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의 또 다른 회사 ④
• 댓글 6개 보기두 개의 차오몐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얘기일지 모르지만, 라초이가 미국 내 중국 음식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을 꼽으라면 요리 위에 얹는, 바삭하게 튀긴 면이다. 쉽게 부서지는 바삭한 면을 포장해서 팔기 시작한 게 라초이가 처음은 아니었다. 매사추세츠주 폴 리버(Fall River)에는 광둥성에서 이주한 프레데릭 웡(Frederick Wong)이 세운 오리엔탈 차오몐 컴퍼니(Oriental Chow Mein Company)가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가게가 튀긴 면을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오돌오돌 씹히는 튀긴 면을 차오몐으로 부르면서 혼동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중국식 볶음국수를 차오몐(炒麵)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1950년대에는 미국에서 차오몐 샌드위치라는 게 등장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중국식 볶음국수 차오몐을 햄버거 빵 사이에 넣은 것으로, 여기에는 바삭하게 튀긴 면이 들어간다. 이 메뉴는 미국 동부에서 많이 팔렸고, 심지어 핫도그의 대명사 네이썬즈(Nathan's)에서도 팔았다. 노동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었고, 사순절에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았다. 라초이는 이 변화를 눈치채고 튀긴 면을 만들어 공급하면서 기름에 튀겨낸 "차오몐 누들"이 중국 음식에 곁들이는 필수 품목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튀긴 면은 작은 중국 음식점과 가게에서 비롯되었지만, 라초이가 이를 집중 공략해서 주력 상품으로 삼은 것이다.
라초이의 홍보와 판매력에 힘입어 튀긴 차오몐은 인기를 끌었지만, 사람들은 애초에 먹던 요리(아래 왼쪽) 차오몐과 면을 튀긴 재료 차오몐(아래 오른쪽)을 혼동하게 되었다. 중국계 이민자들은 그 차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많은 미국인이 차오몐을 중국 음식이나 다른 음식 위에 뿌려 먹는—가령 샐러드에 들어가는 크루통(crouton)과 같은—고명 정도로 생각한다. 비중국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라초이의 마케팅 성공의 빚어낸 현상이다.
짐 헨슨과 라초이의 만남
196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중국 음식점이 증가하며 라초이가 장악하던 시장을 위협하게 된다. 1965년에 차별적인 미국의 이민법이 개선되면서 미국으로의 이민이 증가했고, 그렇게 들어온 중국의 이민자들은 전국에 식당을 열면서 굳이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아도 쉽게 주문해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라초이를 인수한 베아트리스 푸드는 라초이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해서 판매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젊은 인형공연자(puppeteer)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지만, 훗날 세서미스트리트(Sesame Street)와 머펫쇼(The Muppet Show)로 인형극을 인기 TV 장르로 탈바꿈시킨 그는 바로 짐 헨슨(Jim Henson)이다.
짐 헨슨은 라초이의 중국 음식을 홍보하는 방법으로 중국의 용을 인형으로 만들어 직접 연기했는데, 델버트(Delbert)라고 불렸던 이 용이 등장하는 TV 광고는 여러 편이 제작되었다. 아래의 영상은 그 광고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1:01 지점을 보면 이런 대화가 오간다.
"여보쇼, 차오몐 좋아합니까?"
"네, 그런데요."
"어떤 차오몐을 좋아하는데요?"
"(식당에서) 테이크아웃해서 먹은 차오몐을 좋아해요."
"라초이에서 나오는 차오몐을 한 번 먹어 보세요.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서, 테이크아웃해서 먹는 차오몐 못지 않아요."
"왜 그런 거죠?"
"왜냐하면 저 라초이용이 불을 뿜어 조리하기 때문이죠! 자, 이거 들고 계세요." (캔을 건네주고 불을 뿜는다)
"맙소사, 엄청난 세일즈맨(hot salesman)이네요."
두 캐릭터의 대화에서 용은 라초이의 차오몐이 "테이크아웃 못지 않다(as good as the takeout kind)"라고 말한 것을 잘 생각해 보면, 테이크아웃, 즉 식당에서 파는 중국 음식이 라초이의 제품보다 더 맛있다는 여론을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잘해야 동등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간편식
라초이의 이야기는 그 회사가 만들어낸 소스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라초이의 제품들은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가졌던 중국 음식(혹은 "동양" 음식)에 대한 오래된 환상을 반영할 뿐 아니라, 그들의 무지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그리고 그런 무지는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540만 명의 중국계가 살고 있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인이나 중국계 미국인과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담당자에게 중국 직원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어봐도 대답하지 못한다. 회사에 중국계 직원이 없다는 건 결국 제품에 드러나게 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미국에서 아시아 태평양계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품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서 마트에 침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라초이 같은 회사의 존재 가치가 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거다.
