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미국도 주연급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시작 전부터 미국 언론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도하고 있었고, 미국 대외 정책의 모든 에너지는 우크라이나에 집중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구 언론사들의 물량 공세를 'CNN은 이렇게 보도했다', 'BBC는 이렇게 보도했다'고만 전할 수는 없었다. 세계정세를 뒤흔드는 대사건을 취재하면서 우리나라가 궁금해 하는 걸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개전 초기 한국 언론들은 우크라이나에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예전 같으면 외신에 의존하는 방식 말고는 방법이 없었겠지만, 기술의 발전은 취재 방식 자체를 크게 바꿔놓고 있었다. 이미 카타르에 있던 탈레반 대변인은 물론 오미크론을 처음 찾아내 특성을 규명한 남아공 과학자들도 워싱턴에서 화상 인터뷰를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하버드 대학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피해자 왜곡 논문 사건을 취재하면서 미국 각지에 있는 교수 3명을 동시에 인터뷰하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인들이 화상으로 대화하고 인터뷰하는데 더 익숙하게 만들고 있었다. 전쟁이라고 해서 화상 취재가 불가능할 거 같지는 않았다. 이번 전쟁의 당사자들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에 흩어져 있었지만, 이들 모두 화상으로 취재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론적으로 개전 초기까지 우크라이나, 러시아, 미국의 전문가 10명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달랐기 때문에 미국의 시각으로만 이번 전쟁을 취재하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에서도 전직 차관 둘과 전직 하원 의원을 인터뷰했다. 워싱턴과 서울, 키이우, 모스크바 시간을 시간 변환기에 모두 띄워놓고 최적의 인터뷰 시간대를 찾아야하는 골치 아픈 일이 있었지만, 전쟁의 이해당사자를 모두 인터뷰할 수 있다는 흥분감이 있어 몸이 힘든지도 모르고 일했던 기억이 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머리 위로 폭탄이 쏟아지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화상 인터뷰가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폭격을 의식했던 우크라이나 전 국방차관은 어두운 방에서 인터뷰를 했지만, 그것도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여러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우크라이나 내부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보도의 진정성을 인정받게 됐고, 이들은 서로 다른 취재원을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가장 취재가 어려웠던 세르게이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과 비탈리 클리츠코 키이우 시장과의 인터뷰 과정을 정리했다.

가족까지 실종된 마리우폴 부시장

2022년 3월 12일

러시아군이 맹공을 퍼붓고 있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시의 기반 시설이 러시아군의 폭격과 포격으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의 진입을 막고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민간인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상상하기 어려운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리우폴의 세르게이 오를로프 부시장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오를로프 부시장의 연락처는 그동안 인터뷰를 도와줬던 우크라이나 인사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구해줬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보 담당자들은 서로 연락선이 어떻게든 닿기 때문에 몇 번 소개를 거쳐 그와 연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인터뷰는 순탄하지 않았다. 원래 약속했던 시간에 오를로프 부시장은 도저히 지금 못하겠다며 한 시간 반 뒤에 인터뷰를 하자고 인터뷰 직전에 연락을 해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 시간에 한 번씩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을 항공 폭격하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을 에워싸고 13일째 봉쇄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도시 안에 들어가 우크라이나 군과 전투를 하기보다는 폭격과 포격으로 도시를 고사시키는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오를로프 부시장은 인도주의 통로로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을 빼내려고 시도했었는데, 러시아군이 운송 수단인 버스를 보면 집중 공격해서 박살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시민들이 승용차를 타고 마리우폴을 빠져나가려고 러시아 검문소까지 갔었는데, 총기를 난사하면서 포격을 시작했다고 한다. 조준 사격을 한 건 아니었지만, '니들 못 나가니 돌아가라'고 경고한 것이었다. 도시의 입구와 출구를 막고 물자 반입까지 막아서 시 전체를 굶겨 죽이려는 작전이었다. 특히 민간인 거주 지역을 향한 러시아군의 포격이 쉬지 않고 계속됐다. 오를로프 부시장은 “러시아군은 목표도 없이 무차별 폭격으로 완전히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그는 생각 날 때마다 마리우폴 상황을 알 수 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왓츠앱으로 보내줬다. 러시아군은 주거지역의 아파트를 게임하듯이 그냥 포격해서 박살내고 있었다.

[단독 인터뷰] 마리우폴 부시장 ”시신이 사라지고 있다”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는 여전히 민간인 13만 명이 고립돼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숨진 사람들의 시신도 그대로 방치됐는데, 최근에 시신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SBS 뉴스김수형 기자

오를로프 부시장은 그 자신이 아버지, 어머니와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가족의 행방조차 끊어진 상황에서 그는 도시의 여러 상황을 챙기며, 외신 기자들과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마리우폴은 기사로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시민들은 나무를 주워서 연료로 사용하고 있었고, 눈을 모아서 식수를 얻을 정도였다. 오를로프 부시장은 넘쳐나는 사망자들을 매장하려면 도시 외곽의 공동묘지에 묻어야했지만 러시아군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시내 한복판에 집단 매장소를 열어서 시신을 묻었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동을 폭격하고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우크라이나 군이 사진으로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 분노했다. 오를로프 부시장은 임신한 여성이나, 숨진 어린이가 군인이라는 얘기냐고 반문하면서 러시아군의 해명은 ‘가장 잔인한 거짓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인터뷰에는 울음이 묻어 있었다.

오를로프 부시장은 한국의 대러 제재 참여에 감사 인사를 하면서 “우리가 우크라이나인이 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강대국 옆에서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인터뷰였다.

