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대형 트레일러 (미국에서는 흔히 "세마이semi"라 부르는) 트럭을 자주 보게 된다. 트레일러 뒤에 적힌 글자 중 위의 두 줄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줄에 US MAIL이라고 적힌 걸 보면 미국 우체국(USPS, U.S. Postal Service)의 차량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트럭을 추월하면서 옆을 보면 정작 저런 트레일러를 끌고 있는 트럭은 우체국 소속이 아닌 민간 트럭회사다. '미국 우체국 화물을 왜 민간기업이 운송하지?' 이런 궁금증에 이런 트레일러를 보면 뒤에 적힌 문구를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미국에서 장거리 운전은 무척 지루하다). 아래 사진은 내가 찍은 게 아니지만, 전형적인 경우이니 한 번 자세히 보자. 우선 HOOVESTOL INC. ST. PAUL MN라고 적힌 작은 글씨가 보인다.

ST. PAUL MN는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을 의미하는 것이고, HOOVESTOL INC.는 이 트럭회사의 이름이다. 이 회사는 미국 우체국과 장기계약을 통해 미네소타와 주변 지역에서 도시 간 우편물 대량운송을 담당하는 회사다. 물류 업계에서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고 부르는 배달의 최종 단계는 우체국 트럭을 탄 집배원이 하지만 중간 단계에서 대량의 화물을 운송할 때는 미국 우체국도 이렇게 외부업체에 맡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HOOVESTOL이라는 이 회사는 작은 화물운송 기업들을 여럿 인수해서 덩치를 키운 회사인데, 이 회사 역시 더 큰 기업에 올해 초에 인수되었다고 한다. 항공사들이 해온 것처럼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작업이 화물 운송 업계에서도 진행 중이다. 사실 운송은 화물이나 승객이나 같은 방식을 따른다. (흔히 '물류'라고 번역되는 logistics는 승객, 화물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미국에서 개인이나 회사가 소포를 보낼 때는 우체국을 이용하거나, UPS, FedEx를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른 회사들도 있지만 다 합쳐봐야 시장 점유율이 1%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리점을 쉽게 찾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본격적으로 떠오르던 2000년대 초만 해도 배달업체들이 꽤 다양했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페덱스로 배달이 된다고 했는데, 정작 집 앞에 오는 트럭은 내가 모르는 작은 지역 운송회사인 경우가 흔했다. 상자는 페덱스 상자인데, 다른 회사 직원이 집 앞에 놓고 간다.

이유는 이렇다. 미국이 워낙 땅덩어리가 넓기 때문에 아무리 큰 회사도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 없고,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비효율적일 때가 많다. 물량이 적은 지역을 위해 많은 트럭들(fleet)을 유지하는 건 낭비다. 그런데 그 지역만을 커버해온 독립 운송회사는 다르다. 일단 동네의 지리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유리하고, FedEx나 UPS 같은 대형회사들에서 물량을 받으면 수지타산이 맞출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작은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대형 업체들은 특정 지역에서는 지역 운송업체에게 라스트 마일을 맡긴다. 아직도 지역별로 그런 기업들이 성업 중이다.

아마존의 물류업 평정

게다가 미국의 물류업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연말로 다가가면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면서 일제히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기 때문에 물류 업계는 비상 상황에 돌입한다. 연말 2, 3개월은 물류 기업들이 한시적 고용을 늘리고, 렌털 회사에서 크고 작은 트럭들을 빌리기 바쁘다. 늦가을부터 12월 말까지 각종 렌털 트럭들이 'FedEx' 'USPS' 같은 종이쪽지를 한 장 달랑 붙이고 배달을 하는 시즌이다.

2014년만 해도 위의 사진과 같은 트럭에 붙은 종이쪽지는 UPS, USPS(우체국), FedEx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2015년이 되면서 이렇게 빌린 트럭에 Amazon이라는 로고 쪽지가 붙은 걸 처음 발견했다. '어라, 아마존이 직접 배달을 하네?'

물론 그런 트럭을 본 건 나만이 아니었다. 업계에서는 아마존이 운송회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퍼졌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는 이미 아마존이 3대 물류 채널의 주요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전자상거래의 배달 물량으로 재미를 보고 있었던 이들은 아마존이 직접 배달을 한다는 소식에 긴장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는 "우리는 물류기업들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라, 주문이 밀리는 연말 시즌에 배달 시간을 지키기 위해 추가로 배달 트럭을 투입할 뿐"이라고 물류업 진출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아마존은 이때 이미 UPS, FedEx, USPS에 배송료를 깎아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막강한 시장 점유율을 무기로 하는 아마존의 가격 깎기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동시에 아마존이 자체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아마존의 요구는 "값을 깎아주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배달하겠다"는 위협으로 들리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이제는 아마존 프라임이 선명하게 도색된 대형 트레일러들이 돌아다니고 프라임 에어(Prime Air) 리버리를 단 화물운송기가 등장하자 페덱스는 더 이상 미국 내에서 아마존의 소포를 배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게 2019년의 일이다.

