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탄핵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이 한국 총선에 개입해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을 꾸준히 반복해 왔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연수원에 중국인 해커 90명이 있었고, 이들이 한국 선거에 개입했다"는 윤석열과 지지자들의 주장은 가짜뉴스임이 밝혀졌지만, 재판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변호인들은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가짜뉴스(fake news), 허위 정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10년 전만 해도 그런 근거 없는 말은 평소 뉴스를 열심히 읽지 않거나, 시사 문제에 어두운 사람들이나 믿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유명 정치인들이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지지자들에게 퍼뜨리는 일종의 정보 세탁이 일어난다.

소셜미디어에서 퍼지는 허위 정보를 보고 누가 만들어냈는지 몰라 망설였던 사람들도 대통령이 그걸 말하면 신뢰한다. '대통령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가 저렇게 말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게 2020년대의 가짜뉴스가 과거와 다른 점이다.

그렇다 보니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총선을 부정선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구호("Stop the Steal")를 가져와 사용한다. 
이미지 출처: 대구일보

가짜뉴스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가령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원장을 지내고, 현재 조국혁신당에 소속된 김준형 의원은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BBC의 보도"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재산이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후로 15조 원이 늘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 의원이 본 것으로 추정되는) 기사는 BBC의 것이 아니라, BBC의 자료를 조작해서 만들어 낸 가짜뉴스였다는 게 이 문제를 살펴본 로이터, 포브스 같은 매체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한 정치인이 한 말은 뒤늦게 책임감 있는 언론이 바로 잡아도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충격적인 뉴스는 빠르게 퍼지지만, 그 뒤에 나온—성실하지만 따분한—팩트는 쉽게 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충격적인 가짜뉴스만을 기억한다. 일단 가짜뉴스를 팩트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걸 신뢰한 후 주위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투자'를 하기 때문에, 그걸 정정하는 팩트를 만나도 거부하거나,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람을 속이는 것이 그가 속았음을 깨닫게 하는 것보다 쉽다(It's easier to fool people than to convince them that they have been fooled)"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거다.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에게 진실을 가르쳐 주는 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주위에 평소 가짜뉴스를 열심히 소비하고 카톡을 통해 확산시키는 어르신이 있는 사람은 이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일이라는 걸 잘 안다. 토론은 금방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감정이 개입되면 누구도 자기 견해를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이 침착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어떨까? 그런 사람이 자기의 (황당한)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대화를 하자고 한다면? 그래서 그 주장이 틀렸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면? 그럼 그 사람은 자신이 믿은 것이 가짜뉴스였음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게 될까?

이미지 생성: Bluedot AI–Pablo

그게 가능한지 직접 실험해 본 기자가 있다. 미국 공영방송(NPR)의 기자 잭 맥(Zach Mack)은 2019년부터 트럼프 지지자들이 퍼뜨리는 주장을 거의 모조리 받아들여 이상한 주장을 하는 아버지에게 그게 사실이 아님을 몇 년 동안 설명하다가 거의 포기하게 되었을 무렵인 2024년 초, 아버지에게서 하나의 제안을 받는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다음의 10가지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내 예측이 틀리면 한 항목 당 1,000달러 씩 네게 주고, 맞으면 네가 내게 같은 액수를 줘야 한다. 내가 모두 틀리면 10,000달러를 주겠다." 우리 돈으로 1,440만 원이라는 큰 액수였다.

잭의 아버지가 1년 내에 일어난다고 장담한 것들은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트럼프 지지자들만 믿는 극히 허황된 주장이었다. 따라서 잭은 돈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기자인 잭이 그 내기를 받아들인 이유는 아버지가 내기에서 지면 몇 년 동안 붙들고 있던 가짜뉴스를 포기할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예측'을 두고 벌어지는 대화를 녹음해서 방송용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물론 다른 식구들—어머니와 여동생—도 녹음에 기꺼이 동의했다. 아래 내용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잭의 가족들에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다. 아버지가 가짜뉴스를 믿으며 하는 행동이 가족 관계를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잭이 만든 총 1시간 30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설명을 붙인 것이다. 프로그램 전체는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녹음해서 팟캐스트 시리즈로 만든 잭 맥 기자와 그렇게 완성된 팟캐스트 시리즈 'Alternate Realities (대안 현실)' 
이미지 출처: NPR

