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온난화
• 댓글 49개 보기아래 글은 '소셜온난화'라는 책 앞에 등장하는 추천의 글입니다. 저와 몇 번의 번역 작업을 함께 하신 이승연님이 번역하신 책인데, 출판사(위즈덤하우스)의 의뢰로 먼저 읽어보고 추천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추천사 요청을 모두 수락하지는 않지만 이 주제가 저의 관심사이기도 하고 오터레터 독자분들도 좋아하실 주제라 판단해서 오터레터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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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잰 보일랜드(Rosanne Boyland)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자란 평범한 서른네 살 여성이었다. 고등학교 때 시작했던 마약 때문에 약물중독으로 고생했지만 오랜 노력으로 거의 극복한 상태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해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21세기 미국에서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특별할 게 없는 보일랜드가 미국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건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몇 사람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시위대는 의사당 건물로 몰려가기 직전 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백악관 앞에서 “의회로 가서 도난당한 선거 결과가 승인되는 걸 막으라”는 트럼프의 연설을 들었다. 따라서 미국 뉴스 매체와 국민들은 시위대가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라고 생각했고 대부분은 트럼프의 오랜 지지자들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일랜드는 달랐다. 그녀의 가족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은 남부 조지아주에 살았지만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었고, 보일랜드 역시 사건이 발생하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왜 트럼프의 지시를 따라 의사당으로 갔고 난입 과정에서 사망하게 되었는지는 수수께끼에 가까웠다.
그런데 미국의 한 방송사가 탐사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보일랜드의 가족은 그녀가 어느 날 가족 모임에서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을 기억했다. 그녀의 언니에 따르면 그날 보일랜드는 “웨이페어(Wayfair, 미국의 유명한 온라인 가구 매장)에서 비밀리에 어린아이들을 팔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매장 웹사이트에는 간혹 평범한 캐비닛 같은 가구가 1만 달러(약 1200만 원)가 넘는 가격에 나왔다 사라지는데 그런 가구들에 이상하게 여자아이의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거였다. 보일랜드가 소셜미디어에서 읽은 글에 따르면 할리우드 갑부들과 고위 민주당원들이 어린아이들의 피에서 환각 물질을 뽑아내는데 이를 위해 아이들을 웹사이트에서 거래하고 있다고 했다. 바로 큐어넌(QAnon)이라는 악명 높은 음모론 단체의 주장이었다.
큐어넌은 일부 할리우드 유명인들이 이런 ‘행각’을 벌이다 사살되었고 지금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역일 뿐이라는, 정상인이 믿기 힘든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에 따르면 보일랜드가 그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읽으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가족 모임 때 휴대폰에서 처음 그 이야기를 읽은 그녀는 그날 밤을 꼬박 새워가며 관련된 음모론 동영상과 웹사이트를 섭렵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흥분한 목소리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날 일을 되짚어보니 보일랜드가 가구 이야기를 처음 읽은 시점부터 큐어넌 신봉자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열네 시간에 불과했다.
로잰 보일랜드를 바꾼 열네 시간
큐어넌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납치해서 피를 뽑는 진보 세력을 저지하라고 신이 보낸 사람이 트럼프이고, 따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큐어넌의 일원이 된 보일랜드가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트럼프가 패배한 선거의 결과가 승인되는 걸 막으려고 했던 이유다. IS 같은 이슬람 과격단체의 주장을 온라인에서 접한 뒤 급진화하는 서구 청년들을 보며 신기하게 생각했던 미국인들은 보일랜드의 사연을 들으면서 똑같은 일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일랜드는 남을 돕기를 좋아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특히 조카들을 포함해 아이들을 유난히 아끼고 좋아했다고 한다. 큐어넌은 그런 성격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좋게 설계된 음모론이다. 하지만 전혀 몰랐던 가짜 뉴스를 처음 접한 후 소셜미디어가 끊임없이 권하는 콘텐츠를 보고 읽다가 다른 사람이 되기까지 열네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 소셜미디어를 단순히 피하기 힘든 일상의 소음 정도로 생각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쾌하고 놀라운 깨달음(rude awakening)’이었다.
저자 찰스 아서가 이 책의 제목을 '소셜온난화(Social Warming)'로 정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소셜미디어가 만들어낸 문제들이 지구온난화(혹은 기후 위기)와 더불어 21세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이슈라는 점에서 이 둘을 결합한 건 영리한 명명(命名)이다. 하지만 ‘소셜온난화’라는 표현에는 저자의 재치 있는 말솜씨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 2021년 12월 말 미국의 고산지대로 유명한 콜로라도주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산불을 경험했다. 단순한 아웃라이어(outlier) 현상을 두고 기후 위기와 연결시키는 걸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신중한 기후학자들도 콜로라도주의 지난 산불은 기후 위기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2021년 봄에 예년과 다르게 유난히 많이 내린 눈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풀과 잡목이 자랐고, 그것이 여름에 극심한 가뭄으로 바짝 말라서 산불의 ‘연료’가 되었는데 이게 12월에 초대형 산불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극심한 이상기후를 겪고 있는 미국에서는 지구온난화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목소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목격하면서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의 산불이 지구온난화의 피할 수 없는 증거라면, 평범했던 30대 여성 보일랜드를 단 열네 시간 만에 과격분자로 바꿔놓은 일은 소셜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두 개의 온난화
소셜온난화는 지구온난화와 눈에 띄는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첫째, 두 개의 온난화 모두 단순한 공해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대기 오염을 겪어왔다. 한국과 중국이 미세먼지로 겨울마다 큰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는 서구 선진국들이 전부 겪었던 문제다. 런던은 1952년에 ‘그레이트 스모그(Great Smog)’라고 이름 붙은 대형 스모그 현상이 닷새간 이어져 무려 1만 명이 사망하는 환경 참사를 겪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1970년대 발생한 극심한 대기오염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법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이 두 지역 모두 대기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눈에 보이는 그날의 대기 상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가 오랜 세월 쌓여 만들어내는, 되돌리기 힘든 재난이다. 소셜미디어가 불러일으키는 피해도 이와 비슷해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서비스는 당장 사용자 개인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는 것 같지 않다. 물론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해온 전문가들은 있었지만, 대중이 문제를 체감하게 된 건 필리핀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영국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가 확정된 2016년이었다. 이 세 개의 결과 모두 그 이면에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밝혀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혀 다른 지역에서 세 개의 사건이 한 해에 일어났다는 사실도 기후변화와 닮았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건 사람의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일시에 전 지구적으로 대형산불과 태풍, 홍수가 발생하는 것처럼, 소셜온난화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2009년에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국가라면 세계 인구 6위의 나라일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 후로 페이스북 가입자는 열일곱 배로 성장했고 2021년 기준으로 페이스북 사용자는 세계 인구의 약 36퍼센트에 달한다. 따라서 페이스북 알고리듬의 문제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난다면 이를 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게다가 (본문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런 문제는 페이스북 사용자 비율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도 발생한다.
