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 Part 2
• 댓글 1개 보기미국 시각으로 어제저녁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 회견에서 했던 몇 번의 말실수를 보던 많은 미국인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제 더 늦기 전에 손절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말실수는 누구나 한다. 특히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 그리고 오바마의 부통령 시절에도 말실수로 유명했다. 그런 실수를 하면서도 부통령과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게다가 트럼프가 애플의 CEO 팀 쿡(Tim Cook)을 회의 중에 "팀 애플"이라고 소개한 일, 공화당 경선에서 자기와 대결한 니키 헤일리(Nikki Haley)를 하원의장이었던 민주당 중진 낸시 펠로시(Nancy Pelosi)로 착각한 일,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 오바마라고 생각한 연설을 생각하면, 바이든의 작은 실수가 이토록 주목받는 상황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의 말처럼,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이번만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던" 실수였다.
이유는 지난달 말에 열렸던 트럼프와의 대선 토론회 때문이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토론회 이후로 민주당 안팎에서 더 늦기 전에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 바이든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정해진 만큼, 그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훨씬 더 높았다. 누구보다 낸시 펠로시와 버락 오바마 같은 당의 중진들이 바이든 지지를 외쳤기 때문에 일단 급한 불은 끄는 듯 보였다.
그런데 교체 주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특히 뉴욕타임즈는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언론사 중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외쳤다. 사설(논설위원회의 칼럼)은 물론,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의 기고까지 받아 민주당을 압박했다.
대선 토론회 직후에 오바마가 한 말처럼, "토론회를 한 번 망쳤다고 해서" 선거에 지는 건 아니다.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누구나 넘어질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아무런 일 아니라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뛰면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한 번의 실수'로 봐주고 넘어간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얘기가 다르다.
바이든의 승리 가능성을 믿는, 혹은 믿고 싶어 하는 지지자들은 토론회 후에 그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기로 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의심의 유익(benefit of the doubt, 확신이 없을 때 일단 믿어주는 일)'이었다. 첫 번째 기회는 토론회 이후에 있었던 연설이었다. 바이든은 지지자들이 모인 집회에서 "내가 젊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면서 자신을 낮추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뛴다고 역설했고, 언론과 청중의 반응은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후보 교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바이든은 프롬프터로 쏘아준 원고를 보면서 연설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트럼프와의 토론에서 바이든이 보여준 모습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바이든이 그 정도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일까? 백악관과 선거운동본부 측은 그가 시차 적응 중이었고, 감기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이든의 비서와 측근들이 그의 실수를 지나치게 완벽하게 감춰왔다고 비판한다. 미리 써놓은 원고를 읽는 연설 외에 바이든이 직접 대중과 언론에 나서는 일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이든이 기자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기자 회견을 마지막으로 가진 게 1년 전이다. 따라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써준 원고를 읽는 게 아닌, 즉흥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봐야 그의 대선 후보 자격을 믿을 수 있겠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기회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치고 미국 시간으로 어제저녁에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 회견이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이 실수 없이 기자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후보 교체론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해도—최소한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었다. 하지만 바이든은 본격적인 기자 회견을 시작하기도 전에 젤렌스키 대통령을 "푸틴 대통령"이라고 소개했고,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부통령"이라고 부르는 등의 실수를 했다.
