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의 견해 ④
• 댓글 4개 보기시진핑의 선택
중국의 태평양 접근권 확보와 관련해서 대만 병합과 동시에 추진 중인 남중국해 확보 노력을 잠깐 살펴보자. 스티븐 코트킨에 따르면 미국은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역사는 길다. 이는 석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 문제이기도 하고, 전 세계 물류의 4분의 1이 통과하는 경로를 둘러싼 세력 다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중국이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중요성과 관련이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중국은 남중국해—워낙 많은 나라들이 접해있어서 '아시아의 지중해'라고도 한다—를 둘러싼 국가들을 상대로 평화적인 외교를 시도했지만, 2008년쯤부터 태도를 공격적으로 바꾼다. '9단선(nine dash line)'으로 불리는 중국의 일방적인 영해 설정과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인공섬 만들기 전략이 그거다.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본격화한 작업이다. 코트킨은 중국의 이런 시도에 오바마 대통령은 진지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본다.
참고로, 2008년은 시진핑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던 후진타오의 집권기였고, 소위 중국의 '굴기(崛起)' 작업이 지금처럼 본격화되기 이전이었다. 중국의 남중국해 전략은 그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미국 정부는 2007년에 시작된 금융위기의 극복에 집중하고 있었다.

대만 문제는 성격이 다르다. 대만 입장에서 중국의 위협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긴박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만이 중국에 넘어갈 경우 세계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거점인 TSMC가 중국 손에 들어가고, 중국은 꿈에 그리던 태평양 진출 통로를 얻게 된다. 조 바이든이 중국이 대만의 강제 점령을 시도할 경우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중국의 섣부른 판단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대만 문제가 오바마가 손을 쓰지 않았던 남중국해 문제처럼 흘러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유럽(우크라이나)과 중동(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이 관여해서 해결할 수 있는 주요 분쟁의 수는 전략적으로 하나로 줄어든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 중국은 함정 숫자를 기준으로 미국보다 더 큰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했을 때 미국은 군대를 보내지 않았고, 러시아가 발트해 3국이나 폴란드를 침공한다고 해도 트럼프가 과연 파병할지 의심스럽다. 따라서 시진핑이 대만 합병을 시도하려면—트럼프가 미국의 고립주의를 외치는—지금이 적기인데, 왜 나서지 않는 걸까?
코트킨의 설명은 이렇다. 남중국해는 작지 않다. 지중해만큼 큰 바다다. 그리고 시진핑은 인민해방군(중국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민해방군이 부패한 조직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군의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래도록 노력해 왔지만, 올해 들어 나온 뉴스만 봐도 부패 청산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런 인민해방군이 과연 시진핑이 믿고 사용할 만한 도구일까?
"비스마르크가 말한 것처럼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철의 주사위(iron dice)'를 던지는 일입니다. 그 결과에 국가의 운명이 걸려있어요. 따라서 승리를 확신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는 게 전쟁입니다. 시진핑이 그 주사위를 던질 때는 공산당 정권을 걸어야 합니다. 시진핑은 자기가 중국을 통합한 인물로 교과서에 기록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섣불리 전쟁을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철의 주사위를 던졌다가 공산당 정권을 끝낸 사람으로 기록되는 겁니다. 고르바초프가 평화적으로 패배해서 소련을 끝낸 사람으로 기록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이 대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대만 침공이 아니라, 해상봉쇄를 사용해서 서서히 굴복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한다.
앞의 글에 소개한 영상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중국은 해상 봉쇄에 해군 함정을 동원하는 대신 해안경비대, 즉 중국해경의 함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주장처럼 대만이 중국 영토의 일부라면 자국민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해경 함정이라면 국내 문제이니 외국이 간섭할 수 없다는 평소의 주장과 논리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미국의 미래
스티븐 코트킨을 인터뷰하는 데이비드 렘닉이 마지막으로 미국의 미래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렘닉이 보기에 미국이 처한 문제는 트럼프가 전부가 아니다. 캐쉬 파텔(Cash Patel, FBI 국장),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부 장관), 털시 개버드(Tulsi Gabbard, 국가정보국장)처럼 자격만 미달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제도를 무너뜨리려는 인물들이 미국의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과연 미국의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코트킨의 태도는 단호했다. "제 견해는 분명합니다. 미국 사회는 믿기 힘들만큼 강하고, 질기고, 다이내믹하다는 겁니다." 그는 그런 미국 사회가 어디 가는 게 아니며, 미국의 제도는 뛰어나고, 오래 버텨왔다고 강조했다. 물론 미국 역사를 보면 제도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적도 많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많은 위기를 겪고도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게 그가 하려는 말이다.
물론 미국이 그런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 (지금 목격하는) 정권의 무능이나, 불법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 특히 현재 미국의 정치는 소수의 경합주가 결정하고 있다. 상원과 하원이 거의 정확하게 절반으로 갈리는데, 극소수의 표를 더 얻은 정당이 미국이라는 나라를—다른 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생각에 반해서—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바꾸려 하고, 다음 선거에서 다른 당이 또 박빙의 표차로 승리하면 또 새로운 나라로 바꾸려 하는 게 현재 미국의 정치다. 코트킨은 상식에 기반한 중도가 많아져서 국민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하고, 국민의 51%가 아닌 70%가 동의하는 법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정치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 바로 과격화한 미디어 환경이다.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은 양극단의 주장을 부추기며 합의 도출을 어렵게 만들고, 정치적 중도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미국은, 아니 세계는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소셜미디어의 폐해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라디오가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인류 문명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디오 전파를 쏘면 각 가정에 있는 라디오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있었죠.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들이 라디오를 잘 활용했죠.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가 그랬고, 나치의 선전국장 괴벨스가 그랬습니다."
인류 사회는 라디오 기술을 활용한 세력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미국은 열린사회를 유지하면서 그 기술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라디오 기술을 사용해서 2차 대전 중에 국민의 단합을 끌어냈다. 하지만 미디어의 발전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TV가 등장한 것이다. TV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이미지까지 함께 퍼뜨릴 수 있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회를 위협하는 기술이었다. TV라는 기술을 활용한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고,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등장해 사회를 흔들고 있다. 라디오, TV와 달리, 아무런 자본 없이도 누구나 많은 사람에 도달하고,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절대로 방송을 탈 수 없었던 황당한 음모론도 가감 없이 퍼지고,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있다.

"사람들은 라디오, TV가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정권이 이런 기술의 덕을 보는 것을 걱정하죠. 그런데 소셜미디어의 힘으로 오바마가 당선되었고, 이제는 트럼프가 당선된 겁니다. 우리는 라디오, TV라는 신기술을 마스터했던 것처럼 이제는 소셜미디어를 마스터해야 합니다. 사회가 이렇게 파괴적인 신기술을 어떻게 끌어안고 마스터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모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냥 모두가 죽을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고, 러시아가 공격하고, 이란이 핵무장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괜찮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스템은 문제를 수정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유롭고 열린 사회이고, 사법제도는 아직 작동합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과거에 비슷한 일들을 겪었고, 그러고도 살아남았습니다. 남북전쟁과 앤드류 잭슨 대통령을 거치고 살아남은 나라입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낙관적인 태도를 갖기 힘든 일이 많았는데도 결국에는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상황이 더 꼬이고, 나빠질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장기적으로 권위주의나 자유방임주의가 자리를 잡는다는 데 베팅하지는 않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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