정작 온난화에 덜 기여한 가난한 나라들이 더 큰피해를 입고있다는 점에서도 소셜온난화는 지구온난화와 닮았다. 지구의 평균기온을 현재 수준으로 올려놓은 건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온실가스를 펑펑 쏟아낸 선진국들이지만, 이 나라들은 그렇게 발전한 결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필리핀이나 케냐, 스리랑카 같은 나라들은 선진국들이 만들어놓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에 선진국보다 더 크게 노출되어 있다. 소셜온난화도 다르지 않아서 본문에서 예로 드는 미얀마와 필리핀 같은 나라들은 테크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는데도 미국의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만들어낸 ‘증폭의 알고리듬’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두 개의 온난화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 따로 있는’ 불공평한 재난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진국이 안전지대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산불에 시달리는 미국 서부와 허리케인이나 홍수에 시달리는 동남부 지역에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재산 피해를 피하기 힘든 상황이라 보험회사들도 이들 지역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후진국보다 형편이 나을 수는 있겠지만 치러야 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훨씬 더 크다.
소셜온난화로 인한 사회적 재난도 다르지 않아서 지난 4~5년 동안 전 세계는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불리던 서구 국가들, 특히 소셜미디어의 발생지인 미국에서 국론 분열로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위협받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당장 미얀마처럼 인종 갈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되풀이되는 라듐 걸스의 악몽
두 개의 온난화가 특별한 잘못의 결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류는 생존에 불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명을 해왔다.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나 질소비료처럼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발명품도 나왔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핵무기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발명품은 페니실린과 핵폭탄처럼 그 유익 혹은 해악을 초기에 분명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자동차는 교통사고라는 비극을 낳고 궁극적으로 지구온난화를 만들어낸 주범 중 하나가 되었지만, 지난 100년의 인류 역사에서 자동차가 없었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이는 자동차 같은 복잡한 발명품이 아니라 인류 최초의 발견 중 하나인 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유용한 것을 만들어낸 후에 만들 때는 미처 몰랐던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 인류 성장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발명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라듐이다. 퀴리 부부가 발견한 원소인 라듐은 방사성물질의 대명사였는데, 퀴리 부부가 찾아낸 건 라듐의 유용성이었지 잠재적 피해가 아니었다. 퀴리 부부는 보호 장구도 없이 라듐을 취급하면서 열과 방사선에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라돈가스를 들이마셨다. 마리 퀴리는 50대에 이미 심각한 방사능 피폭으로 각종 질병을 얻어 10년 넘게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라듐의 효용은 위험보다 더 빨리 알려졌고 1910년대 미국에서는 시계판에 라듐을 발라 야광 효과를 내는 공장이 생겼다. 이 공장에 취직한 여성들은 라듐을 다루면서 피부에 방사능 피폭을 당했을 뿐 아니라 라듐을 붓으로 시계판에 바르는 과정에서 붓끝을 뾰족하게 모으기 위해 입술과 혓바닥을 사용하면서 치사량에 이르는 라듐이 몸에 들어가게 되었다. 훗날 ‘라듐 걸스(Radium Girls)’라고 불리게 된 이 여성들은 심각한 질병을 얻어 끝내 사망했지만, 회사가 그들의 피해를 인정하기까지 길고 긴 법정 싸움이 이어졌다.
물론 그 후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엄격한 기준이 생긴 덕분에 우리는 ‘혹시 내가 방사성물질을 손목에 차고 다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없이 살고 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라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발명품과 관련해서는 아직 그 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 라듐에 비유하면 이제 막 피해자, 즉 라듐 걸스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고, 무책임한 공정관리로 그들에게 피해를 입힌 공장, 즉 페이스북은 “우리는 잘못이 없다”라며 버티고 있는 단계에 해당한다. 당시 문제의 라듐 시계 공장은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버텼는데, 이는 페이스북이 자신들의 알고리듬이 사용자와 사회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연구 자료를 숨기고 있다가 내부 고발자에 의해 드러난 것과 너무나 닮았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 새로운 위기도 궁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은 사고를 감수해야 한다”라는 저커버그식의 자세로는 안 된다. 라이트형제는 자신들이 만든 비행기를 직접 타고 실험했지만,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이윤만 챙기고 그들의 ‘실험’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회와 사용자들이 대신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온난화’는 되돌릴수없는(irreversible) 피해를 만들어내는 재난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구는 일정 온도를 넘어서면 과거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과학자들이 누누이 강조하고 있고,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와 구성원 사이의 신뢰 역시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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