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일부는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에 게재되었습니다.


대학생 때 유럽 여행을 가서 한 달 반을 돌아다녔는데, 다른 행선지로 가는 열차를 잘못 알고 탄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플랫폼 번호를 잘못 알아 온 친구의 잘못(과 하필 동일한 시간에 출발하는 열차라 별생각 없이 믿었던 불운)이었지만, 다른 한 번은 내 발음의 문제였다.

독일 남부의 한 기차역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려고 티켓 창구에 가서 출발 시간과 플랫폼을 물었다. 그런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유럽이라 타국의 지명을 말할 때는 항상 망설여졌다. 비엔나는 영어로 Vienna이지만, 독일어로는 Wien이고, 불어로는 Vienne이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역무원이 독일인이라는 생각에 "Wien(비인)"이라고 말했고, 역무원은 내게 열차 번호와 출발/도착 시간, 그리고 플랫폼을 알려줬다. 한 시간 후 열차가 도착했고, 온종일 걸었던 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객실의 문을 닫고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일어났고, 도착 시간에 딱 맞춰 행선지에 도착해서 내렸다. 그런데 플랫폼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비엔나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도저히 오스트리아 수도의 중앙역이라고 보기 힘든 시골 역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플랫폼에 적힌 이름이 독일어인 Wien이 아니라 불어인 Vienne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내린 다른 사람에게 "여기가 혹시 프랑스냐"고 물었다. "Oui, oui! France!"

Vienne, France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프랑스어 표기는 Vienne이지만, 프랑스에도 Vienne이라는 도시가 있고, 독일 역무원은 내 Wien 발음을 프랑스어 Vienne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n 사운드를 너무 강조했던 걸까?) 프랑스 Vienne으로 가는 열차를 알려준 거다. 나는 다시 열차를 타고 하루를 소비한 후에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의 공통된 지명

서울에는 강남구 신사동新沙洞과 은평구 신사동新寺洞이 있다. 하나는 새 모래(밭), 다른 하나는 새 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발음만 같을 뿐 다른 이름이다. 전라도 광주光州와 경기도 광주廣州 역시 발음만 같고 의미는 다르다. 하지만 중국의 광주는 (적어도 번체자 표기로는) 경기도 광주와 같은 이름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게 없고, 같은 한자 문화권에서 살다 보니 겹치는 지명을 피하기는 어려운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미국은 경우가 조금 다르다. 미국에는 고유한 인디언 지명도 많이 있지만, 아무래도 유럽의 이민자들이 점령해서 세운 나라이다 보니 고향의 이름을 가져다가 사용한 경우가 아주 흔하다. 당장 뉴욕New York는 영국의 요크에 New만 붙인 것이고,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뉴암스텔담Nieuw(=New) Amsterdam이었다. 말하자면 서울 사람들이 많이 이민 온 지역의 이름을 뉴서울(이렇게 쓰면 모텔 이름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이라고 짓는 셈이다.

미국 북동부 지역 6개 작은 주들을 통틀어서 뉴잉글랜드라고 부르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지역에는 영국식 지명들이 아주 많다. (가령 스완지Swansea 같은 지명은 미국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코네티컷주에는 뉴런던New London도 있는데, 이 도시 앞을 지나는 강 이름은... 템즈강이다. 이런 예들은 이민자들이 모인 나라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런 의미에서 미국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미국 코네티컷주의 도시인 뉴런던 앞을 흐르는 템즈강

하지만 그렇게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이름이 아니라, 그냥 미국 내에서 잘 알려진 도시 이름을 완전히 엉뚱한 지역에서 만날 때가 있다. 최근 랜덜 먼로Randall Munroe(이 사람이 그리는 웹 만화 xkcd는 전설적이다. 아직 모르신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길 권한다)가 그린 'No, The Other One'(거기 말고, 다른 곳)이 그런 지명들을 잘 모아서 소개하고 있다.

가령 애틀랜틱시티는 대서양(Atlantic Ocean)을 접한 뉴저지 해변에 있는 유명한 카지노 휴양지인데, 산이 많고 육지로 둘러싸인 와이오밍주에도 애틀랜틱시티가 있다. 댈러스는 텍사스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인데 서부 오리건주에도 있고, 텍사스의 또 다른 도시 휴스턴은 플로리다에도 있다. 무더운 남부 조지아주의 대표적인 도시인 애틀랜타가 눈 많이 오기로 유명한 북부 미시건주에 있는가 하면, 미시건주의 대표적인 도시인 디트로이트가 남부 캔사스주에도 있다. 구글이 위치한 실리콘밸리의 마운틴뷰가 하와이에도 있다는 건 차라리 이해할 만하다. '산 풍경'이니까. 그런데 몬태나주 산골에 맨해튼이? 청교도가 상륙한 플리머스가 중서부 인디애나주에? 중서부인 오하이오주에는 마이애미(Miami) 대학교가 있다. 그런데 그 대학교가 있는 도시는 옥스포드다.

랜덜 먼로, 'No, The Other One'

다행히 미국에 살면서 이름이 같다고 유명한 도시와 작은 도시를 착각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어리둥절했던 일은 있다. 오래전, 펜실베이니아에 살던 시절의 이야기.

