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언 테트의 책 '알고 있다는 착각'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습니다. 이 책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본문 밑에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한국시간으로 월요일(15일) 자정까지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중에서 열 분을 추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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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주니어라는 코미디언이 있다. 이 코미디언이 자신의 스페셜에서 미국에 사는 백인과 흑인의 문화 차이를 개의 이름으로 설명했다. (아래 영상 41:30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 사람의 "이론"에 따르면 백인과 흑인은 개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이는 이름으로 쉽게 알 수 있다. 백인들은 자신의 개에게 마빈(Marvin)이나 클레어(Claire) 같은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반면, 흑인들은 피넛(Peanut)이나 코코(Coco)처럼 그냥 귀여운 소리가 나는 걸로 붙인다는 거다.

그는 "모든 백인과 흑인이 100%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청중들에게 무작위로 질문해서 자신의 이론을 확인한다. 이후에 벌어지는 약 10분 동안의 청중 조사 결과는 현실만큼 재미있는 코미디도 없음을 보여준다. 약간의 스포일러지만, 그가 지목한 어느 백인 남자의 개 이름은 Tobias Odendaal von Bern이었다. 마이클 주니어는 "당신 개는 직업도 있나요?"라고 묻는다.

이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중년의 여성이 강아지를 오라고 부르면서 "엄마한테 와"라고 하는 걸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미국의 백인들은 거기에서 훨씬 더 나간다. 특히 중산층 이상에서는 개를 자신의 아이와 똑같이 생각하고 사람의 이름을 붙이고, 자신들의 성(family name)을 이름 뒤에 붙이는 일도 흔하다.

마이클 주니어의 설명은 꽤 진지하다. 개에게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면 돈을 더 쓰게 된다는 거다.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치료비가 2,000 달러가 나온다고 하자, 치료해야 할 대상이 '마빈'이라면 지갑을 열지만, 그게 '피넛'이라면 돈이 아깝게 느껴지고 포기한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건 백인과 흑인의 경제력 격차이지만 말이다.

이상한 서구인

질리언 테트(Gillian Tett)가 쓴 책 '알고 있다는 착각'의 영문 원제목은 Anthro-vision이다. 테트는 현재 '파이낸셜 타임즈'의 편집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원래는 인류학자였고, 우여곡절 (자세한 사정은 이 책의 1장에 나온다. 뒤에 이어지는 저자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재미있다) 끝에 언론인이 된 사람이다. Anthro-vision은 그러니까 인류학자(anthropologist)의 시각이라는 의미다.

목차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눈치챌 수 있겠지만 타지키스탄이라는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의 문화를 외부인의 눈으로 연구하던 인류학자가 자신이 배운 스킬셋(skill set)을 사용해서 현대 사회를 살펴보는 내용이다. 테트 본인이 직접 살펴본 사례도 있지만, 다른 인류학자들이 기업 조직과 같은 환경에서 마치 낯선 원주민을 살펴보듯 관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들을 모아두었다.

나는 순수 인문학인 인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에필로그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마존의 부족들을 연구하는 눈으로 테크 기업 아마존을 살펴보는 셈이다. 하지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원래 다른 학문에서는 배우기 힘든 종류의 접근법을 배우기 때문에 찾아내야 할 것이 뭔지 조차 규정되지 않은 문제를 찾는데 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

이런 관찰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인류학자들은 (이 학문 초기의) 서구 중심적인 시각을 일찌감치 버리고 모든 문화를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현대 서구문화도 흥미로운 풍습을 가진 원주민일 뿐이다. 그래서 이 문화를 WEIRD(서양의 Western, 교육받은 Educated, 개인주의적인 Individualistic, 부유한 Rich, 민주적인 Democratic)라 부른다. 다섯 개의 개념을 요약한 약어이지만, '이상한(weird)'이라는 단어가 된다는 건 이들의 문화상대주의적 자세를 잘 보여준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코미디로 다시 돌아가면, 저자는 6장에서 서구문화가 애완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과거 인류에 보편적이었던 태도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한다.

맥케이브는 각 가정을 관찰한 뒤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단순히 동물이나 자연계의 표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친족의 개념으로 표현한다. 응답자들은 고양이와 개를 ‘혈육’이자 가족의 일원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가정에서는 이런 이미지가 정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로나 다른 사회의 기준에서는 ‘혈육’ 또는 ‘가족’이라는 표현은 괴상하게 들렸다.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대다수 사회에서 동물은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인간과 다른 범주에 속했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에서 현지 탐사를 진행하면서 인간이 자신을 동물과 반대 개념으로 정의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라코타의 아메리카 원주민도 동물을 인간이나 가족의 바깥에 있는 존재로 간주한다. “라코타족은 전통적으로 동물을 소유하지 않는다. ... 개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펴주기는 하지만 개들은 밖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 수 있다."

사실 코미디언 마이클 주니어의 이야기에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된 청중이 폭소를 터뜨리는 것도 개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자신들에게 익숙했지만 누군가 그걸 낯설게 바라보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의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것도 그렇게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는" 작업이다.

센스메이킹

질리언 테트는 인류학자 에드윈 허친스(Edwin Hutchins)의 말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의 인지는 문화와 사회에서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문화적, 사회적 과정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9장에는 복사기 제조기업 제록스(Xerox)에서 일하는 복사기 수리기사들은 다양한 환경에 놓인 복사기가 고장 난 이유를 찾아 고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들은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회사에서 엔지니어들이 만든 매뉴얼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들만의 방법을 갖고 있고 (가령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으면 복사기 옆 쓰레기통을 뒤져서 버려진 종이들을 살펴보라는 식) 해결법을 찾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로컬의 저렴한 식당이라고 한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건 센스 메이킹(sense making)이다. 이성적으로 만들어진 절차와 논리가 선행하고 그것들을 통해서 현상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인간은 현상을 아무런 편견이 없는 진공상태에서 과학적으로 관찰, 인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그 문화의 영향 속에서 한다. 그리고 그런 인지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아주 딱딱한 인문학 서적처럼 들리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킷캣(KitKat)이 수험생을 응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된 사연부터 시작해서 전염병, 금융위기, 트럼프 지지자들, 실리콘밸리의 작동원리와 최근 유행하는 ESG 경영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인류학자의 눈("anthro-vision")이라는 실로 꿰어 흥미진진하게 설명된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우리 모두가 인류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따르자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세상을 상대방의 관점으로 보자는 것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외부인의 눈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자연스럽게 생겨난 하나의 문화적 틀만 있는 게 아니며 "인간 존재 자체가 다양성의 산물"임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인류학의 기본 원칙을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고 관찰법까지 훈련시켜주는 책이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