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Office
• 댓글 56개 보기주말이나 휴일이 아닌 평일 아침 일찍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걸으면 눈에 띄는 특이한 장면이 있다. 아직 사람들이 출근을 서두를 시간대는 아니고 조깅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시간대인데, 음식을 차곡차곡 담은 카트를 밀고 빌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카트에 있는 음식을 보면 흔한 호텔 조식 메뉴다. 빵과 페이스트리, 각종 과일이 쟁반에 담겨있고, 커피와 주스로 보이는 음료 컨테이너와 접시도 보인다. 그런데 이건 호텔로 배달하는 게 아니다. 맨해튼 빌딩 내 사무실로 가는 거다.
벌써 몇 년 전 얘기지만, 점점 많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화려한 아침 식사를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아침 일찍 회의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위해 스타벅스 케이터링 커피 정도를 가져다 놓는 걸로 시작했다가, 페이스트리를 추가했고, 건강을 위해 과일을 메뉴에 넣고... 하다보니 아예 그냥 조식뷔페 비슷하게 발전해 버렸단다. 모든 혜택이 그렇듯, 일단 직원들이 익숙해지면 사무실에 오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서비스가 되고, 곧 소문이 나서 다른 회사로도 퍼지게 된다. 물론 자금이 넉넉한 회사에서 일하는 연봉이 높은 직원들이 누리겠지만, 맨해튼에 고액 연봉자가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 맨해튼 아침 음식 배달 풍경은 당연한 모습이다.
팬데믹 이후에 이런 혜택이 사라진 게 아니다. 비록 실리콘밸리에서 환상적인 혜택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 직원들이 자기 빨래는 자기가 직접 해야 하는 상황 정도라고 한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사무실을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의 태도는 팬데믹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내놓고 사무실 출근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 가능한 하나의 '옵션'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이런 직원들을 사무실로 출근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가장 기발한 얘기는 사무실에 나와서 일한 시간에 비례해 직원이 원하는 단체에 회사에서 기부금을 보낸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무실의 미래는 어둡다. 이건 TED나 각종 트렌드 컨퍼런스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부동산업계의 전망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2040년이나 되어야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금요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나온 기사는 (요즘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을 상업용 부동산은 "당신이 소유는커녕, 안에서 일하고 싶지도 않은 사무실 건물"이 될 거라고 전망했다.
팬데믹은 도대체 뭘 바꿔놓은 걸까?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몇 세기가 지나서 되돌아봐야 할지 모른다.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휩쓸며 인구의 1/3을 죽인 흑사병이 유럽의 사회, 경제, 종교,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그 결과로 태어난 현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일어난 사람들의 태도, 사고방식의 변화는 작지만 분명하게 느껴진다. 희미해서 곧 증발해 버릴 것 같은 변화가 아니라, 지금은 작지만 여기에서 뭔가 크게 자라날 것 같은 변화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직장인들이 '일'과 '회사 사무실'을 더 이상 동의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뉴욕을 떠나 몬태나주로 이주한 언론인 커플 앤 헬렌 피터스(Anne Helen Peterson)과 찰리 워절(Charlie Warzel)이 쓴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Out of Office)'는 재택근무, 원격근무를 위한 트렌디한 참고서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변화하고 있는 일, 일터에 대한 진지한 탐구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 책은 방법을 알려주는 설명서가 아니"며 자기계발서도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팬데믹과 무관하게 2017년 몬태나로 이주해서 원격근무를 하게 된 자신들이 경험한 실패담으로 시작한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원격근무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이 책은 "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업을 가진 42퍼센트의 노동자에 초점을 맞춰 그들을 독자로" 삼고 쓴 책이지만, "그 42퍼센트(그 수가 늘어나는 중이다.)에 대해서만큼은, 깨어 있는 시간의 그토록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업무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서문 뒤에 이어지는 본문은 기업에서 자주 강조하는, 그래서 때로는 공허하거나 신화(myth)처럼 느껴지는 네 가지–유연성, 기업 문화, 사무실 테크놀로지, 공동체–에 한 장(章)에 하나씩 배정해서 꼼꼼하게 뜯어본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 새롭게 변화한 환경에서 일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는 책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하기를 시작한 게 300년 전인데, 전통적인 출퇴근과 조직 문화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그 대안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너무나 주먹구구식이라는 것.
생각해 보면 팬데믹 중에 많은 사람이 경험한 재택근무는 그냥 사무실을 집으로 옮겨온 것뿐이다. 사무실에서 출근해서 책상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했다면, 집에 책상과 컴퓨터만 있으면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사람 하나가 이런 말을 한다. "아무도 재택근무가 기술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우지도 않고, 문제로 다루지도 않죠." 사무실은 들어서는 순간 그 공간에서 적절한 행동 방식, 의사소통 방식을 익히게 되는데 원격근무, 특히 재택근무의 경우 체계화되지 않은(unstructured) 환경에서 홀로 일을 해야 한다. 팬데믹 중에 첫 취직을 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일을 시작했고, 그중 상당수가 아직도 그렇게 일하고 있다.
이 책의 영어 원문 판은 2021년 12월에 나왔다. 사람들이 원격근무는 이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게 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시점이다. 나는 이 책을 기획한 출판사가 처음에는 두 사람의 저자에게 원격근무를 위한 쉬운 지침서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먼저 원격근무를 해봤으니, 팬데믹으로 집에 갇혀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에서도 일 잘하는 법'이라는 팁을 담으면 잘 팔릴 거라 기대했을 수 있다.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지만, 저자들은 자신에게는 그런 팁이 없고, 대신 변화하는 사무실, 직장 환경에 적응하려는 개인과 조직의 성공담, 실패담을 찾아낼 수 있다고 역제안을 했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이 책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가 아닐까?
저자들의 말처럼 이 책은 모든 조직, 모든 직장인을 위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려는 직장인과 프리랜서, 그리고 조직 문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업(특히 조직 문화를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스타트업)에는 탐구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반비에서 오터레터 구독자들께 10권을 선물하신다고 합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 글에 댓글로 참여 의사를 표해주시면 됩니다. 한국 시각으로 7월 4일, 화요일 자정까지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서 추첨하겠습니다. 응모하시는 독자분들께서는 수요일 오전에 평소 오터레터를 받으시는 이메일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책은 한국 내 주소로만 배달 가능함을 양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