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아내
• 댓글 63개 보기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향년 96세, 재위 기간 70년으로 최장수 영국 군주의 기록을 세웠지만, 그가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최장 재위 기간의 기록을 가진 사람은 그의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1819년에 태어나 1837년에 왕위에 올랐고, 1901년에 사망할 때까지 63년을 통치했다. 빅토리아의 통치 기간이 소위 '대영제국'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그 시대를 특별히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라고 부른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가 비판적으로 묘사했던 (산업화 이후 도시화와 빈부 격차가 심해진) 시대가 바로 빅토리아 시대다.
빅토리아 시대를 특징짓는 문화적 요소 중 하나가 사진이다.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가 사진을 발명한 때가 1839년이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사진으로 기록된 첫 시대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만 해도, 젊은 시절에는 전통적인 유화로 제작되었지만, 말년에는 사진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인 평가지만, 빅토리아 여왕의 사진은 비록 흑백이어도 완벽한 조명과 노출, 디테일이 돋보일 뿐 아니라, 여왕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뛰어난 작품이다. 초상화가 아닌, 이 사진이 빅토리아 여왕의 대표 이미지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8세기의 세계에서는 영국이 가장 부강한 나라였으니,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사진 기록이 남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헐리우드의 공포 영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이미지가 되었지만,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찍은 사진들은 20세기 중반에 등장하게 될 '가족사진'의 효시였다. 그런데 당시 사진들을 보면 특이한 유행이 눈에 띈다. 아기를 찍은 사진에 엄마가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하는 것이다.
당시의 사진기는 낮은 감도 때문에 지금보다 셔터를 오래 열어두어야 했고, 피사체가 흔들리면 이미지가 흐려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누군가 잡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진을 연구하는 로라 라슨(Laura Larson)은 이런 사진들에서 아이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예외 없이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엄마들이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진에서 엄마는 아이를 안은 채 가구의 일부, 혹은 커튼으로 변신한다.

아이만을 찍기 위해 엄마가 배경(backdrop)이 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더 눈길을 끄는 건 엄마가 분명히 보이는데도 얼굴만 가린 사진들이다. 미처 얼굴을 가리지 못한 경우, 촬영 후에 엄마의 얼굴 부위만 검게 칠해서 흔적을 없애 버리기도 했다. 엄마는 왜 아이와 함께 등장하지 못하고 사라져야 했을까?
그런 사진이 한 장 있으면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이렇게 많이 존재할 때는 사회적 관습이다. 사진관에서는 엄마를 뒤집어씌울 검은 천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고, 의자에 앉은 엄마에게 얼굴이나 몸을 숨기라고 건네줬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여성이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관습의 힘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사진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았지만, 국왕이 여성이었다고 해서 일반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바뀌는 건 아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빅토리아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무렵 잉글랜드 더럼에서 한 여성이 태어났다. 아일린 모드 오쇼네시(Eileen Maud O'Shaughnessy)라는 이 사람은 훗날 에릭 블레어(Eric Arthur Blair)라는 남성과 결혼해서 이름을 '아일린 블레어'로 바꾼다. 소설가였던 남편 에릭은 자기가 쓴 첫 작품이 실패하면 아버지가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 두려워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조지 오웰은 '동물 농장,' '1984' 같은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필명이었던 까닭에 우리는 '아일린 블레어'라는 이름을 들으면 조지 오웰의 아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우리가 조지 오웰의 아내에 대해서 알아야 할까? 아일린이 "오웰의 아내(Mrs. Orwell)"라면 특별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튼 칼리지에 다니고도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조지 오웰과 달리) 아일린이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시인이었고—옥스퍼드에서는 J.R.R. 톨킨에게서 배웠고, 영국의 대표 현대 시인 W.H. 오든이 아일린의 동료였다—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석사 공부를 하는 동안에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묘사한 '세기말, 1884'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면 생각이 바뀔 거다. 누가 보기에도 남편의 창작 활동과 사회적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인데, 우리는 왜 아일린 블레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까?
애나 펀더(Anna Funder)가 쓴 '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은 바로 그 이유를 찾아 나선 저자의 탐색 과정을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책이다.

