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국에 새로운 연방 공휴일이 탄생했다. '준틴스 독립기념일(Juneteenth National Indepedence Day)'라는 다소 낯선 이름을 가진 이날은 매년 6월 19일에 기념하게 되는데, 1986년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1월 셋째 주 월요일)가 연방 휴일로 지정된 후로 35년 만에 처음 탄생하는 연방 공휴일이 된다.

미국은 연방국인 데다가 지방자치제의 뿌리가 깊은 나라라서 공휴일의 개념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새해 첫날 같은 전통적인 휴일 외에 7월 4일 독립기념일이나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5월 마지막 월요일)같이 미국 연방의회가 휴일, 즉 봉급이 깎이지 않고 쉴 수 있는 법정 기념일로 결정한 날들이 대표적인 휴일이지만, 그 외에도 주마다, 혹은 타운마다 휴일로 정한 날들이 있다. 가령 유대계가 많이 사는 뉴욕, 뉴저지 일대에서는 '로슈하샤나(나팔절)' 같은 유대 명절에 학교나 직장이 휴무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번에 연방 공휴일로 지정된 준틴스는 텍사스를 비롯해 몇몇 주에서 이미 공휴일로 지켜져 오던 미국 흑인들의 '노예해방절'이다. 텍사스는 왜 이날을 휴일로 지정해왔는지, 그리고 정작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날은 1963년 1월 1일인데 왜 하필 6월 19일을 기념하는지, 그리고 왜 미국의 연방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에 이날을 연방 기념일로 선포했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해보려 한다. 이를 알면 2021년이 미국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의 진정한 원인

미국의 남북전쟁(Civil War)은 경제전쟁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역사학자들을 비롯해 미국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 전쟁이 궁극적으로 노예제 폐지가 핵심이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경제적, 정치적인 이슈들이 존재했지만, 그 모든 것을 촉발한 것은 노예제를 보는 시각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링컨의 북군이 반란을 일으킨 남부주를 공격한 가장 분명한 이유는 그게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영토와 주권을 지킬 책임이 있고, 당연히 나라가 쪼개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 왜 남부 주들이 반란을 일으켰을까? 핵심은 주(states)의 권리 주장이다. 남부 주들은 연방정부가 만든 법에 동의할 수 없으면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다. 그리고 물론 그 핵심은 노예제도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비롯한 미국의 보수 세력이 연방정부를 싫어하고, 축소하려고 노력하는 건 이렇게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링컨이 남부의 노예를 해방하려 했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미국은 서부를 향해 계속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는데, 링컨은 새로 확장된 영토에서는 노예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는 궁극적으로 미국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북부인들의 생각에 새롭게 확장되는 영토에서도 노예가 허용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남부 주가 소유한 노예는? 그건 차차 정치적,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부 주들은 서쪽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영토에서도 노예를 부릴 권리를 주장했고 결국 분리, 독립을 하기로 한 거다. 링컨은 당연히 남부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1861년 4월 12일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정치 9단 링컨의 노예해방

다시 말하지만, 링컨은 전쟁을 시작했을 때 남부의 노예들을 당장 해방하려 계획한 게 아니다. 우선은 새로운 영토에 노예제가 정착되는 걸 막으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노예를 해방해야 할 도덕적 명분 외에도 실질적인 이유가 생겼다. 남부인들이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를 전쟁에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컨은 전쟁 발발 이듬해인 1862년에 1차 경고를 한다. "반란을 멈추지 않으면 내년(1863) 1월 1일을 기점으로 노예를 해방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의 보좌관들조차도 노예제를 폐지하는 건 급진적이라고 반대했을 만큼 충격적인 조치였다.

일부에서 남북전쟁이 노예해방전쟁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링컨이 전쟁에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다는 거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노예제 폐지를 향한 노력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노예제도가 전쟁 중에 폐지되었기 때문에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전쟁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것이 주류 역사학자들의 생각이다.

