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들의 핵무기 통제에 관한 태도 변화를 요약하면, 트루먼은 핵무기 사용을 직접 관리하려 했고, 그의 뒤를 이은 아이젠하워는 다시 군에 관리를 넘겨주었고, 그다음에 등장한 케네디는 다시 대통령이 직접 고삐를 잡으려 한 것이다. 케네디 정권을 지나면서 대통령의 핵무기 직접 통제는 강화되어, 관련된 법까지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에 사람들이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만 해도 검증되고 선출된 대통령이면 신뢰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흔드는 대통령이 등장한다. 바로 리처드 닉슨이다. 그는 1968년에 당선되었고, 1972년 50개 주 중 49개를 가져오며 압승하며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해 6월에 불거진 민주당 전국 위원회 본부 불법 침입 및 도청 사건(워터게이트 스캔들)으로 두 번째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했다.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임기 말에 닉슨은 두 명의 의원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가 얼마나 큰데 이런 "약간의 절도 사건(little burglary)"을 이렇게 문제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원하면 지금 당장 옆방으로 가서 전화만 한 통하면 20분 후에 6,0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닉슨을 불안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수사망이 점점 좁혀들면서 닉슨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이를 달래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닉슨 정권 말년을 설명한 글에 따르면, 업무 중에도 술에 취해서 말을 제대로 못할 때도 있었고, 예정된 외국 정상과 통화가 불가능한 정도로 취한 때도 있었다. 그는 편집증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듯 충동적인 행동도 보였는데, 이른 새벽에 시위대가 모인 링컨 기념관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리처드 닉슨 (이미지 출처: Deadline)

핵미사일 발사를 책임지는 미슬리어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던 해롤드 헤링이 걱정하던 상황이 바로 이 상황이었다. 판단력이 흐려진 대통령이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들고 핵 미사일의 발사를 명령하면 그걸 제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느냐는 것이다. 첫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헤링은 수업이 끝난 후에 교관에게 이를 물었고, 교관은 말로 하는 대신 글로 적어서 제출하라고 했다. 미슬리어가 되려는 교육생의 자질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기록으로 남기게 한 것이다. 교관의 판단대로 이 문제는 커졌고, 헤링은 졸업을 엿새 앞두고 교육과정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많은 회의와 재판이 이어진다.

그의 상관들은 헤링에게 국가의 지도자들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헤링에게 그 말은 "묻지 말고, 알 필요도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심지어 군사법원에서 판사가 헤링에게 "당신의 질문지가 여기에 있다. 내가 지금 이걸 찢을 테니 이런 일이 없던 걸로 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단다. 하지만 헤링은 반드시 답을 들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헤링은 연방 의원들, 심지어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헤링은 미슬리어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답을 들을 수 없다면 핵미사일 발사 책임자가 되고 싶지 않으니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중령 진급은 보류되고, 비행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인력으로 재분류되어 기밀 취급 허가(security clearance, 보안등급)도 취소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 박사가 강하게 반발한 것도 바로 이 조치였는데, 기밀을 취급할 수 없으면 주요 업무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런 기밀을 다뤄야 하는 직책으로 승진이 불가능해서, 사실상 국가기관 취업의 길이 막히는 것이다.
미 공군의 핵미사일 사일로의 구조 (이미지 출처: Department of Defense)

헤링은 이 결정을 뒤집고 기록을 정정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전역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 질문 하나가 그렇게 위험했을까?

헤링의 입장에서는 단순하고 상식적인 질문이다. 말단의 미슬리어도 함부로 발사할 수 없게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있는데, 그렇다면 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는 어떤 장치가 있느냐는 것. 하지만 명령이 내려오면 지체도, 의심도 없이 실행할 미슬리어를 선발하는 군의 입장에서는 상부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생을 선발하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핵무기를 가진 나라들이 이를 사용하지 않고 자제하는 이유는 상호확증파괴, 즉 먼저 발사하는 나라도 함께 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발사해도 상대방이 주저하며 반격에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발사 명령이 떨어지면 아무런 의심도, 지체도 없이 실행에 옮길 사람이 핵미사일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미슬리어를 선발하는 기준이다.

미 공군은 해롤드 헤링은 그런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슬리어가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 과연 올바른 결정 과정을 거쳤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작동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무수행 평가를 받고 있는 미 공군의 미슬리어 (이미지 출처: National Park Service

당시 군은 헤링에 대한 평가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헤링 소령의 망설임(회의적 태도)으로 인해 광범위한 청문회와 행정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후에 소령은 명령을 받으면 망설임없이 발사 열쇠를 돌릴 것이며, 자신의 망설임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그는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은 즉시 발사 열쇠를 돌리겠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말할 때마다 곧바로 자신의 주관적인 조건을 덧붙였다. 정당한 명령 체계에 따라 진짜 명령을 받으면 열쇠를 돌리겠다고 말할 때마다 '그 명령이 적법하다면,' '상황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필요가 있다면' 같은 조건을 달았다. 그는 명령 이행에 항상 주관적인 조건을 달았다."