2013년에 만들어진 아시아 간편식 브랜드 놈즈(Nomz)의 경우 직원의 80%가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놈즈의 설립자 토니 우(Tony Wu)는 미국에서 아시아 음식에 대한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가령 트레이더조(Trader Joe's) 같은 매장을 보면 새로운 음식들이 계속 진입하고 있다. 이제 미국인들은 팬케이크나 비스킷에 의존하지 않는다." 트레이더조는 아시아계 식료품점이 아니지만 갈비, 베트남 쌀국수(pho) 같은 음식을 쉽게 볼 수 있다.
토니 우는 그래도 라초이가 맡았던 역할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판다 익스프레스(Panda Express, 중국식 패스트푸드점) 같은 것들이 없던 시절에 100년을 버틴 건 대단한 일이다. 라초이의 설립자들은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어 냈고, 숙주나물을 실내에서 키워 통조림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라초이는 오하이오주 아치볼드 공장에서 지금도 숙주나물을 만든다.) 라초이가 잘게 썬 야채를 섞어 통조림에 넣는 방식은 완전히 미국적인 것으로,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는 시도되지 않은 일이었다.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기자의 어머니는 통조림에 든 야채를 처음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한 결과로 중국 음식에 관한 왜곡된 인상을 주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라초이는 "중국 음식"을 대량 생산하는 길을 열었다.
미란다 브라운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유일한이 외국 문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하기 위해 아시아 음식을 단순화했다는 비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국에서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극에 달하던 시기에, 미국 시민이 될 수 없었던 사람이 자기 앞에 놓인 엄청난 사회적 장벽에도 백인 파트너와 손잡고 회사를 만들어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중국계 이민자들이 만든 식품기업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앞서 소개한 매사추세츠주 폴 리버의 오리엔탈 누들 컴퍼니(오리엔탈 차오몐 컴퍼니)는 후미(Hoo-Mee)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만들어 판다. 하지만 이런 작은 기업들은 전국적인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 수십 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라초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사업을 이어온 천킹(Chun King)은 비중국계 미국인이 만든 기업이고 (천킹은 라초이를 인수한 콘애그라에 인수된 후 1995년에 문을 닫았다) 근래 들어 라초이처럼 아시안 간편식 제품으로 비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천(Annie Chun) 브랜드는 1990년대에 한국계 미국인 애니 천이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초이 같은 대기업들 덕분에 미국에서 중국 음식이 유명해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걸 해낸 사람들은 중국계 미국인들이다. 용 첸 교수는 "미국 내 중국 음식의 인기는 중국 이민자들의 고된 노동과 성실함, 희생,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겪은 차별의 결과"라고 말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미국이 이들이 다른 업종에서 일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에 먹고 살 방법을 찾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식당업과 세탁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초이가 중국 음식을 미국 내에서 주류 음식 중 하나로 만들어 냈고, 그래서 중국계를 향한 외국인 혐오나 인종주의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 결과 중국계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던 작은 식당들이 가진 이미지에 피해를 입힌 것도 사실이다. 라초이가 "우리 제품은 위생적"이라고 홍보할수록 중국 음식점들은 불결하다는 이미지가 함께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중국계 미국인들이 라초이를 싫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중국계가 자기가 사는 곳에서 중국 식료품점을 찾을 수 없으면 대형 매장에 가서 라초이 브랜드 제품을 샀다. 유명한 소믈리에 벨린다 챙(Belinda Chang)은 중국에서 이민 온 자기 부모가 첫 30년 동안 중국 음식을 그리워하면서 중국 식료품점을 찾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0, 80년대를 뉴저지주 에디슨(Edison), 후에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보낸 챙의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멀리 떨어진 아시안 수퍼마켓에 가서 중국 식재료를 잔뜩 사와 채워놨다. 하지만 간장이나 마름 열매, 숙주나물처럼 중국 음식에 필수적인 재료가 급하게 필요할 경우, 라초이는 동네 수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챙의 어머니는 그렇게 급할 때가 아니어도 라초이에서 소개하는 레시피를 열심히 따라 하면서 미국화된 중국 음식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가 알고 있던 정통 중국요리와 라초이의 미국화된 중국 요리가 섞인 퓨전 음식이 만들어졌고, 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 내 미국인들은 챙의 어머니가 만든 퓨전 중국 음식으로 중국 음식을 처음 배웠다.
바로 그게 라초이가 이뤄낸 일이다. 중국 음식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시작점을 제공했고, 중국 음식을 잘 알고 만들던 사람들에게는 급할 때 구할 수 있는 대용품을 제공한 것이다. 라초이는 중국 음식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백인들에 맞게 변형된 메뉴를 주었고, 알고 있다면 중국 음식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미국식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전통적인 음식을 새롭게 요리하거나 문화유산에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는 태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건 분명 존중할 만한 태도다. 벨린다 챙의 말이 중국계 미국인들의 심정을 잘 요약해 준다.
"라초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제 인상은, 쓸만하기는 하지만 진짜 중국식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라초이가 있어서 좋았습니다(I guess my feeling for La Choy is that it worked, but it didn’t always feel super authentic to us, but we were glad it exis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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