쇳조각 들고 나온 전설의 복싱 챔피언

2022년 3월 25일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를 언급하면서 같이 자주 거론되는 게 키이우 시장 비탈리 클리츠코였다. 역대 최강의 복서를 꼽을 때 항상 언급되는 비탈리 클리츠코는 WBC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10년 넘게 지켰다. 동생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와 형제 헤비급 챔피언으로 복싱계를 양분했던 인물이었다. 클리츠코 시장은 키이우의 연임 시장으로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정치적인 중량감이 상당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부터 자신은 키이우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며 최전선에 앞장설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클리츠코 시장은 전쟁 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지원하기로 약속한 헬멧 5천개에 대해 '농담하냐'고 대응해 큰 화제가 됐었다. 유독 미온적인 대응을 했던 독일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더 많은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강경 발언이었다. 전쟁이 벌어지기 꽤 오래 전에 이 영상을 보고 클리츠코라는 인물에 관심이 생겼다. 키이우시 대표 이메일로 섭외를 요청하는 내용을 보내놨는데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며칠 기다리다가 공보실에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받아 일단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그는 공보실장에게 전달하겠다고 말을 했는데, 그리고는 또 며칠 더 시간이 지났다. 또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여성 공보실장이 직접 받고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주면서 왓츠앱으로 연락하라고 답을 했다.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은 직후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됐다. 한동안 연락을 주고받던 우크라이나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과 연락이 끊어졌다. 키이우시 공보실장의 안전이 걱정돼 생각날 때 왓츠앱 메시지를 보냈는데, 전쟁이 터지고 며칠 지나 그녀는 폭격을 피해 다니고 있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녀는 폭발음이 사방에서 들리고 있다며, 대피소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해왔다. 시장실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져 개전 초기 혼란 상황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더 이상 요청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인터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아무 문제없이 이 시기를 살아서 잘 버텨달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키이우시 공보실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치솟으면서 한국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는 것을 대단히 고마워했다. 인터뷰 섭외를 해서 미국, 우크라이나, 러시아까지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한 걸 뉴스로 만들어지는 대로 유튜브 링크로 보내줬는데, 공보실장은 보도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이들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클리츠코 시장은 키이우 곳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방탄조끼를 입고 참호까지 점검하며 지역 방어를 맡은 병사들을 격려했다. 그는 이런 장면들을 트위터, 텔레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시민들과 공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그렇지만, 클리츠코 시장도 SNS를 통한 여론전에 대단히 능숙했다. 특히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방공호로 쓰이던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만날 때 한 중년 여성은 그의 품에 안겨 울기도 했다. 그런 메시지는 고스란히 SNS를 통해 전파됐고, 키이우를 단단히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

키이우가 개전 초기 러시아의 격렬한 공격에서 다소 벗어나자 그는 다른 나라 언론들과도 인터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CNN과 라이브 인터뷰를 하는 걸 봤는데, 공보실장은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해줬다. 클리츠코 시장은 미국, 영국, 독일의 주요 매체에게만 아주 제한적으로 키이우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은 키이우에 기자가 들어가 있는 곳이었고, 현지에서 인터뷰하기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게 사실이었다. 사실 한국 매체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SBS도 키이우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다. 현지에도 이미 다양한 국가에서 굉장히 많은 매체가 들어와 있었고, 이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정을 조율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한국에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화상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공보실장은 CNN과 인터뷰하는 날 클리츠코 시장을 설득해 SBS에도 인터뷰 시간을 잡아줬다. 마침 우크라이나가 수도 키이우 주변 지역에서 러시아군 일부를 몰아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였다.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던 클리츠코 시장과 인터뷰는 그렇게 성사됐다.

그는 화상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작은 쇳조각을 꺼내 보여줬다. 정육면체 모양의 쇳조각은 러시아군이 떨어뜨린 폭탄에서 사방으로 흩어진 파편이었다. 클리츠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도심 한복판, 주거 지역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쇳조각이 주변 5백 미터를 초토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한 많은 민간인 살상을 계획해 실행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그가 직접 들고 나온 물건이었다. 클리츠코 시장은 자신이 도심을 부지런히 누비는 것에 대해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시민들에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폭격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현장 점검을 나가면서 도시 기반 시설이 무너지지 않게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인터뷰 당시 키이우에서 파괴된 아파트만 80여 개 동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곳을 누비며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클리츠코 시장은 인터뷰 중간 중간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키이우의 파괴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여성과 이이들의 시신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러시아의 발표에 대해서 극도로 분노했다. 그는 러시아 미디어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면서 푸틴은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크라이나 군의 목숨을 건 투지에 전세가 역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은 돈을 위해서 싸우지만 우크라이나 군은 특별한 투지가 있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단독] ”러시아군, ‘쇳조각 폭탄’으로 민간 무차별 공격”

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 주변에서 러시아군 일부를 몰아냈다고도 밝혔습니다. 얼마 안 가서 함락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수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SBS 뉴스김수형 기자

그는 시장이기도 했지만, 최전방에 선 전사이기도 했다. 클리츠코 시장은 러시아의 생화학 무기 사용을 가장 우려했다. 군사적으로 처참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러시아가 전세를 뒤집기 위해 생화학 무기를 사용한다면 민간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들은 생화학전에 준비돼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과거 시리아에서 러시아가 이미 화학전을 벌인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공격이 가능하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러시아의 화학 무기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마스크와 방독면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격 무기 지원이 최우선이지만, 그게 안 되면 한국이 지원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클리츠코 시장은 현란한 언어적인 수사를 구사하지는 않았지만, 행동으로 도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탈레반이 밀어닥쳤을 때 가장 먼저 카불을 탈출했던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줬던 것이다. 우직하지만 행동으로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클리츠코 시장은 키이우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때 권투로 세계를 평정했던 챔피언은 그렇게 훌륭한 정치인으로 변신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