수십 년 후에야 이 평가를 읽은 헤링은 자신은 명령을 이행하는 조건을 달지 않았다며 강하게 부인한다. 전혀 근거 없이 지어낸 말이라는 것. 그는 그저 최고 결정권자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어떤 장치가 있는지, 없는지만 알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끝내 답을 듣지 못했다.

견제와 균형의 부재

헤링처럼 명령 이행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사람이 결정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면, 그의 상관은 할 수 있을까? 그 상관의 상관은? 그렇게 계속 지휘계통을 타고 올라가면 장군이 나오고, 합참의장이 나오고, 국방부 장관이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충동적인 결정을 견제할 수 있을까?

1990년대 후반,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는 정확한 답을 알고 있다.

윌리엄 페리 (이미지 출처: Pittsburgh Post-Gazette)

질문: 대통령이 당신에게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렸는데, 대통령이 취했거나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서 당신이 동의할 수 없다면, 국방부 장관은 그 명령을 막을 권한을 갖고 있습니까?

페리: 핵전쟁은 대통령만 핵전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므로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이나 국무부 장관, 혹은 합참의장을 불러서 의견을 구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고 해도 그걸 따를지, 말지는 대통령의 결정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제가 "이건 큰 실수입니다.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이 제 말을 들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질문: 발사 결정에 국방부 장관은 필요 없다는 건가요?

페리: 필요 없습니다. 대통령은 전략 공군 사령부 직통 전화를 사용해 발사를 명령하면 됩니다. 그러면 사령부에서는 그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 사람들은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해서 명령을 따라야 하느냐고 묻지 않아요.

미국 대통령의 '핵가방' (이미지 출처: Washington Post)

실제로 미슬리어로 일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이들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훈련받았다고 한다. 해롤드 헤링이 미슬리어가 되기 위해 교육받던 시점에 미슬리어로 일했고, 훗날 핵무기 발사 명령과 통제 체제를 연구한 브루스 블레어(Bruce Blair)에 따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되면 제일 먼저 상대 국가의 ICBM을 공격해서 무력화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자국의 ICBM으로 반격하려면 적국의 미사일이 도착하기 전에 발사해야 한다. 시간을 갖고 논의해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련이 미사일 발사를 확인한 후부터 미국이 미사일을 쏘기까지 약 6, 7분의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 옆에 군인이 항상 핵가방을 들고 대기하는 이유가 이거다.

이런 압력 아래에서 대통령들은 각각 다르게 반응할 것이고, 여기에는 그들의 성격과 같은 다양한 요소가 개입된다. 조지 W. 부시 시절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Dick Cheney)는 아버지 부시 시절에 국방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은 인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규모의 공격을 지시할 수 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 다른 사람과 상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의회와 상의할 필요도 없고, 법원에 문의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위험하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거다."

해롤드 헤링을 괴롭힌 게 바로 이런 견제와 균형의 부재였다.

조지 W. 부시 뒤에 선 딕 체니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에 따르면 이런 결정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ICBM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대신 잠수함과 폭격기를 사용해 핵무기를 적국에 떨어뜨리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었다. 사일로의 위치가 노출된 ICBM과 달리 미국의 핵미사일을 가진 잠수함은 적이 선제공격으로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몇 분 내에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적의 핵무기 공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이 핵을 사용하려는 시나리오에 관해서는 새로운 법안이 의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적국의 핵무기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핵으로 선제 공격을 하려 할 때는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도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핵무기의 선제 사용도 전쟁 행위로 간주해서 의회의 승인을 받게 하려는 거다.

이 법안은 원래 오바마 행정부 말기에 의회 통과를 준비하고 있었고, (당시만 해도 누구나 대통령이 될 줄 알았던) 힐러리 클린턴 정부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다. 아직 의회를 통과하지 않아서 여전히 법안으로만 남아있고, 미국의 대통령은 여전히 의회나 그 누구의 동의나 승인 없이도 먼저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알츠하이머를 앓든, 술에 취해서든 발사 명령을 내리면 제지할 수 있는 제도도, 사람도 없다.


미슬리어 교육 중에 퇴출당해 군복을 벗은 해롤드 헤링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는 트럭 운전사가 되었고, 일과 가정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결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단다. 트럭 운전을 끝낸 뒤에는 구세군에서 마약중독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고, 80대의 나이에도 듀애슬론 전국 대회와 국제 대회에 출전한다.

"저는 이게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트럼프 집권기에 한 인터뷰다–옮긴이) 미국에 그 어느 때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저는 군에 충성했고, 베트남전에도 자원해서 참전해 제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충분히 물을 수 있는 상식적인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