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의 견해 ③
• 댓글 2개 보기러시아의 미래
코트킨에 따르면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독재) 정권은 모든 것에 실패해도 하나만 할 수 있으면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바로 정치적인 대안을 억누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푸틴이 없는 러시아를 원하지만, 러시아에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푸틴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푸틴이 계속해서 집권할 수 있는 이유가 그거다.
서방 세계에서는 푸틴의 대안으로 알렉세이 나발니 같은 민주주의 정치인을 생각하지만, 코트킨은 반드시 민주주의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러시아의 여건에서 나발니 같은 정치인이 받을 수 있는 지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원하는 러시아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알렉세이 나발니 러시아 진보당 대표는 2013년 모스크바 연방특별시 시장 선거에 출마해 27.24%를 득표하면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푸틴에 도전할 의사를 밝힌 후에 강한 견제를 받았고, 2020년에는 독약을 사용한 공격에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지만 독일 의료진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2021년 러시아로 귀국 직후 체포되어 투옥되었다가 2024년, 옥중에서 의문사했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미국과 같은 서방세계에서 잘 보지 못하는 옵션이 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민주주의자보다 수적으로 더 우세하고, 권력에 더 가깝다. 아니, 이들은 현 러시아 정권의 일부이기도 하다. 푸틴에 대한 반대를 내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푸틴이 벌이는 부질 없는 전쟁과 러시아의 경제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 내에서 군부와 안보 분야에 상당수 포진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유럽과 협력하지 않으면 경제적 풍요를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절대로 나서서 푸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많은 러시아인처럼 높은 빌딩에서 "실족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코트킨은 훗날 소비에트 연방의 종말을 끌어낸 고르바초프를 서기장 자리에 앉힌 것은 KGB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갈수록 미국과 격차가 벌어지는 소련의 앞날을 걱정했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 올 만한 고르바초프를 선택했지만, 그들은 민주주의자가 아닌, 소련 정권의 일부였다. 코트킨은 미국이 그렇게 현재 푸틴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회유해서 푸틴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정권 교체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존재는 푸틴에게 압력으로 작용해서 무의미한 전쟁을 이어 나가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코트킨의 생각이다.
트럼프의 태도
그렇다면 트럼프가 푸틴이 원하는 바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렘닉은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현실은 트럼프가 푸틴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가 러시아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치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코트킨이 보기에도 트럼프는 젤렌스키보다 푸틴에 더 호감을 느낄 뿐 아니라, 다른 유럽의 지도자들보다 푸틴을 더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와 그의 보좌관들이 소위 '착한 경찰, 나쁜 경찰(Good Cop, Bad Cop)' 역할을 나눠서 하는 것 같다고 한다. 푸틴에 대해서는 트럼프가 착한 경찰, 보좌관들이 나쁜 경찰을 하고, EU의 리더들에게는 트럼프가 나쁜 경찰, 보좌관들이 착한 경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렘닉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 같다"고 하자, 코트킨은 트럼프에게 외교는 프로레슬링(WWE)과 다르지 않아서, 흥행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고 했다. 트럼프에게는 사람들에게서 관심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고, 모든 일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트럼프의 정책 중에는 진지한 것도 있지만, 하루 만에 뒤집는 것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일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트럼프는 미국의 시스템에서 합법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잘못한 것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습니다만, 그게 현실입니다."
다만, 현 트럼프 행정부 내에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사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코트킨은 더 큰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힘만으로는 세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거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국의 쇠퇴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우방국들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기 때문이다. 30년 전만 해도 G7 국가들의 GDP는 세계 경제의 70%를 담당했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40% 이하로 줄었다.
"이건 사실 미국의 주도로 'rise of the rest(비선진국들의 성장)' 정책을 추진한 결과입니다. 그 정책은 성공했지만, 우리는 그 성공이 가져오는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죠." 그렇다면 미국의 경쟁 상대로 성장한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유럽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중국의 위협
"중국은 엄청난 나라입니다. 1800년 이전까지의 세계는 중국 중심의 세계였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던 건 1800년 이후로 약 170년 동안에 불과합니다. 유럽 국가들이 성장했기 때문이죠. 인도와 달리, 중국을 점령한 유럽 국가는 없었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힘에 중국이 밀려난 시기가 그 170년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세계의 수퍼 파워로 등극한 게 정확하게 이 시기와 겹칩니다.
미국은 그렇게 독주하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좀 더 정확하게는 1990~2000년대 중국이 세계 무대에 다시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과 미국이 동시에 수퍼 파워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안에서 중국은 주니어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이런 구도를 바꾸고 싶어 합니다.
중국은 우선 동아시아 지역의 주도권을 미국에서 가져오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갈등이 생깁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라는 게 바로 중국이 긴 터널을 빠져나와 성장하게 만들어 준 구도이거든요. 세계가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내던지면 중국에도 이롭지 않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중국이 성장을 이어 나갈 방법이 있냐는 거죠. 글로벌 커먼즈(global commons, 세계의 공유재, 혹은 협력틀)을 누가 공급하겠습니까? 세계의 교역과 안보 등등이 달려있는 글로벌 커먼즈를—미국이 아니면—누가 지키겠습니까?
그런데 트럼프가 등장한 겁니다.

지금 세계는 트럼프가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알지 못하고, 그래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트럼프가 2017년에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 푸틴은 트럼프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보다 러시아에 불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실제로 어떤 정책을 펴게 될지 아는 사람이 있다면 예언자일 겁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전 세계는 중국의 행보를 주목했다. 주권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걸 러시아가 먼저 했다면, 중국이 대만을 점령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이고, 미국의 대응도 분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점령지를 가져가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을 보는 중국은 대만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까?
코트킨은 중국은 상륙작전을 통한 대만 섬 점령이 아닌 해상봉쇄(blockade)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건 코트킨만의 생각이 아니다. 중국은 대만 영해 밖에서 대만의 항구를 오가는 선박을 통제하기만 해도 대만의 숨통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대만을 바깥세상으로 연결하는 14개의 해저 케이블을 끊으면 대만은 인터넷과 통신이 끊기고 위성 인터넷에 의존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 제일 손쉬운 선택은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그런데 스페이스X를 소유한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 측에 스타링크를 제공(했다기 보다는 미국 정부가 돈을 주고 계약한 것이다)했다가 독단적인 결정으로 서비스 지역을 제한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선택이 아니다. 무엇보다 머스크는 중국에서의 사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진핑의 요구에 굴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지금 당장 대만을 침공하지 않을까? 코트킨의 대답은 간단했다.
"시진핑은 인민해방군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겁니다."
마지막 편 '현실주의자의 견해 ④'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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