깊은 산 속 저지쇼어

나는 내가 살던 펜실베이니아에서 차를 타고 몇 시간 떨어진 뉴욕으로 가던 길에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저지 쇼어(Jersey Shore:뉴저지 해안)’라는 이름의 소도시를 발견했다. 인구가 고작 4천 명밖에 되지 않으니 도시라기보다는 그냥 큰 마을 수준에 불과한 곳이다. 고속도로 옆에 그곳으로 표지판이 붙어 있지 않았으면 그 존재도 몰랐을 만큼 작은 동네다. 이 ‘저지 쇼어’라는 이름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펜실베이니아주가 어떤 곳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저지 쇼어라는 이름을 처음 발견한 것은 펜실베이니아주의 한가운데 위치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미국에는 주마다 대표적인 주립대학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많은 학교들이 ‘토지공여(Land Grant) 대학교’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를 해방하고 남북전쟁에 승리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 중 하나가 임기 중에 통과시킨 토지공여법이다. 링컨은 연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지를 무상으로 각 주에 제공해서 주립대를 설립하도록 했다. 1862년에 통과된 이 법의 덕택에 무려 100개가 넘는 학교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이전만 해도 각 주에 살던 학생들이 대학에 가려면 멀리 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에 가야 해서 대학교육의 기회를 놓쳤지만, 주립대의 탄생으로 양질의 교육을 자기 주에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주가 주립대학교를 대도시 근처가 아닌 주의 한가운데 지었다. 그 주에 사는 학생들에게 가장 공평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자기가 사는 주에 있는 학교라고 해도 마차를 타고 며칠을 여행해야 갈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저지쇼어라는 동네는 펜실베이니아의 주립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런데 펜실베이니아는 바다를 접하지 않는 주이고, 주의 영토 대부분이 애팔래치아산맥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펜실베이니아라는 이름은 이 지역을 개척한 윌리엄 ‘펜’의 이름과 숲이라는 의미의 ‘실반/실베이니아’를 붙여 만든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미국인이 저지 쇼어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는 장소는 뉴저지의 해안이다.‌‌‌‌ 뉴저지는 펜실베이니아의 동쪽에 위치한 주로,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긴 해안선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그 긴 뉴저지의 해안선을 가리키는 이름이 저지 쇼어다.‌‌‌‌

흔히 ‘동부의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리는 애틀랜틱시티도 저지 쇼어에 있다. 게다가 미국의 케이블 채널인 MTV에서 2010년을 전후해서 방송한 인기 리얼리티쇼의 제목도 저지 쇼어였다. 젊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뉴저지의 해안가에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촬영, 편집한 것이었는데 남자들은 근육 만들기에, 여자들은 쇼핑하는 데 집중하는 허영에 찬 모습을 보여주며 미국인들이 이들 집단에 대해 가진 문화적 편견을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저지 쇼어가 그렇게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보니 펜실베이니아의 고속도로를 지나던 운전자들이 산골 마을 저지 쇼어로 가는 표지판을 보고 뉴저지 해안가인 줄 알고 찾아와서 “해안이 어느 쪽에 있느냐”, “카지노는 어디 있느냐”고 묻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어떻게 해서 저지 쇼어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그 기원은 17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시절, 멀리 뉴저지주에서 태어나 자란 르우벤 매닝, 제레마이아 매닝 형제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했다. 그때 이미 동부의 많은 주가 인구팽창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아마도 경작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옆 주로 건너온 매닝 형제는 펜실베이니아를 남북으로 구불구불 관통하는 서스퀴하나강의 서안에 삶은 터전을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정착지에 ‘웨인즈버그(Waynesburg)’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왜 웨인즈버그라는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조지 워싱턴과 함께 영국군과 싸우며 큰 공을 올린 펜실베이니아 출신 장군 앤서니 웨인을 기리는 이름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마을의 첫 의사가 웨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설이다. 그 이름을 붙이게 된 사연이야 어쨌든 멀쩡한 이름을 갖고 있던 마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은 점점 커졌고, 술집들이 몇 개 생겨났고,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이 찾아와 술을 마시는, 말하자면 이 지역의 작은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웨인즈버그가 붙어 있는 서스퀴하나강의 동안에 또 다른 정착지가 생겨났다. 그 동네에는 당시 평판이 좋지 않았던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사람들이 몰려와 살았다. 이들은 강 건너 웨인즈버그의 술집에 가서 난동을 피우는 일이 잦아서 웨인즈버그 주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새로운 이주자들은 웨인즈버그를 무시하면서 매닝 형제가 지은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저지 쇼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닝 형제가 뉴저지에서 왔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강가(shore)의 반대쪽 강가에 있기 때문에 그냥 저지 쇼어라고 부른 것이다. 놀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지만 웨인즈버그라는 이름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30년 동안 이 마을은 웨인즈버그와 저지 쇼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점점 저지 쇼어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 다리의 건너편 강가에 저지 쇼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는 이태원동의 일부가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회나무로’라는 공식명칭이 있지만, 사람들이 육군중앙경리단이 있기에 경리단길이라 부르는 것을 선호하면서 아무도 공식명칭에 신경 쓰지 않듯, 이 지역 사람들도 부르기 쉽고, 마을의 역사와도 쉽게 연결되는 저지 쇼어를 더 많이 쓰면서 웨인즈버그는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26년, 이 마을이 법적인 지위를 갖게 되는 시점이 되자 사람들은 이 마을을 저지 쇼어로 등록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오늘날 저지 쇼어라는 표지판은 이 사연을, 그리고 미국의 지리를 잘 모르는 운전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고 있다.

아, 그리고 이 마을 앞에 있는 작은 섬 이름은 롱아일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