한다)은 가난한 지역,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기회의 부족을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교사는 그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 조차 "우리 애들이 좀 부족해"라는 태도를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위의 영상 속 교사에 따르면 넉넉한 집안의 아이들은 대단하지 않은 실력으로도 연주회나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그럴 때마다 잘한다는 격려를 받으며 자라서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는데 익숙해지는 반면, 그럴 기회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그런 자신감이 없이 오로지 '실수하면 안 된다'에만 집중하게 된다.

궁핍의 덫을 다룬 기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외로운 사람들도 일종의 궁핍을 겪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겪는 궁핍은 인간관계의 부족, 즉 친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이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 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것. 그렇다 보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는데,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대인관계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집착이 친구를 사귀고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 거다.

그 개인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궁핍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아이들의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그들을 붙잡고 있는 환경이다.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최근 미국에서는 유명한 교수가 대학에서 해고된 일이 큰 화제가 되었다. 뉴욕대학교(NYU)에서 유기화학을 가르쳤던 메이틀랜드 존즈 주니어(Maitland Jones Jr.)는 권위를 인정받는 유기화학 교과서를 쓴, 학계에서 유명한 교수인데 시험 문제를 지나치게 어렵게 낸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항의를 받았고, 학생들의 집단 청원을 받은 학교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개입했지만 결국 교수의 해고로 일이 마무리되면서 미국 대학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학교가 학생들을 고객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들의 요구에 굴복했다는 시각이다.

교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의 수업이 전형적인 위드아웃(weed-out,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걸러내는) 강의였음을 강조한다. 의과대학원에 지원하려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인데, 존즈 교수의 강의는 의사의 꿈을 가진 학생들 중에서 정말로 노력하는 똑똑한 학생들만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고 수십 년 동안 잘 작동해왔는데 요즘 학생들은 과거와 달리 자신이 성적을 낮게 받으면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시험 탓, 교수 탓을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글이 뉴욕타임즈에 실렸다. 이 글을 쓴 인디애나 대학교 사회학과 제시카 칼라르코 교수는 학생과 학교/교수 사이의 역학관계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교에 다양한 계층, 인종의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위드아웃 수업이 학업에 진지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학업을 위한 자원이 풍부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STEM(과학, 수학, 공학, 기술) 분야에서의 위드아웃 수업들이 이런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It Seems like They Purposefully Try to Make as Many Kids Drop”: An Analysis of Logics and Mechanisms of Racial-Gendered Inequality in Introductory Mathematics Instruction
Introductory mathematics courses, including precalculus and calculus, largely influence Black and Latin* students’ persistence and sense of belonging in STEM. However, prior research on instruction...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래도 어쨌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낮은 성적을 받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칼라르코 교수는 문제가 된 유기화학 수업의 경우 뉴욕 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의대들에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지도 않음을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데 가난한 아이들만 솎아내는 것이다. 그는 가족 중에 아무도 대학에 가지 않은 집안 출신의 아이가 수준 높은 화학을 아예 가르치지 않는 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에 와서 공부 외에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20시간을 일하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한다. 게다가 그 아이가 가진 노트북 컴퓨터는 성능이 떨어져서 버벅거리고, 사는 아파트에는 와이파이도 변변치 않아서 숙제를 학교 컴퓨터실이나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해야 한다. 그런 아이가 단지 같은 대학교에 왔다고 해서 넉넉한 집안의 아이들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까? 이게 칼라르코 교수의 반문이다.

문제는 대학교가 이런 아이들을 위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으면서 위드아웃 수업을 운영하는 상황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 대학교는 잘 사는 집 아이들을 위한 각종 혜택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 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바로 이런 맥락을 통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서울에 있는 유명한 의대의 교수인 친구와 만나 대화를 하던 중 '두 학교 이야기'가 화제로 등장했다. 그 친구에 따르면 요즘 의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이라고 모두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으며, 약 20% 정도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학교에 다니면서도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물론 이들을 위한 장학금은 있지만 기부자들이 '이 장학금은 반드시 수업료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거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생활비는 '낭비'라고 생각해서 지원할 생각이 없다면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은 장학금으로 수업료를 모두 면제받아도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기부자들을 만나서 "아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야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라고 설득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게 그 친구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