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 보이어(Natasha Boyer)는 미국 중서부의 오하이오주 빈튼 카운티(Vinton County)에 산다. 오하이오주는 미국의 공업지대에서 블루칼라 노동이 몰락하면서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이고, 빈튼 카운티는 그중에서도 빈곤율이 높은 곳이다. 오하이오 주민 중 15.8%가 빈곤선 아래에 있다면 빈튼 카운티 주민 중 빈곤층은 25%에 육박하고, 그나마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큰 도시에서 거리가 멀고, 오하이오주의 주요 간선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빈튼 카운티에는 신호등이 두 개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 수천 명이 사는 고립된 곳으로, 인구가 적으니, 비즈니스도 없고, 일자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떠난다.

나타샤가 자란 빈튼 카운티의 햄든 풍경 (이미지 출처: Google Maps)

더 심각한 건 이 카운티에는 식료품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카운티를 종종–아마도 넓이를 기준으로– '군'으로 번역하지만, 빈튼 카운티는 인구 수천에 불과하니 읍보다 작고, 면 정도에 해당하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저소득층 식료품 지원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푸드 스탬프(food stamp, 식료품 구매 카드) 지원도 줄어들었고, 그 결과로 하나 남아있던 식료품점이 장사를 포기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먹고사는 주민이 그렇게 많다는 얘기다.

나타샤는 빈튼 카운티 중에서도 인구 800명이 되는 햄든(Hamden)이라는 마을에 산다. 이런 곳이 존재할까 싶을 만큼 아무것도 없는 동네다. 나타샤는 고등학교 졸업장과 자기가 낳은 아기 하나를 데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햄든을 떠나 소설 주인공 딕 헌터처럼 큰 도시에 가서 성공하고 싶었다. 나타샤가 생각한 큰 도시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이 아니라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교외 지역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그곳에서 도미노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부점장(assistant manager) 자리를 얻었다. 가게 문을 열고 닫는 것부터 피자를 굽고, 필요하면 배달까지 모든 일을 하는 자리였다.

어린이집에 맡길 돈이 없어 아이는 같은 카운티에 사는 어머니 집에 맡겼다.

노란 점이 나타샤가 자란 햄든, 빨간 점이 그가 일하던 피자집이 있는 곳 (이미지 출처: Cleveland.com)

어느 날 아침, 나타샤가 일하러 가면서 어머니에게 맡긴 아이와 전화로 이야기하며 집을 나서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편지 하나가 떨어졌다. 열어보니 밀린 월세로 인한 퇴거 통보(eviction notice)였다. 3일 안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콜럼버스에서 일하게 된 지 두 달만에 일어난 일이다. 몇 주 전 나타샤는 양쪽 폐에 각각 폐렴을 앓았고, 기관지염도 앓았다. 그 바람에 열흘 정도 일을 하지 못했다.

도미노피자에는 병가 제도가 없다. 지점장이 아니면 20년을 일해도 병가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일주일 넘게 일을 하지 못한 나타샤는 그달 말까지는 월세를 낼 수 없었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타샤는 집주인에게 사정을 얘기해 두었고, 괜찮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일요일 아침에 일하러 가는 길에 통보를 받은 거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를 키워주고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그러면 다시 내려와야지 어쩌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작심하고 콜럼버스까지 왔는데 한 달 반도 채 되지 못해 내려가야 한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타샤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고, 스스로가 패배자로 느껴졌다. 도미노 피자에서 일하면서 드디어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면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다. 나타샤의 엄마는 피자집에서 일하게 된 나타샤에게 그래봤자 두 달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엄마가 나를 제대로 알았던 걸까?'

(이미지 출처: In the Words of Women)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호레이쇼 앨저의 소설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나타샤에게 '무작위한 선행(random act of kindness, 상대를 가리지 않고 베푸는 선행)'을 베푼 것이다. 앨저의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타샤가 뭔가를 잘 했기 때문에 찾아온 행운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작위로 떨어진 것이다. 퇴거 통보를 받고 출근해서 가게 문을 연 나타샤는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일을 시작했다. 뒤이어 배달원 폴라와 점장도 출근했다.

그렇게 일하던 중, 점장이 폴라에게 근처 교회에서 5달러 99센트짜리 라지 페페로니 피자 한 판을 주문했으니 배달을 다녀오라고 폴라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 주문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 교회에 가면 무대에 올라가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거다. 뭘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폴라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고 싶지 않다며 가지 않겠다고 했고, 점장은 나타샤에게 그럼 네가 가라고 했다. 나타샤는 그러겠다고 하고 가게를 나섰다.

교회는 차로 5분 거리였다. 나타샤가 교회에 도착하자 한 사람이 나타샤를 교회 무대 위로 안내했다. 그 교회의 목사가 무대 위에서 나타샤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는 오늘 이 교회에서는 선행, 특히 '무작위한 선행'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받아본 가장 큰 팁이 얼마죠? 10달러인가요? 자, 여기 15달러를 드리겠습니다. 피자가 5달러 99센트이니... 약 9달러가 팁이 되겠네요."

