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순자산 천억 원대 자산가"가 쓴 책이 화제가 되면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는 사고 방식이 다르다는 얘기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간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자기가 사용한 방법,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얘기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행위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수성가 내러티브를 제일 먼저 퍼뜨린, 말하자면 성공학의 원조가 있다.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건국의 아버지인 프랭클린의 공학'에 대해 비판한 역사학자가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질 르포어(Jill Lepore). 우리나라에는 '원더우먼 허스토리'로도 잘 알려진 르포어는 미국의 역사에서 감춰졌던 내용을 살펴서 현대 세계를 다시 보게 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이 글은 뉴욕 퍼블릭 라디오에서 제작하는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On the Media에서 2016년에 시리즈로 제작한 'Busted: America's Poverty Myths (미국의 가난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의 일부를 번역한 것으로, 르포어가 출연해서 자신이 쓴 책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라디오 인터뷰 형식의 진행이라 번역하면서 읽기 쉽게 포맷을 바꾸고, 한국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설명을 추가했다.


영어에 "(from) rags to riches"라는 표현이 있다. 영한사전에는 "가난뱅이에서 부자로"라고 번역되지만, 단어를 보면 넝마(rags)에서 거부(巨富)가 되었다는 뜻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한 번 옷을 장만하면 헤어질 때까지 입고, 또 꿰매 입던 시절에 넝마, 즉 낡고 해어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가지는 가난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 표현에서 '넝마'는 가난을 표현하는 환유(換喩)에 해당한다.

그런데 미국 역사에는 글자 그대로 넝마를 돈으로 바꾼 사람이 등장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돈을 많이 벌었다. 액면가가 가장 큰 액수의 달러 화폐인 100달러 속 얼굴이 그의 초상이다.

그의 아버지 조사이아(Josiah) 프랭클린은 영국에서 태어나 직물을 염색하는 일을 하다가 1682년에 대서양을 건너 보스턴으로 이주했고, 그 후 두 명의 아내에게서 아들 10명, 딸 7명을 낳았다. 보스턴으로 와서는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일을 했지만, 몹시 가난했다. 벤자민은 조사이아의 막내아들이었다.

벤자민 밑으로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벤자민은 그중에서 특히 집안의 막내 제인(Jane)과 어린 시절부터 가까웠다고 한다. 제인은 벤자민보다 여섯 살 아래였지만, 둘은 아버지를 도와 양초, 비누 만드는 일을 함께 도왔고, 벤자민은 제인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들을 "베니와 제니(Benny and Jenny)"라고 불렀을 만큼 둘은 함께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벤자민은 형 밑에서 인쇄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16, 17세가 될 무렵 집에서 달아나 남쪽에 있는 필라델피아로 간 일은 유명하다. 새로 정착한 도시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인쇄소를 직접 운영하다가 사업이 잘되면서 종이를 생산하는 공장까지 운영했다. 이 사업 역시 크게 성공해서 18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에서 사용되는 종이의 대부분이 그가 세우거나 인수한 공장들에서 나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종이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원료가 못쓰게 된 천 조각, 즉 넝마였고, 그는 넝마를 계속 사들여야 했다. 그래서 그가 운영하던 신문(펜실베이니아가제트, The Pennsylvania Gazette)에 "넝마를 가져오시면 현금을 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내곤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넝마를 가져오면 공장으로 보내 분해하고 종이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발명가였던 그는 종이 화폐를 만드는 특허까지 가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넝마로 큰돈을(rags to riches)"을 벌어들인 셈이다. 이 영어 표현의 기원이 사실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필라델피아에 있던 자신의 인쇄소에서 일하는 프랭클린의 모습 (이미지 출처: Library of Congress)

벤자민의 동생 제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렇게 무일푼에서 출발해 열심히 일한 결과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신의 유명한 자서전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지금 생각하면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이 가진 흔한 내러티브에 불과한 것 같지만, 역사학자 질 르포어(Jill Lepore)에 따르면 프랭클린의 자수성가 스토리는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접하는 건 왕, 군주와 같은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은 가난하게 출발해서 부자가 된 자신의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그래서 자서전을 쓴 거다.

물론 프랭클린의 업적을 무시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미국의 헌법을 기초했을 뿐 아니라, 피뢰침, 다초점 렌즈는 물론이고 의학용 도구, 악기를 발명한 사람이다. 일반인에게 책을 대여해 주는 공공 도서관 시스템과 세금으로 지원받아 운영되는 병원도 그가 생각해 낸 것이다. 그는 돈이 없는 사람들도 책을 읽고, 병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준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는 돈 없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가난한 상태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난을 벗어나도록 이끌거나 가난 밖으로 내모는 것이다(The best way of doing good to the poor is not making them easy in poverty but leading or driving them out of it)"이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프랑스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미지 출처: Library Company)

