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들어 미국 서부지역의 기온이 기록적으로 오르면서 올해 서부지역의 산불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주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지역이어서 산불(wildfire) 시즌이 존재한다. 문제는 지난 몇 년 동안 산불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빈도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기후변화가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만으로 미 서부 산불 증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이 드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미국의 산불억제(fire suppression) 정책이다. 자연에서는, 특히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역에서는 산불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생태계에 산불이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에 살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재산을 파괴하고 생명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부에서는 경치가 좋은 주거지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갈수록 산으로, 언덕으로 가서 집을 짓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풀이 바짝 마르는, 그야말로 장작처럼 쉽게 불이 탈 수 있는 지역에 살 게 된 것이다. 그러니 주민과 지자체는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화제를 억제해서 주기적으로 나야 할 산불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결과 산불의 '연료'가 되는 마른 풀과 나뭇가지, 덤불이 계속 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한 번 불이 붙으면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비슷한 일은 자연에서도 일어난다. 강 상류에 나무를 잘라 댐을 만드는 비버가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댐이 무너져 마을에 홍수를 일으키는 일이 종종 존재한다. 평소처럼 조금씩 흐르면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물을 가둬두었다가 터뜨리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면역부채 Immunity Debt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늘 프랑스 학자들이 '면역부채'라고 부르는 현상을 경고하는 기사를 냈다. 면역부채, 혹은 면역빚이라는 개념은 이렇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병균을 주고받으며 면역력을 기르는 게 정상인데, 팬데믹 기간 내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손 소독제 사용 등으로 인해 이 과정이 중단되었고, 그 결과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감염병에 훨씬 취약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기사에서는 일본에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가 엉뚱한 계절에 확산하는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미국 소아과 학회에 따르면 RSV는 거의 모든 아기가 2세가 되기 전에 감염되고 대개는 감기와 비슷한 감기 증상만을 겪고 넘어가는 가벼운 질병으로 겨울철에 환자가 발생한다. 그런데 아래 표를 보면 2020년에는 예년과 다르게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가 올해는 봄과 여름에 마치 겨울처럼 환자가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사들에 따르면 RSV 바이러스가 정상적으로 퍼지는 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억제되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아이들을 통해 제철이 아닌데도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약해진 면역력의 덕을 보고 확산할 바이러스는 RSV뿐 아니다. 독감, 수두, 패혈성 인두염 등 이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게 된 질병의 바이러스들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의사들이 RSV에 주목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평균적으로 생후 17개 월 정도 되는 아기들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면, 요즘은 생후 6개월 된 아기들도 걸리기 때문이다. 아직 면역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어린 아기들은 이 병에 취약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의사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추론한다: 원래 이 바이러스는 임신한 엄마에게 들어가서 항체가 생기고, 그 항체가 태아에게 전달되는데, 요즘 태어난 아기들은 엄마가 임신 기간 중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따르면서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바이러스가 꾸준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결국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면 당장 병에 걸리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은 (병에 걸려서) 갚아야 할 빚, 즉 면역부채라는 것이다.