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고의 정치 지도자 중 하나로 존경받으며 퇴임을 준비하는 앙겔라 메르켈. 이 사람에 대해 넘쳐나는 이야기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일화는 그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선택한 전공이 고등학교 시절에 유일하게 낙제했던 물리학이었다는 거다. 자세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작은 일화를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는 메타포로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사실인 것 같다) 메르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일화가 아닐까 싶다.

동독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목사의 딸로 자란 메르켈은 양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정치에 입문해서 총리 자리에 올랐고, 동성 결혼, 원자력 포기, 난민 문제 등을 전향적으로 해결하면서 우파 정당이었던 기민련(독일 기독교민주연합, CDU)를 중도로 끌어낸 지도자다. 특히 난민 문제의 경우는 자신이 속한 정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추진했고, 이 문제로 많은 국민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총리직을 잃지 않았다.

독일 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 있는 정치인이고, 정작 독일에서는 좋은 관리자일 뿐 독일을 바꾸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하지만, 세계인들이 메르켈을 좋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래 뉴욕타임즈 오피니언 칼럼이 그걸 가장 잘 설명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미셸 골드버그가 쓴 글 전체를 옮겼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카티 마튼(Kati Marton)이 최근 발간한 앙겔라 메르켈에 관한 매혹적인 전기 '총리(The Chancellor)'의 절정은 2015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내전과 국가 붕괴로부터 탈출한 난민들이 밀려들어 올 때 메르켈이 독일 국경의 봉쇄를 거부하는 장면이다.

메르켈 총리는 "만약 유럽이 난민 문제로 실패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던 유럽이 아닐 것"이라며 유럽연합의 다른 회원국들도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저는 유럽에서 어느 나라가 이들을 가장 나쁘게 대우하느냐는 경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웬만해서는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신중한 메르켈 총리에게 이는 정치적으로 도약에 가까운 변신이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보여준 도덕적 영웅으로서의 행동은 그가 남길 (정치적) 유산이 어떤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었다.

그해 말까지 백만 명의 난민들이 독일에 들어왔고, 그걸 본 많은 사람이 재앙을 예고했다. 마튼에 따르면 헨리 키신저는 항상 그렇듯 무신경하게 메르켈 총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난민 한 명을 받아들이는 건 인도주의적인 행동이지만, 100만 명의 낯선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은 독일 문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오." 마튼은 또한 필자의 (뉴욕타임즈) 동료인 로스 다우샛이 자신의 칼럼에서 독일이 "그만큼 많고 문화적인 차이가 나는 이민자들을 평화롭게 흡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바보"라고 한 말을 책에 인용했고, 행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이 독일이 받아들인 난민들이 메르켈의 "정치적 실패"가 될 것이라고 걱정한 것도 언급했다.

한동안 이런 비관론이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이기도 했다. 다우샛의 칼럼은 12월 31일 밤 쾰른에서 중동과 북아프리카계가 다수를 이룬 남성들이 수십 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끔찍한 폭력 사태를 보고 쓴 것이었다. 난민 유입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세력을 키우게 도와주었고, 이 당은 2017년에 94석을 얻어 원내 제1야당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정책이 영국민에게 겁을 주는 바람에 브렉시트를 지지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에 이를 선거운동에 이용했다. (링크된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선거운동 중에 "독일국민은 폭동을 일으키고 이 여자(메르켈)를 끌어내릴 것"이라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옮긴이) 메르켈 총리는 2017년 총선 이후 총리직을 유지했지만, 그의 정당 기민련(CDU)은 65석을 잃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이 지났어도 메르켈 총리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예고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최근 독일 선거에서는 난민 문제가 거의 이슈화되지 않았고, AfD는 힘을 잃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독일과 대서양 관계 전문가인 콘스탄츠 스텔젠뮐러는 "이번 이민에서 비롯된 이슬람 극단주의나 극단주의적 범죄가 상대적으로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전반적으로 이민자들의 대다수가 독일의 노동력과 독일 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튼은 "시간이 지나면서" 메르켈 총리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절대적으로 올바른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한다.

미국 ABC 방송의 독일 지국장을 지내고 9권의 책을 집필한 카티 마튼이 메르켈에 대해서 책을 쓰게 된 계기도 난민 문제였다. 마튼의 부모는 모두 저널리스트였던 동시에 헝가리 출신의 난민이었고, 공산정권 하에서 투옥된 경험이 있었으며, 조부모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희생자였다. (마튼은 세상을 떠난 유명한 외교관 리처드 홀브룩의 아내이기도 했다. 둘은 빌 클린턴이 홀브룩을 독일 대사로 보냈을 때 데이트를 시작했다). 2015년 여름에 메르켈을 보면서 마튼은 "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일을 추진하고도 무사한 걸까 생각했다"고 한다.

독일인들이 메르켈의 결정을 받아들인–그리고 많은 경우 환호했던–이유 중 하나는 독일과 독일의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독특한 관계에 있다. 독일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깨우침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고 많은 국민들이 이(난민 수용 문제)를 속죄(redemption)의 기회로 생각했다.

마튼은 "열차가 반짝이는 뮌헨역에 들어서자 지친 남녀, 어린이들이 승강장에 늘어서서 환호하는 시민들이 '독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표지판을 가득 들고 있는 걸 보았다"고 썼다. 자원봉사자들이 학교와 상점들을 기숙사로 개조했다. 스텔젠뮐러는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인도주의적인 구원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을 기뻐하다 못해 흥분했다"고 했다.

그러나 난민들은 좋은 이미지 이상을 가져다 주었다. 출산율이 낮은 고령화 국가에서 그들의 노동력은 큰 도움이 되었다. 스텔젠뮐러에 따르면 독일 경제가 "팬데믹 이전에 일손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시장과 기업들 사이에 난민들을 돕겠다는 실질적인 요구와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물론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도 배워야 할 모델로 생각하는 현장실습을 통한 직업 교육의 경험과 역사가 수십 년에 이른다."

독일의 난민 경험이 주는 교훈이 모두 진보진영의 환영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메르켈은 중도우파 정당의 리더이고, 그의 정부는 동화(assimilation)에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마튼은 메르켈 총리가 2015년 한 당내 회의에서 "난민들은 독일적인 방식에 적응할 책임이 있다"며, "다문화주의라는 건 허울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을 언급한다.

독일에 도착한 난민들은 독일어를 배워야 했고 (그들의 주거지가) 게토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정착했다. 마튼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도시 주변에 이민자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프랑스와 영국 같은 상황을 피하기로 굳게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메르켈 총리는 난민을 끊임없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논란이 되는 합의를 끌어내어 터키가 망명을 원하는 난민을 받아들여 이들이 계속해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았다. 메르켈이 감정을 현실정치(realpolitik) 보다 앞세웠다면 총리 자리를 16년 동안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다른 나라들이 국경에 철조망을 치던 시기에 곤경에 빠진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엄청난 일을 해냈다. 전쟁과 생태학적 재앙으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아 떠도는 요즘 같은 시기에 독일의 행동은 다른 나라들에 교훈을 준다.

마튼은 "이제 우리에게는 난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예, 하나의 케이스 스터디를 얻었다. 세계가 메르켈의 예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메르켈 총리는 2015년 당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우리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