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트럼프 사진
• 댓글 남기기어제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었다. 나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타임(TIME)'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 표지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현재 젤렌스키와 관련된 콘텐츠 하나를 출판사와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사전 홍보를 하려는 속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표지가 참 좋았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내 페이스북에 썼다: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은 가끔 의외의 선택도 하고, 종종 논란도 되지만 올해만큼은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듯. 이 사람 아니면 누가?
하지만 이번 표지는 다른 해와 좀 다르다. 한 인물이 등장해 정면을 노려보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과 함께 등장해서 저 멀리를 내다본다. 이건 디자이너가 젤렌스키의 연설을 많이 듣고 잘 연구했다는 얘기다.
젤렌스키는 자신은 국민의 한 사람이고 그저 대표만 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인데, 이 전쟁을 '민주주의 대 독재체제‘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하기 위한 아주 영리한 작업. 전시 지도자의 모범답안 같은 인물을 우리 시대에 목격하게 된 건 비극인 동시에 행운이다.
By the way, 젤렌스키와 관련된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기대하셔도 좋음!
하지만 쓰고 다시 읽어보니 올해의 표지가 다르다고 하려면 비교 대상을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올해의 인물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의 혼(Volodymir Zelensky & The Spirit of Ukraine)"이다. 따라서 타임이 평소에 찍는 전형적인–그 해의 인물이 혼자 등장해서 정면을 노려보는–사진과 함께 보여줘야 타임이 젤렌스키를 다르게 전달하려 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가 좋을까? 최근 몇 년 동안의 표지들을 빠르게 살펴보니 도널드 트럼프가 올해의 인물로 실린 2016년의 표지가 가장 대조적이었다. 타임은 반드시 좋은 의미에서만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지 않는다. 2007년에 푸틴이 선정된 게 좋은 예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에 트럼프가 선정된 건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었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로 세상이 크게 바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래서 페이스북 포스팅을 수정해서 아래와 같이 두 사진을 함께 실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등장한 표지 사진을 함께 올리자마자 내 포스팅에 붙는 '좋아요' 숫자의 증가세가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한 거다.
워낙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어떤 포스트가 인기가 있는지(젤렌스키 소식은 항상 인기다), 어느 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페북에 들어오는지(점심과 저녁 식사시간은 피하는 게 좋지만, 점심식사 직후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활발하다), 인기있는 포스팅에 좋아요가 붙는 속도는 어떤지(첫 30분 동안 100개가 붙으면 나쁘지 않고, 첫 15분 동안에 100개가 붙으면 상당히 인기 있는 포스트이며, 첫 10분 동안에 100개가 붙으면 좋아요 1천 개를 넘길 가능성이 높은 포스트다) 웬만큼 파악하고 있지만 이건 좀 특이한 현상이었다.
이미 올린 포스트를 수정할 경우 좋아요의 증가가 잠시 느려질 수 있는데, 이건 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거의 정지 상태에 근접하고 있었다. 이건 알고리듬이 내 포스트의 확산을 억제하고 있다는 얘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내 포스트 밑에 페이스북의 공식 메시지가 하나 떴다. 미처 화면 캡처를 하지 못했지만, "이 포스트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다"는 거다. 그런데 그 메시지의 작성자는 영어 사용자가 아닌 듯, 좀 애매한 표현도 섞여있었다.
혹시 내가 구글에서 찾은 2016년 타임지 표지가 포토샵으로 조작된 걸까? 확인해 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트럼프 표지를 지우고 올해 표지만 남겨 놓기로 했다. 그랬더니 멈추다시피 했던 좋아요가 다시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 경우 다시 증가 속도를 회복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소셜미디어 확산 알고리듬은 몇 분이라도 최신 포스트에 가중치를 준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페이스북 포스팅을 다시 보면서 트럼프 표지의 수수께끼가 떠올랐다. 그래서 과연 그게 조작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2016년 표지를 다시 검색했다. 그런데 그 표지는 조작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정말로 그해 타임지 올해의 인물이 맞고, 내가 게재한 사진도 조작이 아니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에서는 왜 그런 경고 메시지를 달았을까? 작정하고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유는 쉽게 밝혀졌다. 유에스에이투데이의 팩트 체크에 따르면 발단은 2020년 말, 바이든이 당선된 직후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린 거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내놓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2016년의 타임 표지를 걸어놓고 "Who agrees? (동의하시는 분?)"이라는 한 줄을 적어놓은 거다. 이 포스팅은 무려 1,700회나 공유되었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신문에 따르면 지지자들은 "100% chosen by God himself (하나님이 100% 선택한 사람)" 같은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트럼프가 등장한 타임의 표지는 조작된 게 아니고, 엄밀하게 말해(technically speaking) 페북의 포스팅도 가짜 뉴스는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2020년에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인 조 바이든과 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자) 카말라 해리스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트럼프가 등장한 사진을 보면 (타임의 표지에서 날짜는 아주 작게 등장하기 때문에 연도를 확인하는 건 쉽지 않다) 누구나 별생각 없이 올해의 인물이 트럼프라는 인상을 받는다. 4년 전에 이미 뽑혔지만, 4년 전 올해의 인물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참고로 2018년 타임지가 선정한 인물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살해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였다.)
따라서 트럼프가 등장한 표지 사진은 조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맥락 속에서는 엄연한 가짜 뉴스였다. 그런 이유에서 페이스북의 알고리듬은 트럼프가 등장한 표지를 가짜 뉴스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페이스북에 트럼프의 사진을 올린 건 2020년과는 전혀 다른 문맥에서다. 그리고 내가 그 사진을 사용한 문맥에서 2016년의 표지는 가짜 뉴스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2022년 아닌가.
여기에서 소셜미디어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가짜 뉴스 선별 알고리듬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가짜 뉴스에 등장하는 특정 사진이나 특정 표현을 통해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지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은 없는 것이다.
알고 스피크(Algospeak)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소셜미디어인 틱톡(Tiktok)에서는 요새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젊은층이 새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틱톡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금 특이한 데가 있다. 알고리듬의 자동 검열을 피해 가려는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이런 현상을 알고리듬과 말(speak)을 결합해 ‘알고스피크’라고 부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kill(죽다)’이라는 단어 대신 ‘unalive(살지 않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sex’를 ‘seggs’라고 쓰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틱톡의 알고리듬이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 존재하는 단어를 완전히 다르게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팬데믹(pandemic) 대신 파노라믹(panoramic)을 쓰고, 성소수자 그룹을 의미하는 LGBTQ에 모음을 적당히 넣어서 leg booty (다리 엉덩이)로 만든다.
틱톡은 왜 이런 단어를 검열할까.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단어가 금지된 게 아니다. 하지만 이 표현들은 가짜 뉴스나 혐오 발언과 자주 연결돼 있기에 해당 표현들이 들어가면 틱톡의 알고리듬이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확산을 억누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등장한 타임 표지와 다르지 않은 해결책이다.
지나치게 거친 방법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의 발언을 관리하고 가짜 뉴스와 혐오 표현을 적극적으로 걸러내지 않으면 광고주를 끌기 힘들다는 점이다. 발언의 자유를 극대화하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가 광고 수익을 내기 힘든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콘텐츠 확산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인플루언서들에게 문맥에 상관없이 확산을 억제하는 틱톡의 알고리듬은 큰 문제가 되고, 이를 우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알고스피크인 셈이다.
문제의 트럼프 사진은? 이건 페북의 알고리듬을 우회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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