후보 교체를 향한 움직임
바이든을 위해 변명을 하자면,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고치지 못한다. 바이든은 젤렌스키를 "푸틴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가 2초 만에 실수를 깨닫고 "젤렌스키 대통령"이라고 정정했다. 그렇게 이름을 잘못 불렀다가 수정하는 것과 트럼프처럼 진지하게 "손소독제를 몸에 주사하면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으니 그 방법을 한번 생각해 보라"라고 말하는 것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는 그렇게 친절한 게임이 아니고, 선거는 더더욱 무서운 경쟁이다. 어제의 기자 회견 이후로 나온 기사들을 보면 오로지 바이든의 말실수에만 집중한다. 바이든에 대해 비판적인 한 유명 팟캐스트(오바마 백악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운영하는 Pod Save America)에서 대수롭지 않은 말실수보다 실질적 내용의 부족을 문제 삼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기사가 바이든의 말실수를 이야기하며 과연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국의 대선 정국은 바이든의 고령이 주요 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선거일까지 언론과 유권자는 바이든의 말실수에만 집중할 게 분명하다. 보수 진영에서는 트럼프가 집권하면 추진해야 할 어젠다 모음집인 'Project 2025'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미국에서 민주주의 정부를 끝내고 기독교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 국가로 만들려고 준비 중인데, 이런 메시지(signal)를 바이든의 고령이라는 소음(noise)이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인 이상 이런 상황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심각한 위협은 미국의 선거 방식이 가진 특성 때문에 11월 한 번의 선거로 백악관은 물론, 상하원이 모두 트럼프의 공화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일'을 따로 정하지 않고, 매년 돌아오는 선거일(11월 첫째 화요일)에 상하원을 비롯한 각종 선거와 함께 투표하는 식이다. 따라서 특정 정당의 지지자가 자기 당 후보에 실망해서 투표하러 가지 않는다면 그 유권자는 연방 상하원, 주와 각종 지자체 선거를 한꺼번에 포기하게 된다. 바이든이라는 티켓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상하원도 모두 뺏길 수 있다는 경고가 그래서 나온다.
이런 위기의식이 민주당 내에 확산되면서 당 중진의 생각이 변화하는 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CNN은 어제 발행한 기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펠로시 전 하원의장과 비공개로 대화하면서 바이든의 당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물론 이런 보도의 특성상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린 소식통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CNN의 보도에 귀를 기울일 만큼 당 중진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펠로시와 인터뷰한 젠 사키(Jen Psaki) 전 백악관 대변인은 정치 9단인 펠로시가 "현재로서는(for now)"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말한 부분에 주목한다. 펠로시가 바이든을 100% 지지하고, 그가 반드시 트럼프를 이길 거라고 실제로 믿는다면 그런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을 리 없다는 거다. 공개석상에서 해야 할 말과 (오해를 부를 가능성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칼같이 구분하는 펠로시가 그렇게 말했다면, 후보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NBC 뉴스는 바이든 진영에서 일하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를 상대로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렸고, 뉴욕타임즈는 바이든 진영에서 처음으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와 대결할 경우 승리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처음으로—자체적인 여론 조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진영에서도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모든 후보는 사퇴하는 순간까지 "절대 사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상대가 트럼프인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후보 교체와 그 방법론이 확정되기 전에는 바이든의 사퇴는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보낼 것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바이든만 내릴 수 있다. 바이든은 적법한 절차대로 2024년 대선 후보의 자격을 획득했기 때문에 그가 거부하는 한 민주당은 후보를 교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자발적으로 후보를 사퇴할까?
바이든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개인의 영달과 이익보다 대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만약 자기가 트럼프를 이길 방법이 전혀 없다면, 그리고 자기가 아닌 다른 민주당 후보—가령 카말라 해리스—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음이 밝혀지면 그는 후보를 내놓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해서 다른 후보가 트럼프를 이기면 바이든은 자기를 희생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영웅이 되는 것이고, 지더라도 비난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피워서 출마했다가 패하면? 아집에 빠져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게 내버려 둔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바이든으로서는 복잡한 계산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바이든은 결국 후보직을 양보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 대선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명, 확정하는 행사인 전당대회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바이든이 후보 자리를 다른 정치인에게 넘기고, 극적인 효과를 발휘해서 기세를 몰기 위해서는 당이 단합해서 치밀한 준비를, 그것도 단기간 내에 해내야 한다. 그리고 후보 교체에 성공한다고 해도 미국 민주주의를 넘어 전 지구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번 미국 대선은 끝까지 피를 말리는 선거가 될 거다. 🦦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