남부군이 링컨의 경고를 무시하고 반란을 멈추지 않자 링컨은 예고했던 대로 노예제 폐지를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선언은 의회의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한 나라의 경제를 흔들 만큼의 강력한 변화를 명령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링컨이 국가수반이자 군 통수권자(Commander in Chief)로서의 권리를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본다. 자신의 권력을 확실하게 선언했을 뿐 아니라, 남부군을 지원하려던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을 효과적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에 대통령제라는 과격한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긴 미국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미국의 급진적인 제도가 유럽에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나라가 쪼개지는 것은 유럽국가들이 은근히 원하는 결과였다. (게다가 미국 남부의 면화 수출은 영국 경제에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하자 이 전쟁은 명목적으로도 노예해방전쟁으로 바뀌었고, 그렇게까지 선언했는데 남군을 도우려는 유럽국가들이 있다면 그 나라들은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게 된다. 그럴 경우 미국 남부의 독립을 돕기 위한 파병은 국내적으로도 큰 정치적인 부담이기 때문에 결국 남군 원조를 포기했다. 링컨이 남북전쟁이 끝나기 전에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정치 9단이 던진 신의 한 수 였던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해방 소식

물론 연방정부를 인정하지 않기로 하고 분리 독립을 선언한 남부 주들이 순순히 노예를 해방했을 리 없다.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갈수록 북군의 승리가 굳어졌고, 남군을 이끌던 로버트 리 장군은 1865년 4월 9일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5일 후인 14일에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전쟁의 공식적인 종료는 후임인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 5월 9일에 선언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미국의 많은 곳에서 흑인 노예들은 자신이 법적으로 해방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 지역 중 하나가 텍사스주였다. 텍사스주 흑인들은 노예해방이 선언된 지 2년 반이 지나고, 전쟁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후에야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북군 소장인 고든 그레인저가 1865년 6월 19일에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도착해서 링컨이 이미 1863년에 노예제를 폐지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를 선포했으니 노예제 폐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던 농장주들도 더 버틸 수 없었다. 텍사스주의 흑인들이 노예해방이 선언된 1월 1일이 아닌 6월 19일을 기념하게 된 기원이다. 준틴스(Juneteenth)는 흑인들이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결합해 만든 합성어로, 흔히 비문법적이라고 여겨지는 "Black English"에 해당하지만 이제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지 일 년째가 되는 1866년 6월 19일에 텍사스의 흑인들이 모여 주빌리 데이(Jubilee Day)로 기념한 후 매년 이를 기념하는 페스티벌이 열렸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노예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흑인들이 공원에 출입할 수 없었고, 결국 돈을 모아 10에이커의 땅을 사서야 많은 인원이 모여서 이날을 기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오면서 준틴스 행사는 부침을 거듭하다가 1970년대 말에 텍사스주 의회가 주의 공식 기념일로 인정하게 되면서 미국 흑인들 사이에 주요 기념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일부 주에서만, 그것도 흑인들만 지키는 명절이었지만, 21세기 들어오면서 경찰에 죽임을 당하는 흑인들의 문제가 불거지고, 이 문제를 끝내기 위한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확산되면서 준틴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트럼프 집권기를 지나면서 백인우월주의가 성장하자 이에 대한 반발도 함께 커졌고, 트럼프의 후임인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의회는 일부 주에서만 지키던 준틴스를 미국 내 정치적 변화를 반영하는 연방 기념일로 승격하기로 동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상원에서는 100명의 만장일치, 하원에서는 415 대 14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통과되자마자 바이든이 서명한 것이다.

그런데 잠깐. 그럼 당장 미국인들은 올해 6월 19일에 쉴 수 있는 걸까? 아쉽게도 19일은 토요일이다. 이럴 경우 나라에서 대체휴일을 정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보통 금요일, 혹은 월요일에 학교나 직장에서 휴무일로 정하는데, 올해 휴일은 이미 연초에 모두 결정되었기 휴무일이 아닌 곳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 조직 내에서 휴무하기로 하면 그만이다. 그게 미국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