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드 ④
• 댓글 6개 보기메소드 연기가 탄생한 '그룹'에서 활동했던 엘리아 카잔 감독은 연극 때부터 말론 브란도와 함께 일했다. 배우와 감독이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벽한 조합이었다. 첫 작품인 '트럭라인 카페(Truckline Cafe, 1946)'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브란도의 대사와 카잔의 솜씨에서 이들의 연극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극 중에서 여자친구를 죽인 브란도가 통곡하는 모습을 본 관객은 그가 연기를 하는지 정말로 우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7년에는 이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브로드웨이에 올리면서 크게 주목받는다. 이 희곡을 쓴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는 주인공을 중년 남성으로 설정했지만, 22세의 브란도를 만난 자리에서 그를 주연 배우로 선택하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여주인공 블랜치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원작의 분위기가 바뀌며 남자주인공 스탠리 쪽에 무게가 실린 작품으로 변했다.
문제는 브란도가 스텔라 애들러에게 배운 새로운 연기 스타일이 함께 무대에 선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방해했다는 데 있다. 배우는 혼자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상대방과 주고받는 대사에서 분명한 리듬을 정해둬야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는데, 브란도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공연마다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바람에 본인의 연기만 돋보이고, 무대에서 대화해야 하는 상대 배우는 당황하는 일이 많았다. 결국 연극 배우의 실력은 관객들에게는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게 하되, 실제로는 꾸준한 리듬을 만들어서 상대역이 함께 연기할 공간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 하지만 브란도는 자기 기분에 따라 타이밍을 바꾸면서 갈채를 받았지만 동료 배우들에게는 이기적인 연기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카잔 감독이 연출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여주인공을 연기한 제시카 탠디(Jessica Tandy)의 경우는 영국에서 전통적인 연기를 배운 배우였는데, 브란도가 멋대로 바꾸는 리듬에 타이밍을 자꾸 놓쳤고, 그 일로 브란도와 크게 다투기도 했다.
1972 알 파치노, 1980 로버트 드니로
메소드 연기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1972년에 나온 '대부(The Godfather)'와 1974년에 나온 같은 영화의 2편이다. 1편에는 47세의 말론 브란도가 노인 분장을 하고 나이 든 대부 비토 콜리오네를 연기했고, 32세의 알 파치노가 그의 아들 마이클 역을 연기했다. 마이클 역을 두고 잭 니콜슨(Jack Nicholson),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 심지어 로버트 드니로까지 나서서 경쟁했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알 파치노를 선택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알 파치노는 리 스트라스버그의 메소드 연기법을 습득한 배우였고, 2편에서 비토 콜리오네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로버트 드니로는 스텔라 애들러에게서 연기를 배웠다.
이 영화에는 스트라스버그와 애들러에게서 연기를 배운 사람들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경쟁하던 '그룹' 출신의 연기 코치인 샌포드 마이스너의 제자들도 있었다. 마이클의 여자친구, 아내를 연기한 다이앤 키튼(Diane Keaton)과 가문의 콘실리에리(consigliere, 자문역)를 연기한 로버트 듀발(Robert Duvall)이 마이스너에게서 배운 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는 원작과 감독도 훌륭했지만, 스트라스버그, 애들러, 마이스너의 서로 연기 방법론이 제자들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자료가 된다. 물론 세 명의 연기 코치는 방법론이 달랐을 뿐, 추구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목표와 같았다.
아래 장면을 보자. 마피아 가문의 막내이지만 집안이 하는 일과 관련 없이 살던 마이클이 아버지를 살해하려던 경쟁 갱단에 복수를 하면서 첫 살인을 하는 장면이다. (잔인한 총격 장면이 나오니 주의) 알 파치노는 이 장면에서 거의 대사가 없다. 그의 연기는 얼굴 표정과 몸동작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첫 살인을 앞둔 그의 망설임과 긴장은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를 찍으면서 주연 배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사는 다른 배우들이 하게 하고 너는 생각만 해. 그럼 카메라가 그걸 잡아낼 테니까." 코폴라 감독은 '대부'를 찍으면서 이 연기법을 배운 알 파치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듯, 그에게 대사를 적게 주고 카메라를 그의 얼굴 앞에 들이대고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읽어낸다.
리 스트라스버그의 '메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부' 2편에 등장하는 로버트 드니로의 경우도 스승인 스텔라 애들러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자기 경험과 정서 기억을 꺼내어 사용하라던 스트라스버그와 달리, 애들러는 배우에게 상황과 인물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주문했다. 아래 장면에서 드니로가 하는 역할은 20세기 초 뉴욕으로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다. 그런 이민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표정을 사용했고, 어떻게 말했고, 자신이 있는 공간을 어떻게 차지하고 있었을까(How would they inhabit the space)?
