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성(間性, intersex)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보게 된 건 2009년의 일이다. 그 해는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해이기도 하다. 다들 한 번 쯤 들어봤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걸출한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의 등장 때문이다. 당시 18세의 세메냐는 남아공의 주니어 육상대회에서 800m, 1,500m 부문에서 우승했을 뿐 아니라, 800m 부문에서는 남아공 여자 신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육상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2위와 무려 2초 이상 차이 나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하지만 세메냐가 세계 육상계를 흔든 건 기록 때문이 아니다. 그와 경쟁한 다른 여자 선수들과 코치들이 수군거리며 불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세메냐가 정말 여자선수 맞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다른 선수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여자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대부분 달릴 때 상체가 많이 흔들린다. 하지만 세메냐는 마치 남자선수들처럼 넓은 어깨와 가슴을 쫙 편 상태로 상체가 거의 고정된 듯 달린다.

2018년 파리 대회에서 세메냐가 달리는 모습을 담은 아래 영상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경쟁 선수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세계 아마추어 육상경기 연맹(IAAF, International Amateur Athletics Federation)이 세메냐를 상대로 성별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IAAF는 세메냐가 자신의 1500m 기록을 25초, 800m 기록을 8초나 단축한 것은 약물 복용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에 검사해야 한다고 했지만, 누구나 그게 성별 검사였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성별을 분명히 밝힌 개인의 신체를 검사해서 성별을 확인하겠다는 건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게이, 레즈비언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온 사람을 두고 "의학적으로 남자다"라고 말하는 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비판을 아는 IAAF는 세메냐의 성별 결과 검사를 발표하지 않고 비밀에 부쳤지만 언론(물론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이 이 결과를 빼내어 세메냐는 간성(intersex)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세상에 알렸다.

간성, 간성인

언론에서 세메냐에 관해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내가 간성인에 관해 알고 있는 건 오래전에 한국에 '사방지'(1988) 같은 영화가 있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그해 11월에 뉴요커에서 이를 자세하게 설명한 피처 기사, 'Either/Or'를 읽게 되면서 비로소 이 문제의 깊이를 깨닫게 되었다.

아리엘 레비의 2009년도 뉴요커 기사 'Either/Or'

단순히 세메냐의 의학적 성별 문제를 넘어 그가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환경과 역사까지 설명한 이 기사는 뉴요커 특유의 꼼꼼함 잘 드러나는 글이다. 비록 영문이고 긴 글이라는 장벽이 있긴 하지만, 나는 이걸 읽은 후로 내 주위에 이 일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이 문제에 무지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으면 이 글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곤 했다.

그런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 중에 구글 뉴스랩 펠로우들이 있다. 내가 일하던 메디아티와 구글 코리아, 그리고 서강대가 함께 참여해 운영하던 이 프로그램에서 동아사이언스와 협업한 팀이 뉴요커 기사에서 출발해 다양한 문헌을 읽은 후 아래와 같은 영상을 만들었다. 당시는 평창올림픽이 열리던 시점이라 간성인과 체육대회의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였고, 이 팀은 이 주제를 3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이들이 만든 다른 콘텐츠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가장 쉬운 요약

위의 영상에서도 설명하지만 간성인들 중 일부는 AIS(안드로젠 무감응 증후군)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생식기의 모양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성과 X, Y 염색체로 판단하는 성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겉으로 보면 여성이지만 염색체는 XY인 경우가 있는 거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다른 성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물론 간성에는 AIS 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전 세계 인구에서 간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7%. 세상에는 남한의 인구보다 많고, 독일의 인구보다 조금 적은 사람들이 간성을 갖고 산다.

대부분의 간성인들이 이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주위에 알리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체육인이라면, 그것도 국가대표가 되는 엘리트 체육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상이 빠르게 젠더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엄격하게 이분법을 고수하는 곳이 바로 엘리트 체육계다.

여성성의 증명

잘 알려진 대로 고대 올림픽은 남성들만의 경기였고, 쿠베르탱 남작이 올림픽을 되살린 1896년에도 남자들만 참여 가능했다. 2회인 1900년 경기부터는 여자 선수가 등장했지만 모든 종목이 여성들에 개방된 것은 아니었고, 일부 종목에만 특별히 여성의 참여가 허용되었다. 이에 항의하는 여자 선수들은 아예 독립해서 1922년부터 1934년까지 네 번의 '여성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다.

1928년 여성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수영 선수들

결국 모든 종목을 여성들에게 개방하면서 남녀 선수 모두가 같은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지만, 두 집단은 일부 혼성(mixed-sex)경기를 제외하면 엄격하게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어 경기를 진행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98년, 당시 여성 테니스를 제패한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는 자신들이 "세계 남자 테니스 랭킹 200위 밖에 있는 선수"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기분이 상한 남자 랭킹 203위의 선수가 대결을 요청했고, 윌리엄스 자매를 상대로 차례로 완승을 했다. 그 후 윌리엄스 자매는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남자 선수는 세계 랭킹 350위 바깥이라고 수정해야 했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남성보다 뛰어난 운동 실력을 가진 여성이 많지만, 세계 최고가 겨루는 엘리트 체육에서는 근력과 순발력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만약 모든 경기를 남녀구분 없이 진행하면 시상대에서는 여자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 게 분명하다. 따라서 올림픽을 비롯한 많은 공식 경기들이 남자와 여자 그룹을 갈라서 진행한다.

