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쟁
• 댓글 남기기며칠 전 일이다. 나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오후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내가 사는 곳에는 제법 긴 자전거도로가 있는데, 산책로를 겸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자전거를 타지 않고도 이 도로를 이용한다. 그렇다보니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반려견들은 밖에 나와서 볼일 보는 걸 선호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산책시키는 반려동물이 길가에 변을 보면 비닐 봉투에 싸서 치워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전거도로/산책로는 아주 긴데 쓰레기통은 찾기 힘들다는 거다. 결국 비닐 봉투에 넣은 똥을 긴 산책 내내 들고 다녀야 하는 거다. 못할 일은 아니고 함께 사는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으면 치우지 않거나 (강아지가 일을 보면 일단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눈이 마주치면 치우는 사람들이다) 치웠어도 배변 봉투를 길에 던지고 가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그런데 그렇게 무단투기를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안 보이는 곳에 슬쩍 던지고 가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이거다:
밝은 청록색 배변 봉투를 잘 묶어서 눈에 아주 잘 띄는 곳에 올려놓는 거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는 건 떳떳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곳에 보란 듯 놔두는 건 좀 황당하다. 지자체에서 마련한 배변봉투함에 버리는 행위도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이건 조금 다르다. 눈에 띄지 않게 숨기는 행위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이 옆을 지나는 사람들이 보면서 '무단투기한 개똥이 저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잠깐이나마 기분이 상한다.
그런데 미국에 살다보니 이런 행동이 흔하지는 않지만 낯설지도 않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 혹은 논리를 상상해봤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은 걸 안다. 하지만 기왕 룰을 어기고 환경을 파괴할 바에는 그걸 처리, 회복하는 과정을 쉽게 하자는 결정을 한 거다. 배변 봉투를 길 반대쪽 바위 아래에 숨길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도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구석구석이 뒤지며 청소해야 하는 추가의 노력을 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바위 주변이 그렇게 꼭꼭 숨긴 배변 봉투로 쓰레기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눈에 띄는 곳에 놔두면 쉽게 치울 수 있다.
바위 위에 두는 건 보기 좋은 행동은 분명 아니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 대신하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라서 그렇다. 하지만 한국에서 흡연자들이 절대 꺼낼 수 없는 틈에 담배꽁초를 쑤셔 박는 행동을 흔히 보아온 내게는 차라리 눈에 잘 띄고 청소하기 쉽게 버리는 게 나아 보였다. 사회가 쓰레기 무단투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면 말이다.
측정할 수 없으면
기후 위기와 관련한 뉴스를 볼 때마다 들었던 궁금증이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산업에서 몇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측정할까? 눈에 보이는 매연도 측정이 쉽지 않은데 이산화탄소나 메탄(메테인)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스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건 어떻게 측정할 수 있기에 감축 목표까지 설정할 수 있는 걸까?
답부터 말하면 '측정하지 못한다'이다. 국가 간에 논의하는 온실가스 배출 수치는 실제 측정치가 아니라 추정치다. 어떤 종류의 차량이나 화력발전소가 어떤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는지를 확인한 후 특정 국가에서 판매된 연료의 양, 자동차들의 총 주행거리처럼 측정 가능한 수치를 곱해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 데이터에는 구멍이 많다. 2015년에는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중국이 보고한 것보다 17% 많은 양의 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논란이 되었다. 말이 17%이지, 이 양은 독일 전체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보다 많다.
자주 인용되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명언 중 하나가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하지 못하면 개선할 수 없다(You can’t manage what you can’t measure; you can't improve what you can't manage)"는 말이다. 인류가 처한 기후 위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관리할 수 있어야 하고, 관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치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같이 각국이 경제 활동량에 근거해 추정치를 보고하는 방법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정확한 보고는 대부분의 경우, 특히 중국과 같은 대량 배출국의 경우 자국의 이익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배출량을 속이거나 숨기는 것은 당장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바위 뒤에 배변 봉투를 숨겼다고 해서 그 쓰레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현재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오는 금요일(11월 12일)에 끝난다. 이런 모임들이 그렇듯 정치인들이 얼굴을 내밀고 좋은 말을 하고 떠나면 실무진이 남아 진정한 변화를 끌어낼 방법을 도출해야 한다. 지금 바쁘게 진행 중인 과정이 그거다. 하지만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아킴 슈타이너 유엔개발계획 총재는 오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간에 세운) 약속을 정말로 지키는지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게 기본이다. (측정이) 불가능하면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 투명성이 없으면 서로를 신뢰할 수도 없다. 이번 주에 도출하려는 세부 계획이 그거다"라고 설명했다.
