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단지 몇 달 전에 자신이 한 일을 잊었을까? 히스는 기존의 설명뿐 아니라, 아마존과 주문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의심하면서 취재한 결과, 그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참고로 이 기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싶으면 이 팟캐스트를 추천한다. 기사가 나온 직후에 만들어진 이 팟캐스트에는 히스의 사례를 직접 확인한 애틀랜틱의 팩트체커도 등장한다. 이 팩트체커는 온라인에 공개된 사례들을 찾아 당사자들과 통화하면서 온라인에서 했던 과거의 주문 기록을 살펴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모두 녹음했는데, 이렇게 연락받은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씨앗을 주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멋쩍어 했다. 그렇게 넘쳐나던 중국 씨앗 배달 사례 중에서 브러싱 사기는 찾을 수 없었다.

1. 미국인들의 씨앗 주문은 대부분 2020년 봄에 일어났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봄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씨앗을 많이 구입하는 계절이다. 게다가 2020년 봄은 팬데믹이 시작된 시점이다. 사람들이 출근도, 외출도 하지 못하고 집에 갇혀 지내게 되자 정원 가꾸기 붐이 일어났다.

정원용 씨앗과 관련 제품이 기록적으로 판매된 걸로 보아 씨앗을 온라인으로 주문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정원 가꾸기 대열에 대거 동참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이니 주문을 해놓고 쉽게 잊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인은 늘상 온라인 쇼핑을 하고, 그렇다보니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이 씨앗이라는 게 작은 한 봉지에 우리 돈으로 2천 원 정도밖에 안 된다. 잊기 쉬운 사소한 액수다.

2. 그 시점에 락다운은 중국에서 더욱 엄격하게 지켜졌다. 미국인들이 집에 갇혀서 클릭한 주문을 받아서 포장, 배송해야 할 중국인들 역시 집에 갇혀지내면서 배송이 올스톱된 상황이었다. 과거 내 경험에 아마존에서 주문해서 제날짜에 도착하지 않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2020년 봄은 달랐다. 발송이 불가능하거나 늦어지니 생필품이 아닌 모든 상품의 배달이 무기한으로 지연되었고, 사람들은 그걸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3. 씨앗이 일제히 여름에 배달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중국 정부가 락다운을 풀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매장들이 밀린 주문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해외 발송이 이뤄진 거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왜 갑자기 씨앗들이 미친 듯이 중국에서 배달되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물론 작년 여름에 중국에서 씨앗만 많이 배달된 건 아니다. 하지만 씨앗만 포장지에 다른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 거다.

4. 주문자는 발송자/발송지를 모른다. 아마존 웹사이트는 구매과정에서 절차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이 구매 의욕을 잃고 포기한다는 것을 알고 '마찰(friction)'을 최소화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생각한다. (아마존의 유명한 '원 클릭' 구매 버튼도 그래서 생겼다). 그렇다 보니 굳이 열심히 찾지 않는 한 자신이 주문한 제품이 어디에서 배달되는지 알지 못한다. 미국인들이 가진 부정적인 인식 탓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중국의 온라인 판매자들은 중국에서 발송된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긴다. 따라서 씨앗을 처음 주문하는 사람들은 중국에서 오는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5. 포장에 잘못 적힌 상품명의 정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인들이 씨앗을 수상하게 여기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포장에 '귀걸이' '팔찌'로 적혀있던 상품 설명이다. 귀걸이를 주문한 적이 없는데 귀걸이가 왔고, 귀걸이라고 생각하고 열어보니 씨앗이 들어있다면 일단 수상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발송하는 상인의 입장은 다르다. 동식물을 다른 나라에 보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려면 검사를 거쳐야 하고 준비해야 할 통관 서류가 많다. 2천 원짜리 제품을 팔기 위해 그런 서류를 일일이 갖추려면 시간과 돈이 더 든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용물을 속이는 거다. 씨앗 포장에 가장 흔하게 적힌 "스터드 귀걸이(stud earrings)"는 거의 정확히 씨앗의 크기일 뿐 아니라, 싸구려 장신구는 중국의 상인들이 온라인으로 파는 전형적인 상품이라 세관에서도 별 의심을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스터드 귀걸이는 정확하게 씨앗의 크기다.

6. 정말로 주문하지 않은 씨앗을 받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가족, 친지, 친구가 선물로 보낸 경우라고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팟캐스트의 진행자도 집안의 친척 중에 아무런 말도 없이 아마존에서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주문해서 보내는 분이 있다고 얘기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그렇게 말 없이 보낸 선물을 받아본 경험을 해본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주문자의 이름도 없고, 발송지가 중국이고, 안에는 중국어와 어색한 영어(broken English)가 적혀있다면 '내가 아는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보냈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면 '왜 수상한 소포가 나한테 온 거지?'라고 생각하게 될까?

