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가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 화제가 되었다. "The Techno-Optimist Manifesto(기술낙관주의자의 선언문)"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의 글이었다. 앤드리슨은 인터넷 초기 웹브라우저의 대명사였던 넷스케이프(Netscape)를 만든 주역이었고, 벤처 투자를 시작한 후에는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라는 벤처 캐피탈을 통해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우버, 에어비앤비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을 발굴, 투자해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벤처 투자가"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블로그로 자기 생각—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투자에 대한 붐업이지만—을 밝히는 데 익숙한 마크 앤드리슨의 선언문 작성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전설이 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운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는 말도 그가 2011년에 같은 블로그(a16z.com)에 쓴 글에 처음 등장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의 선언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예언"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앤드리슨의 새로운 선언문이 나왔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앤드리슨은 1996년 '타임'의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다른 누구보다 앤드리슨 본인이 느꼈을 거고,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의 선언문을 읽은 사람들하나같이 그가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그가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만 사회에는 해가 되는 주장을 마치 인류에게 이익이 될 것처럼 주장했다며 비판했다.

그의 선언문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지만, 앤드리슨은 실리콘밸리의 기술,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AI 기술이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경고가 "거짓말"이며, 이 기술을 규제하려는 노력을 "적"으로 규정한다.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ESG'나 '기술 윤리,' '지속 가능성' 등 기업의 무한 질주를 제한하려는 사회적 노력을 모두 발전을 저해하려는 조직된 노력의 다른 이름들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고, 자신이 투자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사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반성하는 대신, 그 기업들이 콘텐츠를 관리하려는 노력을 폄하하면서 조지 오웰의 '1984'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앤드리슨은 지난 7년 동안 지구를 떠나 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의 주장은 순진하고, 그의 태도는 태연하다. 그러니 그의 주장에 동의는 커녕, 오히려 강한 반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앤드리슨의 선언문이 오히려 그의 주장을 깎아내린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다. 이렇듯 많은 반박과 비판적인 반응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뉴욕타임즈 오피니언란에 실린 게스트 에세이가 단연 돋보인다.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칼럼을 쓰는 엘리자베스 스파이어스(Elizabeth Spiers)가 쓴 'A Tech Billionaire’s Case for Why Tech Billionaires Should Rule the World (테크 억만장자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테크 억만장자의 주장)'이라는 제목의 글로, 전문을 읽어봐도 좋지만 앞부분에서는 앤드리슨의 글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후반부를 번역, 소개한다.

마크 앤드리슨 (이미지 출처: Stanford University)

(마크 앤드리슨의 글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주장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그의 글은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간다. 그는 요즘 테크 엘리트들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는 일종의 허무주의를—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 놓기 좋은 시와 비슷한 방법으로—표현하는데, 이 대목이 테크 엘리트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준다.

신반동주의(neoreactionary)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세상은 테크놀로지를 잘 아는 소수가 일종의 봉건적인 체제하에서 주도할 때 훨씬 더 잘 작동한다. 이런 색안경을 낀 앤드리슨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고방식은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제도(예를 들어 언론의 자유), 기관에 반대하며, 평등주의를 경멸하고, 소외된 집단이 겪는 문제는 그 집단 스스로 만들어 낸 문제라고 생각한다. 신반동주의 사고방식은 결과와 상관없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최대한 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이면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깨부수라(move fast and break things)"는 마크 저커버그의 말은 차라리 온건주의자의 주장처럼 들린다.

이런 주장들이 소름 끼치고 극우주의처럼 들린다면, 그건 이런 주장들이 실제로 소름 끼치는 극우적 주장이기 때문이다. 앤드리슨은 자기가 권위주의(독재)에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주장을 들어보면 결국 어떤 독재자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일 뿐이고, 신반동주의 권위주의자들은 왕처럼 지배하는 CEO를 원하는 거다. (대표적인 신반동주의자인 커티스 야빈은 스티브 잡스가 캘리포니아를 통치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Inside the New Right, Where Peter Thiel Is Placing His Biggest Bets
They’re not MAGA. They’re not QAnon. Curtis Yarvin and the rising right are crafting a different strain of conservative politics.
커티스 야빈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신반동주의자들을 다룬 2022년 기사

단어를 잘 만들어 내는 독일인들이라면 무섭고도 황당한(horrifying and silly) 이런 주장을 묘사하는 단어를 만들었겠지만, 자기가 세상을 통치하는 CEO의 후보, 혹은 적어도 그 대리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정말로 진지하게 한다. 커티스 야빈의 주장이 책으로 나올 수 있게 후원했던 억만장자 피터 틸(Peter Thiel)이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민주주의와 자유는 공존할 수 없다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앤드리슨이나 틸 같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런 생각에 동의하게 만들까? 막대한 돈과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진짜 엘리트 계급이 아닌 척 하기 때문이다.

앤드리슨이 "그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다"라고 할 때, 그는 자신을 "우리"에 슬쩍 집어 넣는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거짓말쟁이들"이 "상아탑에 앉아서 세상의 모든 걸 다 아는 전문가처럼 행세하는 학자들"이며, 그들은 "현실 세상과 단절된 채, 망상에 빠져 있는, 선거로 선출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리더들로, "현실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신(God)처럼 행동한다"라고 주장한다.

마크 앤드리슨 (원본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그런데 그가 말하는 거짓말장이들이 사실은 자기가 만들어낸 기술로 인해 현실 세계에 일어나는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마음껏 허위 정보를 확산하고, 사기를 조장하고, 인종청소를 하는 정권을 도와주는 등의 행동을 자행하는 테크 업계의 리더들이다.

이렇게 비판의 대상을 슬쩍 바꾸는 건 오래된 방법이지만, 여전히 잘 먹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바닷가에 저택을 소유한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가 자기를 미국의 엘리트 계급과 싸우는 사람처럼 묘사했을 때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묘사하는 악당이 결국 트럼프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앤드리슨이 자기 글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테크놀로지가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임금을 낮추고, 불평등을 심화하고, 건강을 위협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사회를 타락시키고, 아이들을 망치고, 인류를 해치고, 미래를 위협하며,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직전에 있다고 말한다"라고 했을 때, 누가 그들이고, 누가 우리인가? 우리의 임금을 낮추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은 테크놀로지(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표현이지만)가 아니라, 앤드리슨 같은 수퍼리치들이다.

책임을 엉뚱한 데 돌리는 앤드리슨이나, X에 유치한 밈(meme)을 포스팅하면서 자기가 속한 기득권층을 공격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는 일론 머스크에게 속으면 안 된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를 최대한으로 하자는 주장은—앤드리슨이나 틸,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낙관하는 것을 제외하면—낙관주의와 무관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비관주의이며, 궁극적으로 인류에 대한 비관주의다.

(이미지 출처: MSNBC)

좀 더 어둡고, 어쩌면 슬픈 의미에서 신반동주의 프로젝트는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계급이—인간과 기계가 합쳐진 하이브리드가 되어 화성에서 불멸의 존재로 살게 될—미래로 더 빨리 가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들이 싱귤래리티(Singularity, 기술적 특이점: AI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 이후의 미래를 앞당기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류와 지구에 끼치는 피해는 불가피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정도로 치부하는 건 불편하거나, 곤란하거나 괴로운 일은 돈으로 해결해 온 사람들, 죽음은 돈으로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망상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