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사제가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려서 큰 화제가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로 꾸준히 진보적인 결정을 내려왔고, 성 소수자들에 대해서 포용적인 입장(여기에 관해서는 이 기사의 설명을 참고)이었기 때문에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답다"라는 반응이 많다.

물론 사제가 동성 커플을 축복한다는 것이 그들의 교회에 정식으로 결혼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에 허용된 '축복'을 할 때도 규정은 엄격해서 미사복을 입고서 할 수는 없다. 이런 제한 때문에 가톨릭교회의 개혁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보수적인 가톨릭이 이 정도까지 변했다는 데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번 결정이 성경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다.

기독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기독교의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뉜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신학적으로 서로 충돌하는 내용이 많고,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로 어느 얘기가 맞는지에 대한 견해가 갈릴 수 있다. 특히 예수가 등장하는 신약에서는 구약의 엄격한 율법(가령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시각)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앞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핵심이기 때문에, 그런 예수를 따르는 종교(=기독교)라면 율법보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 연방 대법원의 보수 법관들처럼 성경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수 기독교를 이끌고 있다. 그렇게 문자 그대로 따를 경우 지극히 차별적인 과격 이슬람과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는 점에서 교회 내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크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권력이 막강한 교황이라고 해도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 때도 볼 수 있었지만, 군대와 같은 무력 수단이 없는 권력의 정당성은 대다수의 동의와 인정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교황 혼자서 진보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교회 내 대다수가 (마지못해서라도) 수긍하고 인정하는 결정이어야 한다. 아주 어려운 균형잡기(balancing act)다.

그런데 마침 이런 결정을 예견이라도 하듯, 지난달 말 뉴욕타임즈의 한 칼럼니스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와 그에 대한 세계 가톨릭교회 내의 반응을 설명한 글을 썼다. 이 글을 쓴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는 최근 ‘한국은 사라지고 있나’라는 글을 쓰는 바람에 한국 언론에도 꽤 많이 알려진 보수 칼럼니스트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이다. 이 글에서 보이는 다우서트의 시각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고, 교황의 개혁 방식에도 회의적이다. 글의 제목부터 'Pope Francis Tries to Settle Accounts (묵은 원한을 갚으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다우서트의 글을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서) 소개하는 이유는 현재 일어나는 개혁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교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교회가 너무나 더디게 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교황이 어떤 상황에 있고 이 문제를 두고 어떤 씨름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가톨릭교회를 이끄는 모습을 보면 교회 내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을 갈라서 둘 사이를 더욱더 멀리 떨어지게 하려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드는 질문은, '교황은 교회가 쪼개지는 걸 어떻게 막을 생각일까?'이다.

교황은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뜨거운 이슈들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어버리는 바람에 교회 내 진보세력들이 강력한 변화를 최대한 요구하도록 부추겼다. 교황은 이들 진보세력이 교리와 관련해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이 마지못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개혁을 이루려는 듯하다. 그와 동시에 가톨릭교회 내 인사(人事)와 관련해서는 진보적인 인물을 편애하고,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남긴 레거시를 상대로 조직적인 전쟁을 선포해서 가톨릭 내 보수 진영을 위기와 피해의식에 빠트려 반란을 일으키도록 몰아가고 있다.

교황의 권위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나 보수 진영의 반란 세력을 제압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지난 몇 주 동안 일어난 일(다음 문단에서 설명한다—옮긴이)을 보면 교황은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테스트는 그가 교회가 쪼개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느냐, 이다.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진영에서 자신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던 두 사람을 상대로 인사 조처를 단행했다. 조셉 스트릭랜드(Joseph Strickland) 주교를 그의 교구인 텍사스주 타일러(Tyler)에서 해임했고, 레이먼드 버크(Raymond Burke) 추기경이 바티칸에서 누리던 특권—소득원과 아파트—을 빼앗았다.

교황에 개혁에 반대하다가 해임당한 미국 텍사스주의 조셉 스트릭랜드 주교 (이미지 출처: The Texas Tribune)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트럼프를 지지하고 코로나 백신을 의심하는 발언을 하던 유명한 보수 사제로, 2016년부터 교황의 힘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관련 한국 기사, 이미지 출처: PBS)

