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특이한 해였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임기 말년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면서 매일 아침 뉴스를 확인하는 게 심각한 스트레스가 되었지만,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팬데믹이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을 망가뜨리고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되는 날이 끝나지 않자 사람들은 지쳐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불안감이 있었다. 앞으로 내 직장이, 내 아이가, 우리나라가, 세계가 어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고, 이는 내가 온라인에서 접하는 뉴스 중에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 때문에 더욱 증폭됐다. (팬데믹 기간 중에 뉴욕타임즈 같은 권위있는 매체들의 구독자가 급증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 생사를 좌우하는 뉴스가 매일 쏟아지다 보니 코로나19 사망자 숫자처럼 심각한 문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작은 일에는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그런 작은 일 중에 중국 씨앗의 미스터리가 있었다.

중국 씨앗의 미스터리

작년 여름 미국의 언론은 "중국에서 배달되어오는 이상한 씨앗"에 대한 보도를 일제히 쏟아냈다. 내용은 이렇다. 미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소포를 배달받기 시작했다. 수신자의 이름과 주소는 맞는데, 포장에는 자신이 주문한 적이 없는 귀걸이, 팔찌 같은 이상한 상품이 내용물로 적혀있었다. 포장을 열면 더 황당했다. 알 수 없는 씨앗이 작은 비닐봉투에 담겨있었던 거다.

당시 미국인들이 느꼈던 공포를 이해하려면 팬데믹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지만, 초기에 중국 정부가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숨기면서 그 기원이 어디인지 논란이 되었다. (아직도 여러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더 심각한 루머를 낳은 것은 우한에 위치한 바이러스 연구소의 존재였다. 야생동물에서 온 게 아니라 이 연구소에서 실험하던 바이러스가 유출된 것이라는 주장은 전문가들도 철저한 조사를 요구할 만큼 큰 논란이 되었고, 이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누구보다 트럼프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유출 가설을 좋아했다. 바이러스 확산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기 위해 코비드(Covid)라는 말 대신 "차이니즈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고집한 트럼프 덕분에 중국 정부가 미국과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 퍼뜨렸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중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씨앗이 미국의 각 가정에 배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인들이 "중국발" 공포에 빠진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긴장한 건 일반인들만이 아니었다. 언론 보도를 본 미국 농무부(USDA, United State Department of Agriculture)는 이 문제를 조사하면서 국민들에게 "중국에서 날아온 씨앗은 절대 심지 말고, 쓰레기통에 넣지도 말고, 태우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최악의 경우 중국의 생물테러(bioterrorism)일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외래종 식물은 함부로 반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은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랬으면 팬데믹으로 이렇게 큰 피해가 나지 않았을 거다). 많은 사람이 씨앗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변기에 쏟아버렸고, 일부는 '뭐가 자라는지 보자'며 정원에 심었다. 그 시점에 농무부가 파악한 수수께끼 씨앗 소포만 2만 개에 가까웠으니 별 생각 없이 씨앗을 땅에 심을 사람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브러싱(Brushing) 사기

하지만 그렇게 이미 자란 작물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져다가 살펴본 농무부는 특별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중국 작물이었고, 따라서 허가없이 반입하면 안 되기는 했지만 그게 씨앗을 동원한 생물테러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럼 중국인들은 왜 미국에 씨앗을 보낸 걸까? 그리고 왜 씨앗의 정체를 숨기고 귀걸이, 팔찌 같은 제품으로 속여 보낸 걸까?

이때 나온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이 바로 '브러싱 사기(brushing scam)'라는 것이었다. 브러싱 사기는 몇 년 전에 등장한 전형적인 온라인 사기 수법으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자신의 리뷰 점수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다. 이 사기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등장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전자상거래가 확산되면서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외부(third party) 상인들이 들어와 물건을 팔 수 있는 온라인 장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이런 상인들의 신뢰도와 상품의 품질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리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고, 이를 위해서는 허위로 작성된 리뷰를 잡아내는 게 핵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 허위로 작성된 리뷰를 적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특정 제품의 리뷰를 쓰는 사람이 그 제품을 구매한 기록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브러싱 사기' 항목에는 아직도 (2021년 11월 16일 현재) 중국씨앗의 사진이 등장한다.