하지만 체육대회가 국가 대항으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각 나라가 순위에 자존심을 걸기 시작했고, 도핑 등을 통해 룰을 어기는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남성 선수가 여장을 하고 경기에 참여해서 메달을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는 일찍부터 등장했기 때문에 체육계는 이를 막기 위해 성별 검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 검사 방법이 여자 선수들의 성기를 의사가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검사를 하는 의사 중에는 남자 의사도 있었다). 여성 체육인들 사이에 "누드 퍼레이드"라고 불리던 수치스러운 이 검사 방식은 20세기 중반까지도 계속되다가 결국 인권 침해의 여지가 적고 더 과학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 염색체 검사였다. 하지만 염색체를 사용한 검사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선수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그 누구도 여성임을 의심한 적 없는, 그리고 해부학적으로도 여성인 선수들이 XY염색체를 가진 남성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즈 파티뇨 (왼쪽)

대표적인 선수가 1986년, 스페인 육상대회에서 성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탈락한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즈 파티뇨(Maria José Martínez-Patiño)다. XY 염색체를 갖고 태어났지만 앞서 이야기한 AIS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해부학적으로 여성이었고, 스스로 한 번도 자신의 성별을 의심한 적 없었던 그는 대회 조직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출전해서 60m 허들 경기에서 우승했지만, 실격으로 처리되었다.

여기에서 '권고'란 당시의 관행이었다. 성별 검사 결과 여성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 선수에게 조용히 통보해서 "연습 중 부상을 이유로" 경기에서 빠지라는 것이고,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조직위는 어쩔 수 없이 언론에 성별검사 불합격을 알리겠다는 위협이었다.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조직위는 이를 공개하며 실격처리했다. 이후 마르티네즈 파티뇨는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운동 장학금이 취소되었을 뿐 아니라,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결별하는 등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일을 겪었다.

하지만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는 이 판결의 부당함을 두고 끝까지 싸웠고, 2년 후인 1988년에야 비로소 IAAF가 선수의 출전권을 회복시켜주었다. 하지만 그해 (서울)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1992년에 다시 도전했지만 0.1초 차이로 올림픽 출전권을 놓쳤다.

타고난 이점과 형평성

그런데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의 비극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가 "아무런 이점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로 실격처리 되었다(disqualified for an advantage that she did not have)"는 사실이다. 단순히 Y 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해서 체력에 특별한 이익이 있는 게 아니다. AIS가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젠 무감응 증후군이기 때문에 체력, 경기력을 높여주는 남성 호르몬의 덕을 보지 못한다. 염색체까지 살피면서 여성임을 확인하려는 모든 시도가 결국 호르몬으로 인한 불공평한 이점을 없애려는 건데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이점 때문에 그 모든 일을 겪어야 했던 거다. 결국 IAAF는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한 성별 검사를 포기한다.

그에 비하면 세메냐의 경우는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호르몬에서 분명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평균 여성들에 비해 몇 배나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이 운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를 악용하려는 도핑은 경기 조직위원회의 감시 대상이다. 문제는 이 호르몬을 주사하지 않고 몸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다. 스포츠 중재 재판소(CAS,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는 2019년에 세메냐는 몸에서 평균 여성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테스토스테론이 나오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수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여성으로 출전해서 겨룰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똑같은 일이 남성 선수에게 일어나면 어떨까? 그런 남성은 "신체적 조건이 유리한" 선수일 뿐이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같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 부당한 이점이 되는 것이다. 올림픽은 그렇게 타고난 이점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아래 영상은 프로퍼블리카의 기자 데이비드 엡스틴이 각 종목의 기록 경신이 과연 인류의 운동 능력이 그만큼 상승한 것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는 발표다. 엡스틴은 다양한 외부 조건 때문에 기록이 향상되었음을 설명하는데, 6:07 지점부터는 '평균적인 신체가 모든 종목에 유리하다'라고 생각했던 근대 올림픽 초기와 달리 종목별로 유리한 신체를 골라내는 작업이 기록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엡스틴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말은 이거다. 현재 20세에서 40세 사이의 남성 중에서 키가 7ft(213cm)가 넘는 사람들을 모으면 현재 NBA에서 선수로 뛰고 있을 확률이 17%라는 것이다. 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큰 돈과 명예를 얻는 엘리트 스포츠는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타고난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다. 그 '좋은 신체조건'에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남성 호르몬도 포함된다.

단, 당신이 여성이라면 예외다. 여성이면서 남성 호르몬이 지나치게 나오면 자격이 박탈된다.

('What She Is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