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가 독립된 주가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그럼 51개 별은 어떻게 넣지? 지금처럼 반듯한 배열이 망가지는 거 아닌가?"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국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성조기라고 부르는 미국의 국기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혹은 지역에 따라서는 악명높은) 국기다. 성조기의 왼쪽 상단에는 미국의 주들을 상징하는 50개의 별이 있다는 사실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별 50개가 어떻게 배열이 되어 있는지 물어보면 금방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별 생각없이 (no pun intended) 5 x 10으로 배열된 거 아니냐고 대답한다면, 틀렸다.

성조기 속 50개 별의 배치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별 6개 짜리 줄과 5개 짜리 줄이 위에서부터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그런데 여섯 개 짜리 줄은 다섯 번, 네 개 짜리 줄은 네 번 등장하기 때문에 (6x5)+(5x4)=50개라는 배치가 완성된다.

미국의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주들이 13개 부터 시작해서 하나 씩, 둘 씩야금야금 증가해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미국의 국기 속 별들도 그 때 마다 더해졌기 때문에 미국의 국기는 항상 변해왔다. 1795년에 버몬트주와 켄터키주가 추가되면서 15개가 된 후로 1960년에 마지막으로 하와이가 주로 승격되면서 50개가 되었다.

성조기 디자인의 변천사를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디자인들이 때로는 복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짝수 열, 홀수 열의 배열 방식은 최초 13개 주의 배열(3-2-3-2-3) 때부터 시작해서 자주 사용되던 방식이다.

따라서 51개 주가 되어도 이런 배열 방식을 사용하면 균형잡힌 배열이 간단하게 나온다. 별 아홉 개 짜리 줄 세 개와 여덟 개 짜리 줄 세 개를 번갈아 배치하면 된다. 간단하지 않은 것은 51번 째 주를 만드는 일이다. 민주당은 워싱턴 D.C.를 반드시 주로 승격시켜야 할 이유가 있고, 공화당은 그걸 반드시 저지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하지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워싱턴 D.C. 주민들의 권리다. 이들은 미국의 시민이면서도 의회에서 자신을 대표할 대표자, 즉 의원을 배출하지 못한다.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인데 정작 서울에서는 국회의원이 선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면 워싱턴 주민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할 때 내세운 논리가 바로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인데, 정작 그렇게 탄생한 나라의 수도에 사는 주민들은 세금을 내면서 대표를 의회에 내보내지 못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대표는 내보내지만 의회 내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주민의 이해가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 시가 발급하는 자동차 번호판에도 이들의 주장이 담겨있을까?

워싱턴 D.C.의 주 승격은 미국에서 이미 수 차례 시도를 했었고, 그 때 마다 실패했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제까지 없었던 모멘텀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모멘텀이 생겼을까? 소수가 지지하는 공화당이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제리맨더링(Gerrymandering: 한국에는 '게리맨더링'이라는 틀린 발음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리맨더링이 정확한 발음이다)으로 실제 지지자들 보다 지나치게 많은 의원들을 배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위적으로 대법관 임명을 거부하는 식으로 대법원에도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정치성향과 달리) 훨씬 더 많은 보수법관을 보냈다. 또한 흑인 유권자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일은 노예해방 이후로 꾸준히 있어왔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지난 해 11월 선거 이후로 공화당의 투표 방해 입법은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꿔버릴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워싱턴 D.C.의 주 승격이다. 인구 70만 명 중에서 흑인 46%, 라틴계 11%, 아시아계 4.5%로 유색인종이 60%를 넘을 뿐 아니라, 철저한 민주당 성향의 지역이기 때문에 주로 승격하는 즉시 민주당에서 하원의원 한 명, 상원의원 두 명을 배출할 수 있다. 캐스팅 보트를 가진 부통령으로 민주당이 간신히 우위를 지키고 있는 상원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화당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하원에서 주 승격안이 통과되는 등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모멘텀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이 결국 상원 통과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유도 공화당이 마지노선을 포기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주와 달리 면적이 지극히 작은, 하나의 도시주(city state)가 되겠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구 숫자로 보면 D.C.는 와이오밍주, 버몬트주 보다 많고, 알래스카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종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버몬트나 와이오밍 같은 주는 인구가 적어도 백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인 반면, D.C.는 앞서 말한 것처럼 압도적으로 유색인종이 많기 때문에 이 도시의 주 승격을 막는 것은 인종차별적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 주장 자체만 보면 너무나 심한 비약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미국 정치의 '큰 그림'이다. 트럼프의 당선에서도 확인했듯이 미국 내에서 백인이 소수가 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백인들은 더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그런 소수의 백인들의 목소리가 과대대표(overrepresented)되는 반면에 유색인종의 표는 끊임없이 배척되고 있는 상황이 그 큰 그림이다. 1990년대만 해도 미국인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워싱턴 D.C.의 주 승격 문제에 이토록 관심이 모이는 이유는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안간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결국 인종문제로 귀결된다고 해도 지나치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주로 승격하게 되면 워싱턴 D.C.는 어떤 이름을 사용하게 될까?

D.C.는 District of Columbia (콜럼비아 구)의 약자로, 주의 명칭으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주 승격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D.C.라는 이름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주에도 걸맞는 이름으로 'State of Washington, D.C.'를 사용하되, 이 때의 D.C.는 Douglass Commonwealth의 약자로 바꾸겠다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노예해방운동가 프레데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의 이름을 딴 것이고, 커먼웰스Commonwealth는 몇몇 주에서 스테이트State라는 명칭 대신 사용하고 있는 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