이는 아마존, 알리바바 같은 기업이나 사용자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상인들에게는 큰 문제였다. 온라인 장터 내 경쟁이 심해져서 좋은 리뷰를 받지 않으면 수많은 비슷한 제품들 속에 묻혀서 발견도 되지 않는데 구매자들은 불만이 있을 때만 리뷰를 쓸 뿐, 대부분의 경우는 제품에 만족해도 리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검색 결과 상단에 올라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허위 리뷰를 퍼붓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브러싱이라는 꼼수가 나온다.

상인들은 특정 플랫폼의 구매자들이 모인 나라 사람들(아마존의 경우 미국인들)의 이름과 주소를 온라인에서 가져다가 상거래 사이트에 가짜 계정을 만든 후 그리로 비싸지 않고 배송비가 적게 드는 물건을 보낸다. 그렇게 배송기록이 생기면 그 가짜 계정으로 좋은 리뷰를 남기는 거다. 배송기록만 있으면 되니 반드시 같은 상품일 필요도 없다. 다만 받은 사람이 분노해서 아마존에 고발하지 않을 정도의 물건만 보내면 된다. 배송기록이 있으니 알리바바와 아마존이 허위 리뷰라고 잡아내기 힘들게 된다.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런 사기 수법은 약 5년 전에 중국에서 처음 등장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중국 씨앗의 미스테리는 그렇게 풀렸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작은 물건은 얼마든지 많은데 왜 하필 씨앗을 사용했을까? 그것도 브러싱을 시도하는 모든 중국 상인들이 일제히 씨앗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이 브러싱 사기라는 가설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게 미국 농무부의 설명이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2020년은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난 해였기 때문이다. 내가 먹고사는 일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면 그저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면 충분했다.

아마존의 이상한 대답과 반전

그런데 애틀랜틱에서 '중국 씨앗의 미스터리'가 일어난 지 1년 만인 지난 7월에 이 일의 전모를 추적해서 진상을 밝히는 기사를 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는 작년에 그 일의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가물가물한 사건이었지만 호기심에서 기사를 찾아봤다.

이 애틀랜틱 기사는 크리스 히스(Chris Heath)가 썼다. 히스는 브러싱 사기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 대해서 쓰면서 자신이 취재한 몇몇 사례를 가지고 아마존에 전화해서 팩트를 확인하려고 했단다. 의문의 배달 사건 대부분이 아마존의 플랫폼에 일어났으니 아마존은 구매자와 판매자의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화한 히스 기자는 아마존 직원으로부터 뜬금없는 답을 들었다. 히스가 제시한 사례들을 찾아보니 브러싱 사기가 아니라 그냥 배달이 많이 늦어진, 정상적인 주문이었다는 거다.

이 미스터리의 전모를 밝힌 애틀랜틱의 기사, 'THE TRUTH BEHIND THE AMAZON MYSTERY SEEDS'

히스 기자는 아마존의 설명을 의심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주문한 씨앗을 받아놓고 왜 받았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는 아마존의 주장, 즉 브러싱 사기 가설에 반박하기 위해 브러싱이 분명해보이는 사례 하나를 골라 추적해보기로 했다. 유타주에 사는 로리 컬리라는 여성이 그렇게 전형적으로 뜬금없는 씨앗이 중국에서 배달되었다고 얘기한 사람이었다. "컬리의 주문 기록을 살펴봐달라"는 말을 들은 아마존 측은 "주문한 기록이 있다"고 답했다.

확인해보니 아마존의 말이 맞았다. 컬리는 4월 25일에 아마존에서 세 종류의 씨앗을 서로 다른 세 곳에서 주문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그 사실은 자기도 기억한다고 했다. 다만 자신이 여름에 받은 씨앗과 그 주문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 거다. 평소라면 며칠 만에 도착했어야 할 이 씨앗이 컬리에게 도착한 건 몇 달 후인 7월이었다. 컬리의 착각이었다.

그래도 히스의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컬리는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자신이 주문한 씨앗을 받고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 할수록 아마존의 대답은 사실이었다. 배달받은 씨앗 중에 정상적으로 주문되지 않은 사례, 즉 브러싱 사기에 해당하는 사례는 없었다.

모두가 받아들인 답은 정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집단망각 ② 풀리는 미스터리'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