소피아 톨스토이, 젤다 피츠제럴드, 시시 챈들러, 캐서린 디킨스, 매리 워즈워스… 이름은 낯설지만 성(姓)은 익숙한 이 여성들은 모두 유명 작가의 아내다. 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작품들도 많지만, 정작 이들의 이름은 빛을 보지 못했다. 여성들은 남성 작가, 예술가의 삶과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창작 과정의 일원이었음에도 기껏해야 ‘뮤즈’ 정도로 불렸을 뿐 대부분은 ‘아내’라는 배역으로 그 존재가 지워지거나, 교묘하게 가려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조지 오웰이 아내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훨씬 더 큰 목표를 갖고 있다. 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남성의 조력자로, 그것도 아무런 크레딧도 받지 못하는 조력자로—조지 오웰은 글에서 아내의 이름을 쓰지 않고, 그냥 '나의 아내'라고만 적었다—남게 되는지 보여주려는 게 이 책의 의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성들의 교묘한 공(功) 가로채기, 도움받은 흔적 숨기기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자인 내가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대목들이 많다.) 가상의 폭정에 저항하는 작품으로 유명한 오웰이 정작 자기 아내 아일린의 기여와 존재를 얼마나 의도적이고, 교묘하고, 철저하게 지우려고 했는지 보여준다.
원서의 제목은 'Wifedom'으로, 저자가 만들어 냈지만 흥미로운 단어다. 아내라는 단어에 농노 신분(serfdom), 노예 신분(slavedom) 같은 표현에서 흔히 보는 접미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 노예들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존재를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한 아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저자는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최초의 노예였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아일린은 남편이 글쓰기를 하는 동안 닭과 염소를 키우고, 남편이 쓴 원고를 일일이 타자로 옮기면서 편집자의 역할도 했다. 책 속에서 묘사된 부부의 삶을 보면 오웰은 글쓰기에만 몰두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내 아일린이 도맡은 듯하다. 아래 대목을 읽으면 간단하게 이해된다.
"오웰의 예민함이 극에 달할 때도 있었다. 변기가 역류해 앉는 자리며 화장실 안에 오물이 온통 넘쳐흐르자, 오웰은 자신은 그 상황에 대해 그냥 아무것도 못 하겠다고 했다. (그의 건강이 좋지 못한 건 사실이었지만, 누군들 그런 상황에서 상태가 좋았을까 싶다.) 배관공을 부를 돈은 없었다. 아일린은 오웰의 방수 장화를 신고 정원용 장갑을 끼고 양동이를 들고 그 일을 해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말은 그 다음에 나온다. 아일린은 그 일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오빠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웰을 보호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건지, 아일린은 알 수가 없다."

'조지 오웰 뒤에서'는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저자가 일인칭으로 쓴 자신의 이야기와 아일린 블레어의 전기, 그리고 이제까지 발견된 아일린의 흔적으로 재구성한 픽션이 섞여서 큰 그림을 완성하는 책이다.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작가이자, 조지 오웰의 작품을 좋아하는 저자 애나 펀더는 오웰의 주요 전기 여섯 권을 모두 찾아 읽었는데, 그 과정에서 오웰이 "여자들에 관해" 불평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 글에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하며" "무섭도록 탐욕스러운 성욕"을 갖고 있다는 여성혐오적인 발언이었다.
그런데 오웰은 그런 것들이 "오직 결혼을 해봐야만 알 수 있다"고 썼기 때문에, 오웰이 아내 아일린을 두고 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펀더는 도대체 아일린이 어떤 사람이길래 오웰이 이렇게 지독한 말을 썼을까 궁금했지만, 그가 읽은 오웰 전기 중 어떤 책도 아일린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아일린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다는 게 한 이유이지만, 모두 남자들인 전기 작가들에게 아일린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펀더의 짐작이다.
그러다가 아일린이 생전에 절친한 친구에게 보낸 여섯 통의 편지가 2005년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남아있는 기록으로 아일린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런 구성이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 책을 읽기 전에나 가질 수 있는 의구심이다. 저자는 함부로 없던 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애나 펀더가 남성 전기 작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의 노력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게 될 거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아일린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장난으로" 1등급을 받지 못했다. 아일린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 실패의 경험은 아일린의 허를 찔렀고, 그 애의 동력을 앗아갔다"고 한다. 저자는 아일린이 스스로 좀 더 나은 것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느낀 것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뭔가 부당한 일이 일어난 것 같다며, 아일린이 졸업한 1927년에 그 과정을 듣던 어떤 여학생에게도 1등급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저자는 여성에게 학위 수여 자체가 허용된 것도 그보다 고작 5년 전이었다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이렇게 기록되지 않은, 숨은 차별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은 그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기록의 부재'는 항상 여성의 진술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지 오웰 뒤에서'는 정말 소중한 시도임을 이해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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