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이후의 푸틴 ①
• 댓글 남기기푸틴이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공식 명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Russo-Ukrainian War)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기습 점령한 2014년에 시작된 분쟁으로 기록되고,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침공으로 전면전으로 변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이미 9년을 넘어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의 전쟁 역사를 보면 10년 동안의 전쟁은 특별히 긴 전쟁이 아니지만 (전쟁이 원래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 전쟁에 휘말린 개인과 사회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과도 같은 긴 시간이다.
이렇게 긴 세월을 싸우며 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은 후에 사회가 전쟁이 끝난 후 큰 변화를 겪지 않을 거라 상상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이렇게 전쟁을 오래 끌고 나서 결국 패했거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정권이 계속해서 권력을 잡고 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전범이 되어 버린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운명만 그랬던 게 아니다. 러일전쟁(Russo-Japanese War, 1904~1905) 때 러시아 국민은 대체로 전쟁을 지지했지만, 전쟁에 패한 후 이들의 분노는 결국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10년을 향해 가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푸틴의 전쟁은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계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한 뉴욕타임즈의 경우 푸틴 정권의 몰락에 대한 기대가 다른 언론에 비해 조금 더 크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쟁의 끝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며칠 전 기사에서는 이 주제를 다룬 최신 서적들을 소개하는데, 그중에서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무찌른 후 러시아의 연합이 해체될 거라는 예측을 한 책('Russia Against Modernity')을 가장 설득력 있는 책으로 꼽았다.
그런데 이 전쟁은 정말 뉴욕타임즈의 기대처럼 푸틴이 권력을 잃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될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바라겠지만, 세상이 사람들의 기대대로만 이뤄진다면 우리는 기온의 상승을 이미 막았을 거다. 희망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좀 더 현실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바그너 그룹의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부에 반기를 들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응원하면서 팝콘을 튀기고 있었을 때 미국 국방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푸틴의 영토에 대한 야욕보다 더 두려운 것은 지구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핵무기가 러시아의 핵무기 독트린을 따를 거라 장담할 수 없는 프리고진이나 다른 권력자의 손에 들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실적이고 냉정한 분석이 아닌 부족한 정보에 기반한 예측이나 막연한 감으로 하는 분석은 자신의 편견과 바람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족한 정보–푸틴의 머릿속은 들여다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본인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을 수 있으니 정보는 항상 부족하다–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적절한 태도는 뭘까? 1) 자신의 예측이 어디에 기반해 있는지 밝히고 2)그 예측에 대한 자신감의 크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가 가진 한계를 확인하게 한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오늘 소개하려는 글은 뉴요커에 나온 'Could Putin Lose Power? (푸틴은 권력을 잃게 될까?)'이다. 이 글은 푸틴이 권력을 잃게 될 가능성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고, 무엇보다 글에서 소개하는 예측이 나오게 된 역사적, 학문적 배경을 밝힌다. 푸틴의 미래에 대한 예측 외에도 러시아를 보는 시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글이라 소개한다.
글쓴이는 키이스 게센(Keith Gessen).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 글이 길기 때문에 그대로 번역하는 대신 약간의 요약 형태로 옮겼고, 원문에 나오지 않은 설명을 넣을 때는 박스를 사용했다.
푸틴은 권력을 잃게 될까?
