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 톤 탯 ① 낯선 스타트업
• 댓글 남기기지금부터 9년 전인 2012년, 페이스북이 이스라엘의 작은 스타트업 하나를 인수했다는 기사가 떴다. 페이스북은 이름도 비슷한 페이스닷컴(Face.com)이라는 기업을 6천만 달러(약 7백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을 주고 샀다. 같은 해에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를 주고 인수한 것과 비교하면 작은 액수였지만, 페이스닷컴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기업이었고 당시 페이스북 역시 지금처럼 큰 기업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이 페이스닷컴을 인수한 이유는 이 스타트업이 'Photo Finder'와 'Photo Tagger'라는 두 개의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회사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거다. 페이스닷컴의 인수는 단순한 애퀴하이어(acqui-hire: 팀을 데려오기 위해 회사를 인수하는 것)가 아니었다.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에서 얼굴을 확인하고 자신이나 친구의 이름을 태깅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은 당시 "모바일 피봇(pivot)"을 외치며 스마트폰 앱을 강화하던 페이스북에 중요했다. 페이스북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모바일에서의 승리였고 인스타그램 앱은 물론 페이스북 앱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리고 이들이 소셜미디어임을 생각하면, 친구들의 얼굴을 찾아내어 태깅하는 기능은 그야말로 '킬러앱'이 될 것이었다.
페이스북의 포기 발표
최근 메타(Meta)로 기업 이름을 바꾼 페이스북은 며칠 전 뉴스룸을 통해 그동안 사용하던 안면인식(facial recognition) 기능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닷컴 인수 이후로 꾸준히 발전해온 페이스북의 안면인식 기술은 사용자가 사진을 사이트나 앱에 업로드하는 순간 사진 속 인물들이 자동으로 인식되고 태깅되는 수준에 도달했고, 사람들은 이 기술이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1/3 이상이 이 기능을 켜놓고 있었다). 페이스북 뉴스룸에 따르면 "그동안 이 기술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계속되는 불확실성 때문에 안면인식 기술을 적절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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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결정은 바로 적용됐다. 페이스북 설정 페이지에 가면 사용자들은 이 기능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페이스북도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할 수 없게 되고, 무엇보다 사용자의 템플릿(template)도 곧 삭제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템플릿이란 '안면 템플릿(facial template)'을 가리킨다. 사진 속 인물의 얼굴 속 다양한 요소들의 크기와 거리 등을 수치화한 것으로, 안면인식 기능이 인물을 인지했을 때 마치 지문처럼 신원을 식별하는 ID로 사용된다. 페이스북은 이 정보를 삭제한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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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나의 얼굴이라는 개인정보는 잘 보호가 되는 걸까?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선 페이스북이 가지고 있던 내 얼굴의 템플릿을 없앴다고 해서 10년 가까이 정교하게 다듬어온 안면인식 기술을 던져버린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이 이 기능을 없앤 것은 일반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지 페이스북이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며, 페이스북이 앞으로 "당신(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자동으로 인식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다. 페이스북은 "적절한 경우"에는 이 기술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페이스북이 이렇게 안면인식 기술로 부터 애매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반해, 민감한 여론에 신경쓰지 않고 미국에서 빠르게 사업을 확장 중인 안면인식 기술 기업이 하나 있다. 바로 클리어뷰(Clearview) A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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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뷰 AI
베트남계 호주인인 호안 톤 탯(Hoan Ton-That)과 그가 미국에서 세운 클리어뷰 AI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뉴욕타임즈의 카쉬미어 힐 기자가 아주 자세한 기사와 팟캐스트를 통해 이 기업의 정체를 밝힌 작년(2020년) 초였다. 힐 기자는 한 제보자로부터 "최근 한 민간기업이 안면인식 기술로 만든 서비스를 미국의 각 도시 경찰들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이 서비스는 경찰이 이제껏 사용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서비스를 제공한 기업의 이름은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한 클리어뷰 AI였다.
힐 기자가 그 회사의 주소를 찾아보니 자신이 근무하는 뉴욕타임즈 건물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길래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가보니 그 주소는 가짜였고, 링크드인에 나온 세일즈 매니저의 이름도 가짜가 분명했다. 취재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고생하다가 결국 이 회사에 투자한 벤처캐피탈을 찾아냈고, 그곳에 찾아가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취재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크고 작은 미국 도시의 경찰뿐 아니라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DHS) 같은 연방조직들까지 이름도 생소한 이 기업의 클라이언트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서비스이기에 이렇게 인기일까? 미국 경찰들은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안면인식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성능이 떨어졌다. 안면인식 기술 자체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용의자의 얼굴과 매칭되는 데이터베이스에 있었다. 전과자가 아니면 얼굴이 경찰이 사용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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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스캔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안면인식 소프트웨어를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그리고 각 주와 도시의 경찰서에 '무료 한정판'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를 써 본 경찰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수년 동안 미궁에 빠진 사건의 용의자들을 단 몇 초 만에 찾아낸 것이다.
