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다른 나라의 문화, 역사보다 객관적으로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쉽게 "조지 워싱턴"이라고 대답하겠지만, "근대 터키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사람이 많지는 않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대해서 읽어보면 조지 워싱턴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았고, 그의 업적에 감탄하게 되지만 순전히 지금 터키가 전 세계 최강대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이름은 워싱턴만큼 잘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그랬다. 한국 문화는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가령 세계 미술사 교과서에서 동아시아 챕터를 보면 중국이 60%를 차지하고, 일본 미술사가 30%, 한국을 다루는 내용은 남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현대사에 중요한(relevant)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고, 한국보다 중국과 일본이 더 관심을 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그저 자동차와 전자 제품 브랜드로만 구분할 수 있었던 나라였다가 이제는 음악과 영화, 음식과 같은 문화 영역에서 '동아시아'라고 하면 한국이 가장 먼저 떠오르거나, 한국을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우스운 일도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K-웨이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K-팝이 주도해서 일어난다고 보기 힘들다. 특정 세대, 특정 집단에서는 K-팝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겠지만, 외국에 살면서 느끼는 건 각 분야에서 일제히 한국의 문화가 두각을 내는 쪽에 가깝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 테크 저널리스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트위터와 팟캐스트에서 KIA Sorento를 샀다고 자발적으로 홍보하는 건 그가 BTS를 즐겨 듣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