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비상계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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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12월에 개봉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예고편을 먼저 보자. 특히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서있는 곳을 눈여겨 보시길 바란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7년에 레너드 번스타인과 스티븐 손드하임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당시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새롭게 해석해서 주목을 받았던 히트작으로 끊임없이 리바이벌되고 있다. 미국 시트콤으로 X세대 사이에 큰 성공을 거둔 ‘프렌즈’(1994∼2004) 역시 종영 후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다시 인기를 끄는 드문 작품이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프렌즈’를 지금 보면 등장 인물들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은 크게 달라졌어도 배경이 되는 뉴욕시의 낡은 건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길고 좁은 창문과 돌로 된 외벽을 가진 10층 미만의 건물은 지금 뉴욕에 가도 고스란히 남아서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그런 뉴욕 건물들의 외양에서 유독 ‘여기는 뉴욕’이라는 느낌을 주는 요소가 있다. 바로 건물 한쪽 외벽을 타고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화재용 비상계단이다. 오랜 세월 동안 검은색이나 붉은색 페인트로 수십 번 칠해진 이들 철제 계단은 멋진 건물의 외양을 망치는 요소처럼 보이지만, 뉴욕의 비슷한 건물들이 대부분 갖고 있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다 보니 이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파리 에펠탑의 경우도 그랬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 보기 흉하다고 생각한 물건도 세월이 흘러 역사가 되면 달리 보이는데, 뉴욕시의 외벽 비상계단이 그런 예다.
물론 외벽으로 돌출된 비상계단이 뉴욕에만 있는 건 아니다. 시카고나 보스턴, 필라델피아 같은 미국 동부 도시에서도 외벽 비상계단을 가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도시도 뉴욕만큼 비상계단이 많지는 않다. 왜일까.
뉴욕 비상계단의 역사는 유럽인들의 이민이 폭증했던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뉴욕은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고, 구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그 노동 수요를 채웠다. 그들은 뉴욕시 곳곳에 널린 공장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고 테너먼트(tenement)라 불리는 빈민가의 공동주택에서 생활했다.
사진작가 제이콥 리스(Jacob A. Riis, 1849~1914)는 당시 뉴욕 맨해튼에 살던 유럽 이민자들의 일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일어설 수도 없이 낮은 지하실이나 창고처럼 좁고 더러운 공간에 온 가족이 모여 살고, 집이 좁아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자거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 건물 사이의 통로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맨해튼의 흔한 풍경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이 살던 곳은 너무 좁고 어두웠기 때문에 마침 발명된 카메라 플래시가 아니었으면 제이콥 리스도 기록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주거환경이 불결하고 위험했던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특히 큰 위험 요소가 화재였다. 좁게 붙어있는 빌딩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거주하다 보니 화재도 잦았지만, 일단 불이 나게 되면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옆 건물로 달아나야 하는데, 화재는 빠르게 옆 건물로 번졌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1860년에 한 공동주택 빌딩에서 일어난 끔찍한 화재 이후 화재 위험이 있는 건물들에 화염에 견딜 수 있는 탈출용 계단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었다. 각 층의 창문을 이어주는 철제 외벽 비상계단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미 만들어진 건물을 구조적으로 변경할 필요 없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지어지는 빌딩들은 방화문으로 차단된 내부 비상계단의 설치가 의무 조항이지만, 뉴욕에서 이 조항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7년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 지어진 빌딩들은 대부분 값싼 외벽 비상계단이 해결책이었다. 유독 뉴욕에서 외벽 비상계단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미국의 대도시들과 달리 내부 비상계단 설치가 보편화되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 뉴욕에서 볼 수 있는 외벽 비상계단들은 그렇게 오래된 유물들이기 때문에 간혹 사고 소식이 들린다. 건물주들은 이 계단의 사용을 금하지만, 영화, 드라마에서 보듯 세입자들은 그곳을 발코니처럼 사용하는 일이 흔하다.
그렇다면 이 비상계단들이 처음에는 안전했을까. 그렇지 않다. 법 규정은 있었지만 허술해서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계단이 위에서 내려오다가 2층에서 끝나는 바람에 화재를 피해 내려오던 여성이 더 내려오지 못하고 불에 타 숨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도둑이 외부 계단을 타고 올라가 창문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계단은 도로에 직접 닿지 않고 2층에서 사람의 무게가 실려야만 1층 높이로 내려오게 하는 장치가 일반적이다.
더 심각한 사건은 1911년에 일어났다.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라는 의류회사의 공장이 있던 맨해튼의 10층 건물에 화재가 나서 무려 146명이 한 빌딩에서 사망한 것이다. 이 공장은 빌딩의 8, 9, 10층에 있었고 500명의 노동자가 주중에는 하루 9시간, 토요일에는 7시간씩 일했다. 대부분 이탈리아계와 유대계 이민 여성들로 구성된 이들은 14세에서 23세 사이의 젊은 나이였다. 화재가 난 것은 토요일 오후로 노동자들이 작업을 마칠 무렵이었다. 8층의 옷감 쓰레기통에 던진 담배꽁초로 시작된 불은 쌓여 있던 옷감을 모두 태우면서 거대한 화재로 변했고, 일하던 여성들은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다.
불길과 연기를 피해 사람들이 탈출하기 위해 9층과 10층의 창문 밖 비상계단에 몰렸는데, 허술하게 만들어진 철제 비상계단이 뜨거운 열과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20명이 10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이다. 이 화재는 뉴욕 역사에서 유명한 사건으로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고, 무엇보다 뉴요커들에게 외벽 비상계단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해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소방안전법의 개정을 통해 안전한 내부 비상계단이 보편화되었고, 외부 비상계단에 대한 의존도 줄어들었지만 사고는 여전히 발생했다. 1976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보도사진 ‘비상계단의 붕괴’는 비록 보스턴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오래된 건물의 철제 비상계단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였다. 두 살짜리 아이를 보고 있던 19세의 베이비시터가 불이 난 아파트 빌딩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상계단에 나와 고가사다리차를 기다리던 중에 계단이 무너졌다. 베이비시터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뒀지만, 어린아이는 베이비시터 위에 떨어지면서 충격이 완화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찍은 사진기자 스탠리 포먼은 어떻게 이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을까. 1970년대에 모터를 사용해 고속촬영이 가능한 카메라가 등장했는데, 포먼이 마침 그런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1890년대 플래시의 등장으로 당시 도시의 어두운 구석이 세상에 알려졌다면, 1970년대의 모터 카메라는 도시의 또 다른 비극과 위험을 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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