아래 영상을 보면 드니로는 목이 쉰 듯한 특이한 목소리로 말하고, 다양한 자세를 취하는데, 위의 영상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알 파치노의 눈에 집중하는 것처럼, 이 영상에서는 드니로의 자세와 동작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흥미로운 일화이지만, '대부' 2편에는 알 파치노의 연기 코치 리 스트라스버그가 직접 등장해서 제자와 같은 장면에서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트라스버그는 젊은 시절 잠깐 연기를 했을 뿐, 평생을 연기를 지도하며 보냈는데 제자 알 파치노의 간곡한 부탁으로 출연을 승낙했다. 영화의 대부분이 촬영된 상황이어서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았지만 자신이 지도한 연기법이 실제로 영화 속에서 적용되는지 보고 싶었고, 직접 배우로 출연해서 배울 수 있을 게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래 영상에 등장하는 스트라스버그는 마치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보이는데, 젊은 대부 마이클에게 충고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카리스마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만하다. 스승이 자기가 가르친 테크닉을 제자 앞에서 직접 실연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라 그렇다.
메소드 연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배우에게 돌아가는 피해다. 앞의 글에서 스텔라 애들러가 리 스트라스버그의 메소드 연기법이 배우에게 주는 정신적 압박이 너무 크다고 불평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애들러에게서 배운 로버트 드니로도 연기로 인해서 고통을 겪은 건 마찬가지다. 그의 경우는 체중이었다.
1976년 영화 '분노의 주먹(Raging Bull)'에서 권투선수 제이크 라모타를 연기한 드니로는 권투선수의 몸을 만들기 위해 근육을 키웠는가 하면, 은퇴 후 말년의 라모타를 연기하기 위해 약 27kg을 늘렸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이렇게 갑자기 체중을 늘리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드니로는 체중을 늘린 후 앉고 일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신발을 신기도 힘들었고, 혈압이 올라가고 대사가 바뀌었고, 잘 때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쉽게 지쳐서 촬영 시간도 짧아졌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드니로는 자신이 메소드 배우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최고의 메소드 연기자라고 생각했고 (이 연기법의 역사를 생각하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그가 이 영화를 위해 체중을 엄청나게 늘리고 줄였다는 얘기는 영화계에서 하나의 전설이 되어 진정한 연기자를 구분하는 잣대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크리스천 베일(Christian Bale) 같은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체중을 극단적으로 늘리거나 줄이는 것을 보면서 "대단한 배우"라고 칭찬하는 것은 사실적인 연기를 위해 배우가 노력과 희생을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얘기일 수 있다.
스트라스버그가 요구한 것처럼 '정서 기억'을 동원해야 하는 연기는 더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극이 단선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감정 표현을 준비할 수 있는 연극과 달리, 영화의 경우는 특정 장면의 촬영 스케줄이 영화 진행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뿐 아니라, 좋은 장면을 건지지 못하면 몇 번이고 다시 찍어야 한다. 따라서 배우는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몰입된 감정 표현을 해야 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감독의 사인을 기다리면서 집중하는 장면이나,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촬영 기간 내내 맡은 배역이 되어 말투와 행동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터득했거나 배운 방법들이다.
스트라스버그는 이런 말을 했다. "연기라는 직업은 끔찍한 일이다. 배우는 자신이 평상시에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몸을 자기 직업에 사용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연기를 하는 몸은 그 배우가 일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몸이다. 어떤 예술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메소드 연기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표현, "배우는 화가인 동시에 물감"이라는 것도 비슷한 얘기로, 자기 몸과 정신이 재료로 사용되는 메소드 연기에서 배우 자신이 사용되고 소모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아주 깊이 몰입해야 하는 역을 거듭하던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본다. 그런 배우들이 모두 메소드 연기의 희생자라고 말할 수 없고, 배우마다 같은 연기에서 받는 충격도 다르다. 하지만 스타니슬랍스키가 만들어 낸 새로운 연기법, 우리에게는 '메소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20세기의 연기법이 배우들에게는 하나의 산업재해일 수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1962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1950년대에 리 스트라스버그와 아내 폴라(Paula)를 만나 연기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배우가 가진 아픈 기억을 연기의 재료로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던 스트라스버그에게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살았고, 배우가 되어서도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먼로는 금광 같은 재료를 가진 배우였다. 저자 버틀러는 먼로의 남편인 아서 밀러(Arthur Miller)가 대본을 쓴 작품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1961)'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 먼로가 자신의 과거로 빠져드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래 영상의 0:40 지점에서 시작한다.)
먼로는 이듬해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스트라스버그 부부에게 개인적인 물건들을 남겼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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