돈을 받은 나타샤는 고맙다고 했고,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목사는 선물이 있으니 잠깐 기다리라면서 큰 지폐 다발을 나타샤에게 내밀었다. 1,000달러(약 134만 원)였다. 목사는 그 돈이 세 번의 예배를 진행하면서 신도들이 모은 거라며 나타샤에게 건네주었다.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나타샤는 너무 놀라 입을 막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타샤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한다.

나타샤가 배달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가  그 얘기를 하자 폴라는 "그러면 다시 (빈튼 카운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거지?"라고 물었고, 나타샤는 그렇다고 했다. 교회에서 받은 돈으로 월세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타샤는 그 일이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 교회에서 벌어진 일을 담은 영상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나타샤의 사연은 NBC와 폭스뉴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매체들에서 뉴스로 다루기도 했다.

그 후로 나타샤는 9개월을 콜럼버스에서 더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룸메이트를 들인 게 화근이 되었다. 나타샤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 룸메이트가 일으킨 문제 때문에 집에서 쫓겨 난 거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자기는 문제가 있다고 남을 쫓아내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세 든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빈튼 카운티로 돌아왔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룸메이트를 잘못 고르지 않았다면? 나타샤는 교회에서 받은 1,000달러는 자신의 인생을 바꿨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콜럼버스에서 일하고 있을 거란 얘기. 설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에게 큰돈을 준 교회에 대해서는 지금도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 그 교회에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그날의 일은 그 교회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교훈이었고, 교회와 목사에게는 좋은 홍보 기회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선행은 결국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국가가 아닌) 선한 의도를 가진 개인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퍼뜨리게 되지 않을까? 나타샤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3개월 정도 밀린 전기세 납부를 연장하려고 했는데–정작 자신이 그 집에 산 건 한 달 반 정도였기 때문에 이전 세입자가 밀린 전기세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여기저기 방법을 알아봤지만 결국 정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한 지 한 달 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일해서 밀린 돈을 나중에 갚을 수 있는 증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 이미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일해서 갚기도 힘들었다.

그러니 열심히 기도해서 돈이 생기지 않으면 자신이 사는 집을 잃게 될 것이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쫓겨난 경우 다음에 살 집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신용 점수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에서 준 돈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교회에서는 제게 돈을 줘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저를 보고 '저 사람은 팔에 타투가 있잖아. 그럼 안돼'라고 거절할 수도 있었어요. 게다가 제가 그때 그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죠. 저는 그 사람들이 교회를 홍보하기 위해 그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게 진정으로 '무작위한 선행'이었다고 믿어요."

이제 스물한 살인 나타샤는 여전히 점장이 되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게 자신의 최종 목표다. 도미노 피자가 아니라 다른 기업이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 경영을 공부하고 자신만의 기업을 운영하고 싶단다.

지금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나타샤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자기는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있는 위치에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게 누구의 책임이냐고 묻자, "저는 가난이 내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제가 당연히 부자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기가 일한 만큼 얻는 거죠."

도미노 피자에서 일하던 시절의 나타샤 (이미지 출처: The Columbus Dispatch)

그럼 삶은 공정한 걸까? "항상 그렇지는 않아요. 그건 분명합니다. 고향(빈튼 카운티)에 내려가면 제가 코에 피어싱을 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줄 수 없다고 해요. 코에서 그걸 빼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는 거죠. 팔에 타투가 있어서 안 된다고도 해요. 저는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믿어요. 저는 그런 것들은 '공정'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타투, 피어싱, 머리 염색 때문에 차별받는 건 공정하지 않아요." 그럼 인종은? "물론이죠. 제 남자친구는 흑인인데, 제 고향에서는 거의 유일한 흑인이에요. 길거리를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손가락질도 받아요."

"제게는 아들이 있어요. 저는 그 아이는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 이 순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써야 하는 이유죠. 저는 가난하다고 느끼지만, 누군가가 저를 도와주면–그게 반드시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라도–제 편에 그 한 사람이 있는 거예요. 저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고 그걸 지키면 제게는 이 상황을 버틸 힘이 생깁니다.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을지 몰라도 뒤를 돌아보는 대신 앞을 보게 되죠. 저는 자라면서 좋지 않은 일을 많이 겪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 그런 안 좋은 일들을 잊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다가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어요. 남자친구는 하룻밤도 저와 떨어져 잔 적이 없어요. 항상 제 곁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을 자기 아이로 받아줬어요. 저는 이 남자가 저를 떠나지 않을 거라 믿고, 제 아이를 떠나지 않을 거라 믿어요. 저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이거 하나만으로도 제 아이는 저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앞만 바라보면 됩니다. 텐트에 살든, 저택에 살든 말이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삶은 나아지게 되어 있어요." 나타샤에게 선행을 베푼 그 교회가 널리 알려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많은 교회가 비슷한 행사를 통해 '무작위의 선행'을 하기 시작했다.

나타샤가 그렇게 원하던 직장을 잃은 것은 친구였던 룸메이트를 내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친구를 돕는 것은 호레이쇼 앨저가 책에서 이야기했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지만, 나타샤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편 '자수성가 ③ 스튜어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