정권의 안정이란 우스운 거라서, 오늘까지 멀쩡하던 정권이 하루 만에 날아가기도 한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러시아 전문가들에게 러시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다녔다. 쿠데타의 가능성이 워낙 작기 때문에 순진한 질문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푸틴이 권력을 잡은 지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여러 사람이 푸틴의 죽음을 예측했지만 다들 빗나갔다. 트위터에는 푸틴이 위독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도 있다. 이들은 푸틴이 책상을 단단히 잡고 있는 사진을 두고 아파서 쓰러질 듯한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전문가들에게 그런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질문을 받은 전문가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면 웃었다. 러시아에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차우셰스쿠(루마니아의 독재자. 1989년 시민들의 봉기로 정권이 무너진 후 도주를 시도하다가 붙잡혀 약식 판결 후 사살되었다–옮긴이) 시나리오"가 러시아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은 더 작다고 했다. 그렇다면 푸틴의 부하 중 하나가 반란을 일으켜 군 사령부 하나를 장악하고 모스크바로 진격할 가능성은? 우리는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견해 1. 피터 클레멘트
전면전이 시작된 후로 모든 러시아 전문가가 푸틴의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을 생각해 왔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러시아 담당 분석가로 일한 피터 클레멘트(Peter Clement)는 푸틴이 침공을 시작하기 며칠 전, 러시아 안보회의에서 국가의 고위 관료들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게 하고 그 장면을 TV로 생중계한 것을 아주 영리한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압력을 받아 지지를 표명했지만, 공개적으로 했으니 나중에 가서 "이 전행은 멍청한 짓"이었다고 발뺌할 수 없게 된 거다.
클레멘트는 바로 그 이유로 정권 내에서 푸틴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면 푸틴의 최측근이 아닌 한 단계 떨어진 집단(second circle)에서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그 가능성은 작다.
일단 푸틴의 경호처(secret service)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푸틴을 물리적으로 체포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 반대라는 어젠다로 대통령의 경호원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푸틴을 체포한 후에는 나라를 통치할 계획이 있어야 한다. 러시아는 거대한 나라이고, 전쟁 중에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처럼 "서쪽의 마녀를 물리쳤으니 모두 만세!" 하는 식으로 될 일이 아니다. 국가를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클레멘트는 그런 준비가 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단다.
견해 2. 안드레아 켄달-테일러
이 문제로 대화를 나눈 또 하나의 CIA 분석가가 안드레아 켄달-테일러(Andrea Kendall-Taylor)다. 미국 정부와 씽크탱크에서 러시아와 유라시아 쪽 정보를 담당한 켄달-테일러는 내게 세계의 권위주의 정권들(authoritarian regimes)이 무너지는 방식을 설명한 연구들을 이야기해 줬다. 1950년부터 2012년 사이에 붕괴한 473개의 권위주의 정권 중 153개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쿠데타로 인한 정권 붕괴는 줄어드는 추세다. 이유는 미국이다. 원래 쿠데타로 무너지는 독재 정권들이 대개 군사 독재 정권인데, 20세기 냉전이 종식된 후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군사 정권을 지원하는 일을 크게 줄어서 그렇다.
미국이 권위주의 정권, 비민주주의 권력을 지원하는 건 자국이 내세우는 이상보다 외교, 군사적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켄달-테일러의 말처럼 냉전 이후 이런 일이 줄어들었지만, 최근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면서 필리핀, 인도처럼 인권을 무시하는 정부를 지지하는 일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중국과의 대결 구도에서 민주주의의 이상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 것이다.
켄달-테일러에 따르면 대통령을 경호하는 세력을 비롯한 이너써클(inner circle)에 속한 사람들이 푸틴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작은 이유는 푸틴 정권이 정치학자 밀란 W. 스볼니크(Milan W. Svonik)가 말하는 "확립된 권위주의 체제(established autocracy)"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가 확립된 단계에서는 지도자가 권력을 완전히 독점하기 때문에 권력자 편에 선 사람 중에서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사라진다.
따라서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면 푸틴과 같은 개인 독재자들은–특히 그 독재자가 65세 이상일 경우–권력의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면서 권력을 잃는다. (참고로, 푸틴은 70세다.) 푸틴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켄달-테일러의 생각이었고, 따라서 푸틴이 앞으로 2년 안에 권력을 놓게 될 가능성을 10%라고 전망했다. 이 10%에는 푸틴이 심장마비로 사망할 가능성을 포함한 것이다.
'반란 이후의 푸틴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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