다시 말하지만 2020년은 특이한 해였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해였고, 편집증적 망상이 현실이 되기도 했다. 팬데믹은 모든 위험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과 사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장애물 코스였다.

인지적 왜곡과 집단 망각

중국 씨앗의 미스터리는 특이한 해에 일어난 흔치 않은 일이었을 뿐,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궁금증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특정 사건을 집단적으로 망각하는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냐는 것이다.

애초에 이 일은 중국에서 알 수 없는 소포를 배달받은 사람들이 (당연한 얘기지만)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면서 시작되었다. 수상한 일, 그것도 다름 아닌 중국이 개입된 일이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많이 공유되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그걸 봤고, 그중에는 "나도 중국에서 알 수 없는 씨앗을 받았다"며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의 포스트는 또 공유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한 기자들이 보도하면서 소셜미디어를 넘어 전국적인 뉴스가 된 것이다.

히스 기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나 뉴스에서 이 얘기를 읽기 전에 씨앗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모두는 아니라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내가 혹시 씨앗을 주문하지 않았나?' '이게 혹시 내가 봄에 주문했던 씨앗은 아닐까?'하고 한 번쯤 기억을 더듬어봤을 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중국에서 알 수 없는 씨앗이 배달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뉴스를 먼저 들었고, 그 뒤에 씨앗, 그것도 설명이 틀렸거나 불충분한 씨앗을 받았다.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히스 기자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는 분명히 브러싱 사기라는 결론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그게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이미 내려진 결론을 반례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 브러싱이 아니라는 가설을 세워 증명해보고 증명에 실패하면 브러싱 사기가 맞게 된다는 거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그 반례가 증명이 되어버렸고, 브러싱 가설이 깨졌을 뿐이다. 그의 접근법과 취재방법은 자연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과학자의 접근법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볼드체 부분은 내가 강조한 것이다).


"(내가 사용한 세 개의 사례는) 브러싱 사기가 가장 명백해 보였기 때문에 일부러 고른 것이었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몇 개는 분명히 주문하고 잊어버린 경우들이었다.

두 가지 설명(브러싱과 배달 지연)이 모두 맞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몇 개는 브러싱 사기이고, 몇 개는 발송이 지연된 경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다("hugely improbable"). 서로 다른 두 개의 시나리오가 지난 여름에 동시에 현실화되어서 똑같이 이상하게 생긴 중국의 씨앗 소포가 미국의 가정에 도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연구원 한 명과 함께 한 달 내내 씨앗을 받은 사람 중에 '지연된 배송' 시나리오에 구멍을 낼 사례가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브러싱 사기의 흔적을 쫓아 사람들이 주문하지 않은 씨앗을 받았다고 믿는 소포를 최대한 많이 확인했다. 모든 소포의 이야기가 같은 패턴을 따르지는 않았다. 씨앗이 발송된 후 배달되는 과정에서 몇 달이 걸린 경우도 있었고, 주문한 씨앗과 도착한 씨앗이 일치하지 않는 예도 있었다. 드물게는 중국이 아닌,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인접국에서 온 씨앗도 있었다. 어떤 것들은 (아마존이 아닌) 다른 전자 상거래 플랫폼을 통해서 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대부분이 아마존을 통한 거래였다.

모든 케이스가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연락할 사람들 중에는 소포나 배달 기록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한 경우도 있어서 우리가 씨앗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추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씨앗을 받았다고) 확신했던 사람들도 (그중에는 주문 기록을 보여달라는 우리의 요청을 어이없게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에는 뭔가를 찾아내는 일이 거듭거듭 일어났다. 그런 사람 중에는 이 문제를 페이스북에 제일 처음 제기한 수 웨스터데일도 있다. 우리가 연락했을 때만 해도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었지만 결국 자신이 4월에 들꽃 씨앗을 주문했고, 그 배송이 6월까지 지연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결국 우리가 조사한 모든 케이스에서 미스터리 소포와 과거에 주문한 기록 사이의 확신할 만한 연결점을 찾았다.


우리 모두가 이런 사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믿거나 주장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되, 덮어놓고 믿기 전에 다른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내가 굳게 믿고 있던 것들이 무너지기도 하겠지만, 단지 내 믿음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더욱 목소리를 높여 잘못된 생각을 방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이번 주말에는 오터레터에서 그걸 실행에 옮긴 한 육상선수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무료 가입자이시라면 여기에서 유료구독을 신청하셔서 그 이야기도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