힐 기자가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건의 예를 들면 이렇다. 수사관들은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한 포르노 영상에서 순간적으로 등장한 용의자 남성의 얼굴을 캡처했지만, 전과가 없는 남자였기 때문에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클리어뷰는 이 사람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바로 찾아낸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용의자가 등장한 사진이 용의자 자신이 찍은 사진이 아니라, 한 헬스클럽에서 누군가 자신의 셀카를 찍어서 인터넷에 공유했는데 그 사진 속 거울에 이 용의자가 등장한 것이다. 용의자의 신원은 모르지만, 셀카를 찍은 사람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헬스클럽을 알아냈고, 그곳에 찾아가 회원 중에 있는 용의자를 확인, 체포한 것이다.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한 장면과 같은 이 일화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폰 카메라의 성능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 외에도, 타인에 의해 자신의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마치 내가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아도 (가입한 지인이 제공에 동의한 주소록을 통해) 페이스북은 내 정보를 가지게 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클리어뷰의 실력을 보여주는 예는 더 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가 나온 후 CNN은 호안 톤 탯을 스튜디오에 초대해서 직접 인터뷰를 했다. 이 영상을 보면 인터뷰어(기자)가 자신의 얼굴을 사용해 클리어뷰를 테스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클리어뷰 스마트폰 앱을 이용 자신의 얼굴을 찍는 순간 인터넷에 있는 줄도 몰랐던 자신의 옛날 사진까지 모두 올라왔다. 심지어 기자가 코 아래를 손으로 가리고 찍어도 클리어뷰는 아무런 문제 없이 그의 사진들을 검색해냈다.
하지만 기자가 가장 놀랐던 것은 자신의 십 대 때 찍은 한 단체 사진 속 자신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대목이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30대인 기자는 예전에 비해 체중이 늘었고, 십 대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클리어뷰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자 본인도 인정하지만 만약 모르는 사람이 이 두 사진을 비교한다면 놓칠 게 분명한데도 클리어뷰는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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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뛰어난 성능으로 용의자를 찾아내니 경찰서에서는 반기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1년 사용 비용은 (경찰서 규모에 따라) 1만 달러에서 2만 5천 달러에 불과하다. 수사관 한 명 연봉의 몇 분의 일에 불과한 비용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검거 실적을 높일 수 있다면 어느 경찰이 이를 사용하지 않을까?
프라이버시의 문제
그런데 클리어뷰 소프트웨어 사용을 금지한 주가 딱 하나 있다. 진보정치로 유명한 동부의 뉴저지주이고, 사용금지 명령을 내린 주 법무장관은 미국에서 시크교인으로는 처음으로 주 법무장관이 된 인물이다. 금지한 이유는 "심각한 데이터 프라이버시 침해"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온라인에 자발적으로 공개한 이미지 데이터를 긁어다가 사용하는 게 불법이냐는 것이다.
클리어뷰는 자신들은 공개된 데이터만 가져올 뿐이고 (가령 비공개로 설정된 인스타그램 계정의 사진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하지만 데이터의 주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가져간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클리어뷰의 생각은 다르다. 구글의 검색엔진이 웹을 크롤링할 때, 그리고 그 결과를 보여줄 때 데이터 주인들의 허락을 일일이 구하느냐는 것이다.
구글이 이미지 검색을 비롯해 웹에 공개된 정보를 보여주는 것과 자신들이 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클리어뷰가 미국 49개 주에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별문제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창업자에 대해서 알아보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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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즈의 기자의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진 건 클리어뷰AI를 사용하는 경찰이 인터뷰 중에 앱을 시연했을 때다. 기자가 경찰관의 폰으로 자신의 사진을 검색해보게 했는데 결과가 없었다. 잘 알려진 기자였고, 인터넷에서 얼굴이 완전히 공개된 사람이었는데 클리어뷰 앱에서는 검색 결과가 전혀 뜨지 않은 것. 게다가 그 일이 있은 후 그 경찰관은 갑자기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고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호안 톤 탯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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