잭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 자랐다. 흔히 "Bay Area"라 불리는 이 지역은 민주당 우세인 캘리포니아에서도 유난히 진보적인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에 살면서 아버지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보수적인 기독교인이었다. 잭의 어머니는 상당히 진보적인 유대계 여성이었고, 잭과 여동생도 어머니처럼 진보적인 성향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기의 정치적 견해를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잭은 아버지가 클린턴 부부에 관해, 그리고 코로나19 백신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부모님에게 반항하면서 기독교와 멀어졌고, 유대계인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고, 두 사람은 종교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러다가 잭이 태어날 무렵, 아버지는 다시 기독교로 되돌아갔고, 그의 신앙심은 깊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팟캐스트에서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보면 목소리를 높이거나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한다.) 편집증을 앓지도 않았고, 불안증도 없었고, 무엇보다 삶에 낙관적인 태도를 가졌던 사람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상냥했고, 심각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랬던 아버지의 성격은 아이패드를 갖게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지역은 미국에서 "성소수자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성정체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미지 출처: Expedia

평소 디지털 기기와 가깝지 않았던 잭의 아버지가 아이패드를 갖게 된 건 팬데믹이 일어나기 직전인 2019년이었다. 그때는 이미 잭과 여동생이 다 커서 부모를 떠나 독립한 시점이었다.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한 잭은 뉴욕으로 이사했는데, 가끔 부모님 집에 가면 그의 아버지가 특정 개신교 목사들—이들은 스스로를 선지자(prophet)라 부른다—의 설교에 깊이 빠져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잭의 아버지는 그중에서도 줄리 그린(Julie Green) 목사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다. 잭이 가끔 확인하는 그의 설교 영상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어두운 예언으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2016년에 트럼프를 지지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설교를 듣다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아버지의 정치적 변화 외에도 다른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잭의 아버지가 열심히 듣던 줄리 그린 목사(오른쪽)와 그의 신도
이미지 출처: NPR

잭의 여동생 카이라(Kira)가 2년 전, 아버지에게 자기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한 것이다. 잭과 어머니는 카이라의 성정체성을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집안에서 유일하게 보수 기독교인인 아버지에게 알리는 것을 모두가 꺼리고 있다가 여동생이 결심하고 아버지께 이야기한 것이다.

아버지는 딸의 커밍아웃을 부정했다. 그는 여전히 딸을 사랑하고, 부모의 집에 오는 것은 언제나 환영하겠지만, 게이나 레즈비언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카이라가 자기 자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카이라는 크게 실망했고, 그 일은 아버지의 행동 때문에 가뜩이나 불안한 상태에 있던 가족을 슬픔에 빠뜨렸다.

잭의 아버지는 인류 사회의 종말이 다가온다고 믿고, 거기에 대비하고 있었다. 음모론자들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서바이벌리스트(survivalist), 혹은 프레퍼(prepper, doomsday-prepper)라 부르는데, 이들은 사회가 붕괴하는 상황에 대비해 고립되어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물과 음식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과 생존 장비를 사 모은다. 아버지는 음식물 외에도 전기가 끊어지는 상황에 대비한 발전기 여러 대를 구입했고, 화폐가 쓸모 없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아내 몰래 귀금속도 모으고 있었다.

프레퍼들이 준비하는 생필품
이미지 출처: The US Sun

그럼 잭의 아버지가 2024년에 반드시 일어난다며 잭에게 적어 보여준 것들은 뭘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조 바이든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힐러리 클린턴, 낸시 호쿨 뉴욕 주지사,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 등이 반역죄(treason) 유죄 판결을 받고, 미국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특히 마지막 항목은 한국인에게는 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데, 잭의 아버지는 뉴욕, 시카고, LA 같은 대도시에서 폭동이 끊이지 않아서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100% 확신한다"는 게 잭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그런데 잭이 보기에 그런 아버지의 변화가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잭의 할아버지가 말년에 아주 비슷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집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