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기(cheugy)?
• 댓글 남기기최근 들어 스키니진과 사이드파트sideparts 헤어스타일(직역하면 '옆가르마'이지만, 우리가 아는 옆가르마라기 보다는 정중앙 가르마가 아닌 그냥 비스듬한 가르마)을 "밀레니얼 세대의 한물간 스타일"이라고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분개한 일이 있었다. (혹시 아직 못들어봤다면 이 기사에서 제법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직도 직장에서 상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젊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Z세대다.
여기에서 잠깐, 'Z세대와 이메일'에서도 설명했지만, 항상 헷갈리는 개념이니 한 번 더 정리해보자. 밀레니얼 세대, 혹은 Y세대는 1981~1996년생, Z세대는 1997~2012년생이다. 이런 개념이 정확한 것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대화에서 언급되니 알아두면 나쁘지 않은 상식 정도로 취급하자.
물론 패션이라는 게 원래 돌고 도는 거고, 한동안 인기를 끌었으면 다음 세대가 피하는 건 당연하지만, Z세대는 스키니진과 사이드파트에만 그치지 않고 밀레니얼 세대가 누리던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선을 긋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눈물을 흘리며 웃는 이모지.
"이 이모지가 뭐 어때서?!"라고 분노하는 밀레니얼들이 있다면 오늘 저녁 엄마에게서 받은 카톡을 한 번 열어보라. "늦지 않게 빨리 와~~~~" 이 넘실대는 물결이 586 이상 세대를 보여주는 (그러나 그 세대는 눈치 못채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영상에서 '20대 여자 카톡방에 숨은 30대 찾기'에서 20대들이 눈웃음^^을 사용한 30대를 바로 찾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눈웃음은) 저희 엄마가 많이 쓰시는 거거든요."
마찬가지로 Z세대의 눈에는 이 눈물 흘리며 웃는 이모지는 밀레니얼은 눈치 못채는 밀레니얼의 표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Z세대가 밀레니얼들이 좋아하는 문화 요소들을 지적하는 일이 갑자기 화제가 된 것은 지난 3월 말, 헤일리 케인Hallie Cain이라는 한 틱톡커가 신조어를 하나 유행시키면서였다. 유행이 지난 것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할 만한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며 "츄기cheugy"라는 말을 사용한 이 틱톡은 엄청난 바이럴이 났고, 츄기라는 단어의 표적이 된 문화 요소들을 주로 사용하는 밀레니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현재 문제의 틱톡은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혹시 궁금하다면 이 영상에 일부가 남아있다).
츄기라는 단어는 다른 단어에서 온 것 같지는 않고, 2013년에 LA 베벌리힐스 고등학교에서 몇몇 학생들이 "유행이 지난 차림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가리킬 때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작은 지역, 아니 한 학교에서 사용되고 말았던 단어인데, 올해 들어와 틱톡에서 인기를 끌었고 (무려 1억 5천만 개의 #cheugy 비디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걸 받아서 뉴욕타임즈가 스타일 섹션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롤링스톤즈, 바이스, 리파이너리29 같은 곳에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분석 기사를 낸 후로 틱톡 유니버스를 벗어나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
아무래도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개념이니 미국 문화의 문맥 내에서 이해 가능한 것들이 많다. 가령 "Live, Laugh, Love"라는 문구가 붙은 인테리어 장식품이 그렇다. 밀레니얼들이 좋아하는 장식 중에 이런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언뜻 개성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대량생산된 물건들을 타겟Target 스토어(월마트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고급스럽고 깔끔하다) 같은 곳에서 많이 판다. 그런데 굳이 타겟인 이유는 밀레니얼들이 좋아하는 매장이라서 그렇다. 바로 그런 이유로 Z세대는 "타겟=밀레니얼 매장"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고, 그래서 타겟은 피해야 하는 가게처럼 말한다.
여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Z세대가 "언뜻 개성이 있어 보이지만 대량생산된" 물건들의 미학도 츄기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약 10여 년 전에 츄기 비슷한 개념이 잠깐 유행한 적이 있다. 바로 'basic b**ch'라는 표현이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남들이 다 입는 요가 팬츠에, 남들이 다 신는 어그부츠를 신고, 남들이 다 쓰는 비니를 쓰고, 남들이 다 마시는 그 시즌의 스타벅스 음료를 들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여성 혐오적인 단어가 들어있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되지는 않지만, 그런 주류 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취향 없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츄기'의 개념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살짝 묻어 있는데 그게 바로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가 다들 사서 걸어놓는 뻔한 인테리어 소품을 비웃는 시각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들이 같은 나이 때 가졌던 재산의 80% 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집을 예쁘게 꾸미려니 뻔한 장식품을 고르는 건데, 그걸 또 Z세대는 "스무 살에 결혼한(married at 20) 사람들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젊으니 귀엽고 예쁜 걸 찾지만 가진 돈이 뻔하니 진부한 인테리어 용품밖에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밀레니어들과 비슷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개를 dog 대신 doggo(도고)라고 부르는 건 우리나라 20, 30대가 개를 강아지, 멍멍이, 댕댕이 등의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보이고, 미니언즈(Minions)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물론 Z세대가 "밀레니얼들이 좋아하는 츄기"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리스트를 만들자면 끝도 없겠지만, 한눈에 살펴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의 @cheuglife를 잠깐 훑어보면 된다. (아, 그리고 cheugy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츄그cheug라고 부른다).
츄기라는 단어가 유명해진 것은 밀레니얼 세대와 자신들을 구분하려는 Z세대가 콕 짚어 말할 수 없었던 차이점을 표출할 수 있는 개념을 비로소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시태그를 단 틱톡이 쏟아져 나온 것이고, 틱톡 영상을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열심히 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그 유행을 보고 "감히 니들이 우리를 놀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반응을 하면서 일종의 문화전쟁이 일어난 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적인 개념이 그렇듯 츄기라는 것도 각자 정의하기 나름일 뿐 명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다. 츄기라 불리는 것들을 좋아하는 Z세대도 있고, 무엇보다 츄기가 반드시 조롱이나 비하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래, 나 츄그다. 어쩔래?"하면서 자신은 곧 죽어도 사이트파트와 스키니진은 포기할 수 없다는 밀레니얼의 영상을 보면 결국 한 세대가 즐기는 것들이 그보다 어린 세대가 등장해서 구분을 짓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으로 보인다.
다만 Z세대에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면 중고품 매장(thrifty shop)에 대한 사랑이다. 깨끗하고 (고급은 아니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타겟의 제품을 좋아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기저에는 Z세대의 '중고품 미학'이 숨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별도로 다뤄야 할 주제이니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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