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인 칼라브로 기자의 글은 카멀라 해리스와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로 시작한다. 해리스는 자기를 심층 취재하고 있는 칼라브로 기자를 자기 집, 그러니까 부통령 관저로 초대했다. 그렇게 찾아온 손님에게 집 곳곳을 소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부통령처럼 공식 관저에 거주하는 고위 공직자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있다. 관저에 걸거나 놓을 미술 작품을 내셔널 갤러리 같은 곳에서 임기 동안 대여해주는 거다. 백악관 같은 관저는 공직자의 임시 거처이지만,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건 공무의 일부이니 국립 미술관 입장에서는 몇 년 동안 전시 장소를 변경하는 셈이다.

공직자가 관저나 사무실에 걸 작품을 선택하는 건 단순히 자기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자기의 정체성과 정책 방향 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 아메리카 인디언을 학살하고 몰아낸 것으로 악명 높은—그리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좋아하는—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대통령의 초상을 걸어 놓은 게 대표적인 예다.

카멀라 해리스는 찾아온 칼라브로 기자를 데리고 관저 곳곳에 걸린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했는데, 기자는 해리스의 설명이 참 특이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여주면서 자기가 그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로 주제나 색, 조형적인 특징을 이야기하는 게 일반적인데, 해리스는 그림마다 "이건 인도계 미국인 작가가 그린 그림," "이건 게이 흑인 작가의 작품," "이건 일본계 미국인 작가의 작품"이라는 식으로 작가의 정체성만 소개하더니, "So you get the idea(왜 선택했는지 아시겠죠)"라고 말하고 끝냈단다. (뉴욕타임즈의 에즈라 클라인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그림 투어를 시켜줬기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라고 한다.)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부통령 관저 (이미지 출처: National Archives)

기자는 왜 카멀라 해리스가 그림 작품에 대한 자기만의 감상을 이야기하지 않는 건지 궁금했는데, 취재를 하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리스는 자기만의 생각을 밝히는 걸 아주 꺼리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해리스는 범죄자를 잡아 처벌하는 유능한 검사로 성장했는데, 그런 정체성이 트럼프 등장 이후 변화한 민주당의 방향과 잘 맞지 않았다. 해리스는 부통령으로서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바이든 정권'과 민주당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혹시 자기가 서툰 말로 실수를 해서 정권에 부담을 주는 것을 피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는 게 칼라브로 기자의 생각이다.

바이든의 선택

그렇다면 바이든은 왜 굳이 카멀라 해리스를 부통령으로 선택했을까? 바이든이 젊은 후보들과 당내 경쟁을 벌이던 2020년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당시에도 바이든은 형편없는 토론 실력으로 다른 후보들에 밀리고 있었다. 어차피 안될 싸움이니 그만 물러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바이든이 버틴 이유는 자기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하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판을 뒤집으며 승세를 잡기 시작했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그때 바이든을 밀어준 "뒷배"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유력 정치인 짐 클라이번(Jim Clyburn) 하원의원이다. 클라이번은 경선에서 승리한 바이든에게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는 흑인 여성 정치인을 지명해달라"고 했고, 바이든은 자기의 오랜 친구 클라이번의 부탁대로 두 명의 흑인 여성(카멀라 해리스와 현 LA 시장 캐런 배스)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한 거다.

짐 클라이번 의원과 조 바이든 (이미지 출처: WSLS)

그렇다고 해서 바이든이 자신의 신념과 무관하게 정치적 거래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바이든은 불변의 신념을 갖고 있기보다는 시대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하고, 그런 그가 보기에 미국은 (흑인) 여성이 다음번 대통령이 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부통령이 된다고 자동적으로 다음번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건 아니다. 부통령은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이점을 누리지만, 대통령의 옆에서 자기만의 정책, 혹은 문제 해결을 통해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 정치에서 정말 중요한 정책, 실패해서는 안 되는 정책은 대통령이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부통령에게 어떤 일을 맡겨야 하는지는 항상 애매한 문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요하기는 해도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성공할 가망성이 없는 문제를 부통령에게 떠넘기기 쉽다. 해리스는 무슨 숙제를 받았을까?