각 나라가 쓰레기(=온실가스)를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 버리고 있다면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공들여 마련한 개선 목표는 빗나가 목표가 되고, 개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나라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 왜 우리만 애써야 하느냐는 회의론이 퍼지게 된다.
인공위성의 전쟁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많은 민간단체와 정부 기관의 협력으로 측정 방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아래의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각종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측정하는 장비를 비행기에 싣고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실제 배출량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사용하는 방법은 문제의 핵심인 '이해의 충돌'을 해결하지 못한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중국, 러시아, 그리고 중동 국가들이 다른 나라의 관측 비행기들이 상공을 날아다니게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측정하는 비행기를 미국 상공에 보내겠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국 자국의 관측용 비행기만 허용할 것이고, 이는 측정치의 객관성을 해친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가 대량의 메탄가스를 유출했고, 그 사실이 발각된 경위를 설명하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무료로 공개해 둔 것 같다. 굳이 전문을 읽지 않아도 훌륭한 그래픽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러시아는 이란에 이어 천연가스 생산 세계 2위의 국가인데,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Gazprom)이 운영하는 가스관이 손상되어 한 시간에 395t의 속도로 엄청난 양의 메탄이 대기 중으로 새어 나온 것이다.
이번 당사국총회와 관련된 기사를 팔로우했다면 눈치챘겠지만, 메탄가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메탄(CH4)은 온실가스 중에서 이산화탄소(CO2)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는 온난화의 주요 범인인데, 이산화탄소에 비해 잠재적 온실효과가 무려 28배, 20년 이상 장기적인 영향으로는 무려 80배가 넘는 파괴력을 갖추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산화탄소는 나무 등을 통해 회수가 가능하지만 한 번 대기 중으로 빠져나간 메탄가스는 회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메탄가스를 줄이는 것이 어떤 노력보다도 큰 효과를 낸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를 발견한 건 유럽우주국(ESA) 4년 전부터 운영하는 대기오염 측정용 인공위성 센티넬-5였다. 유럽우주국의 신고로 러시아는 가스관을 수리했지만 이미 많은 양의 메탄이 빠져나간 후였다. 이 일은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는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모르거나 허위 보고한다는 것이고(러시아는 한 해에 4백만 톤의 메탄가스를 배출한다고 보고했지만, 국제기구의 계산에 따르면 1천 4백만 톤에 가깝다), 다른 하나는 인공위성은 이들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좋은 도구라는 사실이다. 궤도를 빠르게 돌면서 감시를 하는 위성은 이제까지 추정만 할 수 있었던 온실가스 배출량의 '실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따라서 기존 관측 위성 외에도 온실가스 배출을 감시하고 배출량을 측정하는 인공위성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협력해서 중국과 러시아의 배출을 감시하는 데 인공위성을 사용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를 중국과 러시아가 곱게 들을 리 없다. 이들은 다른 나라(그것도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가 다시 들어온 나라)의 위성이 측정한 수치를 받아들일 나라들도 아닐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로켓을 통한 위성 띄우기가 가능한 나라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2016년에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CarbonSat을 발사했고,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측정하는 인공위성을 여러 대 띄우겠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서방세계의 비판적 시각을 거부하면서 관측 위성을 직접 띄우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각 나라가 상대방의 측정을 믿지 못하겠다며 자체적인 관측 위성을 띄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해결 가능한 문제를 두고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인공위성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 21세기 인류의 현주소인 건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측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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