다른 한 편으로 교황은 진보적인 사제들의 요구에도 제동을 걸었다. 교황청 내에서 진보 진영을 주도하는 독일 주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그들이 어떤 개혁을 계획하더라도 사제는 남성만 할 수 있으며,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바꿀 수 없다고 밝힘으로써 그들의 실험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런데 각각의 사안을 보면 사제들이 일으킨 반란의 성격에 따라 교황이 내린 징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통주의자와 보수진영을 보면 유명한 주교, 추기경이 교황을 개인적으로 특정해서 비판하는 경우 (아파트와 소득원을 빼앗는 등의) 특정한 개인적 징계를 받았다. 반면 교회의 가르침을 진보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전반적인 시도를 하는 개혁, 진보주의 진영의 경우 일반적인 교리적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징계가 과연 작동할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양쪽 진영 모두 교황을 비판하면 자리를 뺏길 수 있지만, 교리에 관한 불복종은 강한 어조의 경고 편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자에 대한 징계가 스트릭랜드의 해임처럼 강력한 조치를 포함하지 않는 한, 가톨릭 내 진보 진영은 독일의 주교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시도, 즉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어도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과 같은 시도를 계속 할 것이다. 이들은 교회의 진보화가 일선 교회에서 사실상 일반화되면 교회의 법도 거기에 발맞춰 바뀔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 글은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는 공식 발표를 하기 전에 나온 글이다—옮긴이)

진보 진영의 이런 생각이 굳어지면 굳어질수록 가톨릭교회는 파열(破裂)을 피하기 힘들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미지 출처: National Catholic Reporter)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는—스트릭랜드와 버크를 우러러보는—보수적인 가톨릭 신자들은 개혁에 저항하는 문화에 깊이 빠져들고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런 문화 속에서는 주교를 자리에서 내쫓는 조치는 온라인 가톨릭 커뮤니티에서 쫓겨난 주교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주게 된다. 교회 내 보수주의자들로서는 특정 주교나 추기경이 바티칸보다 더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몇 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각종 스캔들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벌어진 전반적인 권위의 축소는 보수적인 가톨릭교회도 피해 가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불안한 리더십은 과거 교황의 가장 단단한 권력 기반이었던 바티칸에도 길고 흉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가 교회의 분열을 심화시켰고, 파열의 가능성을 키운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 내에 이미 존재하던 분열번식(分裂繁殖) 성향을 드러내 보여준 것일 뿐이기도 하다.

가톨릭 내에서 크게 대조되는 미국 가톨릭교회와 독일 가톨릭교회를 보자. 이 둘은 부유한 국가의 교회들일 뿐 아니라, 가톨릭 내에서 일어나는 보수와 진보의 내전을 이끄는 주요 캠프에 해당한다. 최근 미국의 가톨릭 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펴낸 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 미국에서는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사제들이 사실상 사라지는 중이다. 1960년대에 사제 서품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스스로를 신학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정통(orthodox)'이라고 부르기보다 '진보적'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여기에는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기간도 포함된다—서품을 받은 사제들의 대다수는 스스로를 '보수적,' 혹은 '아주 보수적'으로 부르고, 나머지는 '중도'라고 답했다.

21세기 미국에서 진보적인 신부들은 존재감이 사라지는 중이다. 이런 세대교체는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것으로, 가톨릭 내의 진보 세력을 주변부로 밀어내게 될 것이다.

미국 가톨릭교회는 신자이면서 임신 중지를 찬성하는 진보적 성향의 바이든에 성체성사를 거부하자는 보고서를 만들면서 교황청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America Magazine)

하지만 독일의 상황은 다르다. 미국과 달리 독일의 가톨릭교회에서는 세대를 교체할 만한 보수적 젊은 사제나 진보적 젊은 사제 집단이 자라고 있지 않다. 아니, 젊은 사제 자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2022년 현재 신학교에서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은 48명이다. 스스로를 가톨릭 신자라고 밝히는 인구가 2,100만 명인 나라에서 장래에 사제가 될 사람이 없는 거다. 미국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가톨릭 인구가 7,300만 명인 미국에서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인 사람은 3,000명에 육박한다. 미국도 사제가 되려는 학생들이 감소 중이어서 공급의 부족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독일처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사태는 아니다.

독일의 가톨릭교회가 진보화, 개신교화(Protestantization)에 큰 힘을 쏟는 이유가 바로 그런 생존의 위협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의 사제들은 교회가 바뀌지 않으면 독일 내에서 가톨릭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성직자 제도와 교회 운영 방식이 독일에서 실패하는 것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적인 가톨릭교회는 진보적인 교황이 미국의 보수 주교 하나를 날렸다고 해서 자신들의 미래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 가톨릭교회가 보는 미래는 신자의 급격한 감소와 진보적 성향의 신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당장 바티칸에서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어 독일 교회를 정통적(보수적)으로 되돌리겠다고 결정해도 그걸 이행할 수 있는 젊은 사제들이 없으니, 무리하게 그런 시도를 해봤자 바티칸이 얼마나 무력한지만 보여주게 될 거다.

신의 섭리가 개입해서 (독일과 미국의 교회들이 대표하는) 교회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교황이 머지않아 등장한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게 즉위한 교황이 물려받게 되는 건 단순히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만들어놓은 복잡한 문제만이 아니라, 가톨릭교회를 분열로 이끌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가져와도 신의 도움이 없이는 해결 불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