멕시코와의 국경을 통해 유입되는 난민의 문제("국경 문제")와 투표권 문제였다. 이 둘은 현재 미국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다. 남미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정과 마약 카르텔 때문에 난민이 밀려드는 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흑인들의 투표권 행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는 연방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시민권의 이슈다. 따라서 해리스가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둘 다 해결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남부 주들의 유색인종 투표 방해의 경우, 연방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현재 의회의 구성 때문에 관련 법안의 통과가 요원한 상태이고, 난민 문제/국경 문제는 바이든이 방치하고 있다고 트럼프가 끈질기게 공격하고 있지만, 사실 트럼프도 집권 4년 동안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경 장벽 쌓기처럼 보여주기 정책만 좀 추진하다가 팽개치다시피 했다. 이 문제는 이른 시일 내에 해결이 불가능하고 장기적이고 외교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그리고 트럼프와 공화당 입장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국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야 끊임없이 정권 탓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마련한 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멕시코와의 국경에 세우던 장벽 (이미지 출처: NBC News)

트럼프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이 두 이슈를 카멀라 해리스가 떠맡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해리스를 무능한 부통령이라고 비난한다. 카멀라 해리스의 자질 부족론이 자주 불거지는 배경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미디어 전략의 실수

혜성처럼 떠오른 스타 정치인 카멀라 해리스가 바이든 행정부의 부통령이 된 후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자 그게 바이든의 탁월한 전략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해리스가 빛을 보기 힘든 일을 하게 해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애초에 자신이 약속한 대로 "징검다리 대통령" 역할을 하는 대신 재선에 나서는 핑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해리스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건 해리스 본인의 문제, 혹은 실수였다.

카멀라 해리스와 관련해서 항상 등장하는 인터뷰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해리스가 국경 문제의 해결을 맡은 후 NBC 뉴스의 진행자 레스터 홀트(Lester Holt)와 만난 단독 인터뷰다. 홀트는 해리스가 국경을 직접 방문하지 않은 것을 언급하며 "국경을 방문할 계획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자주 받았던 해리스는 왜 자꾸 그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언젠가는 방문할 거예요. 우리는 국경을 방문했어요. 왜 이런 질문, 왜 국경과 관련한 질문들이 나오는지.. 우리는 국경을 방문했어요. 우리는 국경을 방문했어요"라고 반복한다.

하지만 홀트의 질문은 카멀라 해리스 본인이 국경을 찾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이를 분명히 한다. "(부통령께서는) 국경을 방문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해리스는 방어적인 태도로 "저는 유럽도 가지 않았죠"라면서 "질문하시는 초점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겠네요"라고 말한다. 시청자들은 해리스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래 영상)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을 빠져나갈 수 있는 준비가 채 안 된 상황에서 나온 실수였다. 부통령이 된 후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인터뷰였고,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바이든 행정부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인터뷰를 그르쳤다는 비난을 받고 심야 토크쇼에서 조롱감이 된 후 해리스는 움츠러들었고, 미디어를 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새로운 민주당의 정체성에 맞추려고 본래의 캐릭터를 발휘하지 못하고, 빛을 보기 힘든 일을 수행하던 순간에 나온 실수라 더욱 아팠을 것 같다.  

하지만 미디어에 항상 등장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이런 실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유명 정치인의 이름과 그가 했던 실언, 망쳤던 인터뷰를 검색하면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해리스는 이 인터뷰에서 그런 순간을 경험한 것뿐이다. 칼라브로 기자는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의원의 예를 들면서, 정치인이 인터뷰를 망치거나 미디어에서 실언을 했을 경우 가장 좋은 대처법은 더 많은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수십 개의 좋은 인터뷰가 나오면 실수한 영상은 수많은 영상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런데 해리스의 경우 레스터 홀트와의 인터뷰 이후에 미디어 출연을 피하면서 그 인터뷰가 자기를 대표하는 영상이 되게 만드는 진짜 실수를 한 거다.

이런 그가 미디어 활용의 천재라고 하는 트럼프를 상대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아주 힘든 싸움이겠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카멀라 해리스는 어떤 전략을 사용할까?

마지막 편, '카멀라 해리스 ④'에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