페덱스는 월마트, 타겟과 같은 다른 리테일 매장들이 전자상거래에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마존 외에도 큰 손 거래처가 많이 등장했을 뿐 아니라, 아마존의 상품을 배달해서 벌어들이는 매출은 전체의 1.8%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 정도의 수익 때문에 아마존의 요구에 쩔쩔매며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거였다. 게다가 아마존이 아무리 직접 물류업을 해도 페덱스가 월등히 많은 물량을 소화하기 때문에 자신들과의 경쟁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소리를 친 지 몇 달 만에 "아마존은 물류업의 경쟁자"라고 털어놓았다. 이번에 발표된 시장 점유율(아래 Axios 도표)을 보면 페덱스는 그 해에 처리 물량에서 아마존에 따라 잡힌 상황이었다. 아마존은 현재 미국 소포 운송의 21%를 직접 배달하고 있는데 이는 페덱스의 16%를 훌쩍 넘어 UPS의 24%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내년이면 UPS마저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마존이 배송하는 상품들은 아마존 장터(marketplace)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배송 물량도 포함하고 있다. 즉, 아마존은 자체 물류망을 하나의 서비스로 만들어 돈을 버는 것이다. 사실 자체 수요를 소화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을 서비스화("as a service")해서 수익원으로 삼는 건 아마존의 유명한 플레이북이다. 아마존 장터는 아마존이 구축한 판매 시스템을 외부 상인들에 공개해서 수수료를 받는 것이고(아마존은 이를 도입한 후에야 비로소 흑자로 전환했다), 아마존의 물류센터(fulfillment center)도, 웹서비스(AWS)도 모두 그렇게 했고, 이제는 비행기와 트럭의 플리트(fleet)를 갖춘 물류망 자체가 별도의 수익원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단숨에 전통의 페덱스를 누른 후 UPS를 추격 중이다.

대결을 기다리는 거인

아마존은 반독점법 위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마존이 전 세계 리테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기 때문에 독점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방어를 한다. 물론 이건 겸손을 가장한 엄살이고 아마존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는 정황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미국 시장을 넘어 해외를 보면 아마존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중국의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알리바바는 아마존과 다른 듯 닮은 모델로 중국 시장을 장악하고 전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마존이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 '익일 배송(Next Day Delivery)'을 하고 있다면 알리바바는 전 세계 어느 곳으로든 72시간 내에 상품을 배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5년까지 1.4조 달러(1,683조 원)로 성장하는 글로벌 전자 상거래 시장을 두고 이 두 기업이 대결하면 어느 쪽에 승산이 있을까? 아마존이 자체 물류센터에 로봇을 투입해 빠르게 자동화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알리바바는 물류를 담당하는 자회사 차이냐오(Cainiao)를 통해 물류 자동화를 이룩하고 있다. 즉, 아마존이 하는 건 알리바바도 한다.

그런데 운송, 배송방식에 차이가 있다. 아마존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체 물류망을 구축하고 4만 개가 넘는 트레일러, 75대의 화물운송기를 통해 직접 상품을 배달하고 있지만, 알리바바는 UPS를 비롯한 대형 운송회사와 각국의 우체국 시스템에 의존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물론 아마존도 해외 배송에는 다른 물류회사를 이용한다. 아마존과 국내 거래를 끊은 페덱스도 아마존의 해외 물량은 여전히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빠른 배송이 가능한 프라임 배달은 21개 국가에서만 가능하고, 그것도 국가에 따라 13~130달러에 이르는 연회비를 내는 회원들만 누릴 수 있다. 반면 알리바바는 190개 국가에 (일부 제품의 경우에 한해) 72시간 내에 무료 배달을 하고 있고, 앞으로는 3달러의 배달비만으로 전 세계에 배달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같은 제품을 아마존에서 살 때 보다 알리바바에서 구입할 경우 훨씬 싸다. 아마존이든 알리바바든 결국 "세계의 생산공장"인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파는데, 알리바바의 경우 공장과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초기운송 비용이 적게 들 뿐 아니라 중간상인을 없애 비용을 추가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세관에서 허가를 받는 과정에 걸리는 시간도 과거 한 달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몇 분 대로 줄었다. 두 기업이 각자 자국 시장을 장악한 후에 경쟁을 한다면 결국 유럽이 최대 승부처가 될 텐데 이런 상황에서 경쟁한다면 아마존이 알리바바를 이길 수 있을까?

아마존의 물류시장 장악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건 미국의 물류시장일 뿐이다. 아마존에 앞서 전자상거래에서 남은 세계 시장을 장악하려는 알리바바의 눈에 아마존은 로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