그런데 르포어는 프랭클린이 자서전에서 빼버린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들과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큰 성공이 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가능했다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을 언급하지 않았고, 훗날 등장하게 되는 미국인들의 자서전이 따라 하게 되는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그렇게 프랭클린이 언급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자기와 그렇게 친했던 막내동생, 제인이다. 제인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기록에 따르면 15살에 자기보다 7년 연상의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당시 여성이 결혼할 수 있는 합법적인 나이는 16세였고, 자신의 언니, 오빠들은 대부분 24살에 결혼했는데 부모는 제인만 무려 10년 일찍 결혼을 시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결혼한 제인은 12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남편은 정신병 경력이 있었고, 이게 유전적인 질환이어서 제인의 아이 중 두 명이 정신병을 앓았다고 한다. 남편이 제대로 일을 못 해서 큰 빚을 졌고,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채무자 감옥(debtors' prison, 19세기 중반까지 서구에서는 이런 감옥을 운영했다)에서 보냈다. 왜 이런 사람과 결혼했느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지만, 르포어는 제인이 혼전 임신을 했고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부모가 이를 개의치 않을 남자와 결혼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제인은 남의 집 빨래 등의 허드렛일, 어릴 때부터 하던 비누 만드는 일을 하며 간신히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자라면서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오빠가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고, 프랑스 사교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셀레브리티였는데 그런 제인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힘겹게 생계를 이어갔다는 사실은 놀랍다. 벤자민은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었지만, 제인은 자신이 태어난 계층을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벤자민이 동생 제인과 연을 끊고 산 것도 아니다. 제인은 오빠와 편지를 주고받았고, 여전히 오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 편지에서 제인은 인생에서 너무나 커서 넘기 힘든 장애물도 있으며, 단지 출생의 문제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자신의 이야기였다. 기록을 보면 제인은 똑똑한 여성이었지만 많고 많은 자녀, 그리고 나중에는 손주들을 키우기 위해 땔감을 마련하는 데 인생을 바쳐야 했다.

그뿐 아니다. 제인은 오빠 벤자민이 내팽개친 부모님도 돌봐야 했다. 훗날 벤자민이 보스턴으로 돌아와서 부모님을 위한 기념비까지 세운 건 우스운 일이다. 르포어는 그가 결국 자기 홍보를 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고향인 보스턴에 돌아와 부모님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Boston Duck Tours)

르포어는 역사적 기록이 비대칭적(asymmetrical)임을 지적한다. 유명하고 돈을 번 사람들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따라서 그렇게 남겨진 기록을 읽을 때는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과 들려주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이 책에 빠진 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수성가에 대한 찬양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렇게 미국 문화, 미국의 '자수성가 신화'의 아이콘이 되었고,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평민 출신의 대통령이라 자부하던 사람으로, 트럼프가 이미지를 빌어 사용했다)부터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까지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 노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는지를 강조하는 건 미국 정치인들의 기본적인 내러티브가 되었다. 심지어 갑부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서 사업비를 빌려 돈을 번 트럼프까지 같은 주장을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렇게 프랭클린이 시작한 자수성가의 신화는 80년 후 아동문학가 호레이쇼 앨저(Horation Alger)가 쓴 동화 시리즈 'Ragged Dick'을 통해 완전히 굳어진다. 이 책은 '가난뱅이에서 출발해 부자가 되는(rags to riches)' 내러티브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에는 '골든 보이 딕 헌터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한국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허레이쇼 앨저의 '골든 보이 딕 헌터의 모험(Ragged Dick)'은 '하면 된다’는 자수성가, 즉 ‘아메리칸 드림’을 심어줘 경제 공황기인 1870~8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까지도 ‘허레이쇼 앨저’라는 이름으로 미국적인 성공과 결부되어 인용되곤 한다. 가난한 구두닦이 소년 딕이 정직과 굳센 신념으로 역경을 딛고 끝내 성공한다는 스토리로, 자라나는 청소년과 기업을 운영하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올바른 경제관과 노동관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허레이쇼 앨저의 문학세계에서는 그것을 얻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행운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골든 보이 딕 헌터의 모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딕은 세상 물정에 밝고 자부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고결한 천성을 지닌 진정한 ‘진흙 속에 묻힌 진주’다. 앨저는 주인공 딕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정직, 성실, 근검절약 등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가난한 구두닦이 소년 딕이 성공하게 된 건 다른 구두닦이 아이들과는 다른 정직함과 성실함 때문이었다'라는 얘기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직과 성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르포어의 말처럼 그런 성공한 사람들의 자수성가 내러티브가가 빼놓고 있는 게 있을 수 있다. 그게 뭘까?

르포어는 그 힌트를 이 소설이 나왔던 시절 미국에서 유행하던 보드게임에서 찾는다. 이런 게임에서 참가자가 점수를 얻는 방법은 미국의 대중문화가 경제적인 기회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비슷한 게임들이 많지만, 대표적인 '오피스 보이(Office Boy)'를 예로 들면, 이 게임은 가장 바깥에서 시작해서 보드 한 가운데에 있는 기업주(오너)의 자리로 진입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말을 옮기다가 '초과근무(Work Extra Hours)' 같은 걸 만나면 다른 칸으로 점프할 수 있는 반면, '음주' 같은 "나쁜 일(vice)"을 하면 말을 뒤로 되돌려야 한다.

19세기 말에는 미국에 '오피스 보이' 외에도 '세일러 보이,' '메신저 보이'처럼 비슷한 게임들이 흔했고, 대부분 이렇게 성실함 등의 자질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쨌든 말이 좋은 칸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앨저의 소설 '골든 보이 딕 헌터의 모험'에서도 성공하는 등장인물들은 항상 운 좋은 시점에 있어야 할 장소에 있는 바람에 기회를 잡는다. 그들의 운명은 마음씨 좋은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운 좋은 시점이 찾아오지 않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장소로 떠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다음 글에서 소개할 나타샤가 그런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자수 성가 ② 나타샤'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